본문 바로가기

그냥_생각98

양심에 대한 감수성 양심을 버릴 것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감수성을 버릴 것인가. 후자가 더 속 편하다. 괴리가 없기에 삶은 마냥 즐겁기만 할 뿐이지. 난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의 문제라 생각한다. 모두 다 양심껏 살고 있다, 단지 그 감수성이 닳고 헤어져 있을 뿐. 별이 바람에 스치워도 괴롭지 않을 뿐. "잘못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없다면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 - 마르쿠제. (페북에서 옮김) 2013. 12. 18.
질문의 방향 많은 경우, 질문은 "이것은 과연 될 것인가?" 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그것은 좋지 않은 질문의 방향이다. 질문은, (난 이것을 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것을 할 수 있을까?" 라고 해야 한다. 나는 이런 글(선택과 결정의 전과 후)을 쓴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는, '아, 나는 과연 외국으로 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얼마 후, 곧, 지금 이 글의 생각과 같은 것을 나에게 적용하여, '나는 외국으로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아닌, '외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 하면, 전자의 경우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구체적이지 않다. 적절한 전략을 세우기 힘들다. 갈 수 .. 2013. 11. 2.
선택과 결정의 전과 후 결정을 하기 전에는 비록 의구심이 들고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단 결정을 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왜냐 하면, 그것이 곧 결정이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을 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라면 아예 그러한 결정을 할 필요조차 없다. 나는 무조건 낙관하는 성격도 아니고, 사태를 될 수 있으면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하기 때문에 매사에 다소 소극적인 것처럼 얘기하곤 한다. 다시 말해, 말하는 것만 놓고 보면 내가 그 일에 딱히 열의를 갖고 있는 것처럼 안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대책없이 사태를 좋게만 보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지 소극적 태도 때문은 아니다. 그리고, 비록 결정을 하기 전에는 그렇게 다소 부정적으로 비춰지게 행동했다 하더라도 일단 결정을 하게 되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2013. 8. 11.
나는 왜 인터넷을 통한 대화를 그만두었나 기술은 소통의 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을 뿐 실제 소통의 증가는 여전히 인간의 문제임을 지금은 알고 있다. 이것이 내가 더이상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라 하겠다. 페북을 통한 간단간단한 이야기 이외에는 이제 거의 남과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설령 아주 가끔 댓글을 단다 하더라도 그 글을 읽을 사람의 반응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오해를 한 후 소통을 시도하는 이가 너무 많으며, 기본적인 태도 자체가 대화를 통한 합의의 도출이라기 보다는 그냥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마는 것인 경우도 많고, 자신이 겪거나 자기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일의 전부인양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쉽게 .. 2013.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