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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98

화를 낸다는 것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은 참으로 게을러서, 자신을 합리화하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쓴다. 화를 낸 사람도, 화를 나게 한 사람도, 결국은 항상 자신을 합리화하곤 한다. 이건 어쩌면 인간이면 누구나가 그런 것처럼 생각되기까지 한다. "분노가 그대의 가슴에 퍼져 나갈 때,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사포. 난 화를 거의 안 내다가, 갑자기 별 것 아닌 것에서 화를 내곤 하는 타입이라, 사람들이 다가오기 쉬운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화를 내는 것은, 그간 쌓였던 것을 어느 순간 터트리는 것이다. 말을 안 하면, 모른다 는 말도 일면 타당해 보인다. 맞다. 몰라서 그런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몰랐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었을까? 왜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는가? .. 2006. 7. 28.
어디까지가 허영인가? 요 며칠 된장녀라는 말이 인터넷상에 꽤 빠르게 번져나간 듯 싶다. dc를 정기적으로 monitoring(?)하는 나로서는 그 만화가 그처럼 많이 번져나갈줄은 모른채 보아 넘겼다. 내가 쓰는 글들이 대체적으로 그렇듯, 이 글 역시 그 만화는 단순한 출발점에 불과하고, 그에서 뻗어 나간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우리가 겪어 왔던 생활과 환경에 따라 각자 어디까지가 허영인지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소 호화스럽고 비어 있는 듯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 대해 속물이라 말하긴 좀 어렵지 않을까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인간의 허영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서도, 그 허영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 2006. 7. 26.
새가 죽다 2006-06-02 21:21 새가 죽었다.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새가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 새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오직 하나, 죽었다는 사실 뿐이다. 그 새의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새가 과연 존재할까? 그 새가 그토록 열심히 살았든, 아니면 그럭저럭 살았든 어쨌든 지금은 죽었다. 그렇지만, 내가 단지 그 새의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는 것도 사실은 사치일 뿐이다. 바로 지금 누군가의 어머니도, 누군가의 소중했던 딸도, 누군가에게 치열한 고민을 안겨 주었던 연인도 죽었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그들을 모를 뿐이다. 비단 그들 뿐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수많은 존재들이 죽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하다, 그 존재 이외이 모든 존재에게는. 저 새의 죽음이 나에게 .. 2006. 6. 2.
존재와 실존 존재는 '인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통칭하는 것인 반면, '실존'은 '나', 이 글을 읽고/쓰고 있는 바로 '나'라는, 살아 숨쉬고 있는 생명 그 자체를 일컫는다. '자아'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자각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나'는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그에게 '실존'은 '존재 일반'과 같게 느껴진다. 실존과 존재의 차이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예는 '죽음'이다. '죽음'이란, 인간이라는 '존재'가 맞이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동시에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죽음'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 단 그 죽음이 '나'라는 '실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전까지는. 대형 사고가 나서 수십, 수백명이 죽어도 별다른 감정의 기복이 생기지 않는 것은, '죽음'이 '존재'의 .. 2005.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