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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노을과풍경

한겨울의 봄햇살

by adnoctum 2013. 1. 12.




   제법 이른 시간에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급조한 일정을 마치니 시간은 이미 두 시가 넘어가 있었다. 그 시간에 대전에서 출발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제법 햇살이 포근한 것이 이미 봄이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는 하염없이 창밖을 보면서 올 수 없게 되었기에 그것을 이따금씩 느끼긴 했어도, 중간에 잠깐 쉬기 위해 차에서 내렸을 때, 이미 녹아버린 눈 밑으로 드러 난 맨 길을 보면서도 알 수 있었고, 바람이 잦아 들었을 때 느껴진 햇살의 따스함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봄이라는 착각은. 당장 내일,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이면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이번 겨울의 예의 그 날씨처럼 또 눈이 온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은 마치 봄인 것 같았었지. 하지만, 조금 걷자니 금방 추워지더라. 에잇, 아직 겨울은 겨울이구나. 


   요즘엔 더 여유가 없어진 것 같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활해 왔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그렇다. 아직 졸업이 최종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연구소를 찾다 보니 주저자로 게재한 논문이 거의 없어서 이에 대한 초조함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 또 한 단계를 나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확실하지 않은 이 단계의 특이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하여튼, 이레저레 조금 붕 뜬 느낌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인터넷의 모든 커뮤니티/포탈 방문을 끊고, 페이스북과 테트리스도 끊고, 인터넷은 오로지 검색과 논문 싸이트, 그리고 이 블로그와 몇 가지 사무를 위한 일만을 위해 사용하다 보니 확실히 일 할 시간이 많다. 그래서 더 일만 하게 되고, 그것이 어찌 보면 여유를 빼앗아 간 것 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상 그것은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비록 여유로운 생활을 추구한다 한들 그것을 바꿀 생각은 없다. 차라리 교내 빵집에 가서 빵만 사서 들고 와 연구실의 자리에 앉아 먹던 것을 빵집에, 비록 혼자라 하더라도, 앉아 괜한 여유를 부리는 것마냥 시간을 때우면서 이러저런 생각을 하다 오는 시간을 만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꽤나 추운지라 어슬렁거리면서 산책을 하기도 힘들 뿐더러, 때때로 만나 이야기하던 말벗들이 죄다 회사나 외국으로 나아가니 그럴 기회조차 많이 줄어 들었다. 그러다보니 연구실에서 계속 연구만 하고, 뭔가 불안한듯이 왔다갔다 거렸는데, 이제 그 불안함을 조금은 뒤로 한 채, 내가 나아가야 할 바를 알아,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머릿 속에 그려 놓고 생활 전반에 그것을 조금씩 녹여 놓아야 겠다.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으니까 어렵지 않겠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숙사 방에 와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봐야 겠다. 아, 피아노도 배우고 싶다. 지금은 기숙사 방에 와서 잠만 자고 나가다 보니 항상 늦게 들어 오게 되며, 그래서 랩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는 것인데, 그것을 바꾸어, 12시 이전에는 연구실에서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차츰 일찍 나오기 시작하여 대략 9시 정도까지 줄여 보자. 방에서 책을 읽는다던가 글을 쓴다던가, 하면서 좀 여유롭게 보내는 것을 생각해야 겠다. 항상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는데, 말 그대로 정말 여유가 부족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조만간 문을 두드려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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