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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영화

책을 읽는다는 것

by adnoctum 2006. 7. 17.

   


   다독은 전혀 권장할 것이 못된다. 남의 생각을 읽느라 보낸 시간이 그토록 많다면, 자기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인생론]에서, 였던가 아니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by 쇼펜하우어 에서 였던가... 하여튼.


 


지난 주 집에 갔다 밥을 먹을라고 식탁에 앉는 순간 갑자기 깨닫게 된, 사소한 사실 하나는, 독서라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추상화의 정도가 높은 어떤 사실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버릇이 조금씩 들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음악이나 별미로는 지나는 사람 잠시 머물게 할 수 있으나

도에 대한 말은 담박하여 별맛이 없습니다.

- 도덕경 35장.



사실 세상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혜란 것들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연하고 다 알고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정직해라, 최선을 다해라, 뭐 이런 뻔한 것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책을 읽으면, 그런 추상적인 것들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보게 되곤 한다. 음... 이런 건, 어쩌면 내가 철학 냄새가 나는 책들을 주로 읽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분야의 책들은 말하고자하는 바를 정확히 집어 내준다. (특히 쇼펜하우어 책, 완전 강추다. 그의 철학적 시각은 둘째치더라도, 은근히 그런 것 같은데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잘 몰랐던 것을 그는 정말 명확히 콕 집어 말해준다. 그리고, 내가 미쳐 생각지 못했던 것들도 아주 명쾌하게 말해준다. 곽복록(이름도 외웠다)이란 분이 번역한 게 특히 좋다. 어찌 번역이 그리 깔끔한지...) 소설은, 그에 비해, 뭔가 짠~ 하고 와 닿는게 있기는 한데, 콕 찝어 말하긴 좀 어렵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모든 인간은 죽는다](인지,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인지...All men are mortal)같은 책을 읽으면, 그저 "아,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죽게 되어 있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뿐, 내가 느낀 그 이상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책의 가치라면, 오히려 그 가치가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그렇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의 보다 중요한 가치는, 책을 읽음으로써 책에서 나왔던 내용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실생활에서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은연중에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읽었던 책 내용이 자신의 삶에 조금씩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삶이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결코 작지 않은 영향.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의지보다 습관이 중요한 것이라면, 책을 읽음으로 인해 조금씩 그 습관이란 것이 형성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런 습관이란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주 당연한 것을 어떻게 구체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책에서는 그리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데, 책에서 나왔던 추상적인 사실들이 생활속에서 은근히 구체화된다는 것이다. 이게, 진정 책의 힘이 아닌가 한다. 추상적 사실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




이러한 사실은 좋은 책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데, 실용서나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된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나열해 놓은 책들은 상황과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쓸모 없는 책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추상적으로 적혀 있으면서도 흥미를 끄는 책들은, 그 추상적 사실(가령 '사랑')이 변하지 않으면, 읽는 사람이 자신의 환경/시대에 맞게 구체화를 할 수 있다면 계속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담박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중요한 사실을 어떻게 구체화할지 모르면 계속 구체적으로 지적해주는 실용서를 찾게 되는데, 그런 책에서 제시해주는 것은 시간이 지나 상황이 바뀌면 필연적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책의 가치가 시간과 함께 사라지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감동적인 책이 없다. 두고두고 씹어도 단물이 나오는,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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