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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영화

무뎌진다는 것

by adnoctum 2006. 6. 29.




  신앙과 용기의 실천은 일상 생활의 세부적인 일부터 시작된다. 그 첫 단계는 언제 어디서 신앙을 잃는가를 주시하고, 이 같은 신앙의 상실을 은폐하는 데 이용되는 합리화를 간파하고, 어디에서 우리가 비겁하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다시금 그것을 어떻게 합리화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신앙에 대한 배반이 어떻게 우리를 약하게 하며, 그 늘어나는 허약성이 어떻게 새로운 배반으로 이끌고, 계속해서 악순환을 이루게 하는지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에서.



자신의 의식에 대해 항상 깨어 있어라.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자기로부터의 혁명]에서.


도가 없어지면 예가 생기고,

예가 없어지면 법이 생긴다.

- 노자 [도덕경]에서


결론은 이미 정해 놓은 후, 그 선 안에 들어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책을 읽는다. 이것이 바로 당파적 책 읽기이다. - 조혜정 [글 읽기 삶 읽기 1편]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능력은 타인과의 충돌을 줄여 준다.



요즘 한창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 과연 교육적 체벌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말하기에 앞서,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당신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자신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다 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화를 내지 않으면, 결국은 무시하는 방향으로 그 사람을 대하게 된다. 이 때 그리 올바르진 않지만 유용한 방법은 화를 내는 것이다. 그 때에서야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뒤돌아 본다. 마치 아이들이 매를 맞고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기는 했었나보다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만약 이미 나는 잘못이 없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화를 내는 것으로 자신을 뒤돌아 보기는 커녕 그의 옹졸함을 욕한다. 참 애매한 것이, 한국사회는 나이라는 이 지독한, 보편적이며 잘못된 감투 때문에, 어린 사람이 화를 내면 어린 놈이 삐진 것, 또는 투정을 부리는 것이 되고, 나이든 사람이 화를 내면 그 나이에 그 정도도 이해를 못하는 옹색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것이 바로 결론을 미리 내고 남을 대하는 것이다.



체벌이 필요하냐고? 나이먹은 사람들도 체벌에 준하는 화내는 행동을 해야 그제서야 도리를 찾지 않나? 체벌이 아직까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어른들의 이런 잘못된 행동을 청소년들이 보고 따라하는 것에 대해, 어른들은 나이라는 것 때문에 그들을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다른 아이를 때린 자신의 자식을 혼내기 위해 매를 드는 어리석은 부모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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