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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영화

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

by adnoctum 2006. 9. 6.




   이제 7학년 최초의 음악 수업이 시작된다. 이 반의 음악 담당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트라우트너 선생님이다. 음악실의 그랜드 피아노는 요즘 새로 바뀌었다. 아이들이 그 반짝거리는 검은 피아노 둘레에 모여 있었다.


"마음에 듭니까? 여러분, 새로 오신 이 손님을 모시고 다음 번엔 후미와 같이 스프링 소나타라도 치며 환영 파티를 합시다."


트라우트너 선생님은 주위에 서 있는 아이들과 수업 전에 잡담을 조금 하고 나서,


"자, 시작하자. 다들 자리에 앉아요."


그리고 분필을 접어 들었다.


"이야기 시 '마왕',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칠판에 단숨에 저 유명한 괴테의 시 전문을 써 나갔다.


이 깊은 밤에 바람을 끊으며

말을 몰고 다리는 이 누구냐?

팔 안에 살포시 춥지 말라고

그리운 아들을 꼭 안은 아버지라네

"내 아들이여, 왜 겁내어 네 얼굴을 가리우느냐?"

"아버지여 마왕을 못 보시나이까?

왕관을 쓰고 긴 옷자락을 끄는 저 마왕을."

"내 아들이여, 그것은 띠 모양으로 퍼지는 안개란다."


"예쁜 아가, 나에게 오너라.

나와 함께 멋진 놀이를 하자꾸나.

고운 꽃들이 피는 해변에서

어머니는 금빛 나는 옷을 입혀 주네."


"아버지여 아버지여 들어 보셔요.

마왕이 나직히 속삭이는 이 소리를!"


"무서워 마라. 내 아들이여.

마른 잎이 바람을 맞아 재잘거릴 뿐이란다."


"아가야, 어여쁜 아가. 나와 함께 가렴.

딸들은 기뻐 너를 맞아 줄 거야.

밤의 윤무로 인도해

자장가 부르며 잠 재워 주리니."



"아버지여 아버지여 저것 보셔요.

마왕의 딸들이 저 어두움 속에!"


"보이네, 아들이여. 잘 보고 있네.

버드나무의 가지가 회색으로 번쩍이고 있구나."


"고운 아가야. 나 너를 사랑하네.

네가 싫다면 난 억지라도 부리리-"


"아버지여 아버지여 마왕이 나를!

마왕의 팔이, 오, 괴로워!"


허덕이는 아이를 안은 아버지는

공포에 떨며 말을 몰았네.

힘이 빠져 간신히 집에 이르니

팔 안의 아이는 이미 숨을 거두었네.


4행 8편의 이 발라드는 독일어의 운을 밟고 리드미컬한 형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마음을 끈 것은 그 극적인 내용이었다.


"어쩐지 아주 무서운 시 같아."

안드레아가 몸을 으쓱하며 옆의 브리기테에게 말했다.

"우선, 각자가 잘 읽어 봐. 사람들 앞에서 낭독한다면 어떻게 하겠니?"

라고 선생님이 말하자,


Wer reitet so spat durch Nacht und Wind?


Es ist der Vater mit seinem Kind......


   아이들이 자기 나름의 억양으로 읊조리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정성 들여 밤의 어두움과 바람을 스쳐 달리는 말의 모습을 흉내내듯 소리내어 읽어 보는 안드레아. 어쩐지 그저 읽어 가다가 마왕이 나타나는 부분에서 얼핏 불안한 표정을 보이고 속삭이는 듯한 어조로 바꾸는 악셀. 그렇게 대충 읽고 나자,


"기분이 이상해."

"불쌍한 아이로구나."

"오늘 밤에 마왕의 꿈을 꿀 것 같아."

하고 생생한 충격을 숨기지 않는다.


   이번에는 트라우트너 선생님이 그 굵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의 어미까지 뚜렷이 읽어 준다.


   열심히 귀를 기울이자 말이 질주하는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어두움 속에서 아이를 품에 안은 아버지의 고뇌에 찬 얼굴이 떠오른다. 시는 아이들의 청각과 시각을 날카롭게 일깨웠다.


Mein Vater, mein Vater, jetzt fabt er mich an!

(아버지여 아버지여 마왕이 나를!)


아이들은 모두 흠칫하고 놀란다. 그 순간 마왕의 팔이 자기 목덜미에 닿았다고 느낀 것이다.


In seinen Armen das Kind war tot

(팔 안의 아이는 이미 숨을 거두었네)


잠시 숨을 죽인 듯한 정적이 교실을 멤돌았다.

"무섭지만 굉장한 시야!"

 하고 누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도 왠지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힘을 느껴. 다 보이고 들리고 닿을 수도 있으니까."

이 시가 갖는 강력한 상징의 세계에 아이들이 전율을 느끼고, 그 괴상한 힘에 사로잡혀 가는 것을 선생님은 말없이 지켜 보고 있다. 한참 뒤 선생님은 수업의 다음 단계로 나갔다.


"어때? 괴테의 이 시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어. 누구나 정성껏 그 나름대로 낭독해 보았어. 음악가들은 이 시에 곡을 붙이려고 열중했지......"

"그렇겠지. 반주를 붙이고......"

이 굉장한 시에 어떤 곡이 붙을 것인가? 아이들의 관심은 한층 높아졌다.

"그럼 세 사람의 작곡을 차례로 치면서 불러 보자."

트라우트너 선생님은 피아노로 향했다.

"맨 처음에는 라인하르트라는 작곡가 거다."

   그것은 전주가 없고 사단조의 라, 도, 미 화음을 천천히 되새기면서 시작하는 장중한 멜로디였다. 밤의 어두움 속에서 질주하는 말이 환상적인 그림자로 떠오른다. 기본 멜로디가 몇 번이고 반복되어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불러 보는 아이도 있었다. 마왕이 아기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부분은 거의 미 음계만의 2 대 1 리듬으로 계속되어 알기 쉬웠다.


곡이 끝나자,

"괜찮네. 이런 시에 작곡한다는 건 흥미로운데."

하면서 자신도 즉석에서,

"Wer reitet so spat......"

하며 부르기 시작하는 아이도 있었다.

"다음은 레베의 작곡이야."

짧은 전주로 시작되고 시시각각의 움직임을 가지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마왕 삼자가 주고 받는 말에 보다 현실감이 있었다. 마왕이 아기를 데려 가려고 말을 걸 때는 경쾌한 멜로디가 붙어 있었다.

"같은 시라도 완전히 다른 느낌의 곡이 되는구나."

하고 놀라는 아이들.

"자, 이번에는 슈베르트야. 그는 열 여덟 살 때 이 시를 읽고 그 자리에서 작곡했어. 이것은 슈베르트의 작품 번호 제1이란다."

트라우트너 선생님의 양손이 피아노의 건반에 닿자마자 갑자기,


  타타타 타타타 탕탕

  타타타 타타타 탕탕

  거칠고 템포가 빠른, 말 달리는 듯한 전주가 흘러 나왔다.

  교실의 아이들 표정이 한곳에 주의를 빼앗긴 것처럼 되었다.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이제 가사가 시작되고,


이 깊은 밤에 바람을 끊으며

말을 몰고 달리는 이 누구인가?


흉내 내어 부르고 싶어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 피아노의 급속한 타음은 아이들의 귀에 들려 오는 발의 발굽 소리이며,


"예쁜 아가, 나에게로 오너라.

나와 함께 멋진 놀이를 하자꾸나."


  노래를 부르는 트라우트너 선생님의 목소리가 마왕의 달콤한 속삭임이 되어 있었다. 그때 들리는 피아노의 불협화음이 아이들의 불안한 마음과 어우러졌다.


힘이 빠져 간신히 집에 이르니

팔 안의 아이는 이미 숨을 거두었네.



가차없이 두들겨 대는 피아노의 탕탕 하는 타음과 함께 이 곡이 끝나자,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슈베르트는 천재야!"

아이들은 일어나서 자기 짝의 등을 탁탁 칠 정도로 흥분했다.

"어떻니, 얘들아? 세 가지 '마왕'을 듣고....."

트라우트너 선생님이 피아노에서 몸을 떼고 물어 보니,

"슈베르트가 압도적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며 외치는 소리가 한참 동안 떠들썩했다. 그리고는 다시 음미해 보듯이,

"아니, 레베도 좋았어. 그 환상적인 느낌이."

"나는 라인하르트가 진짜 이야기처럼 전개하는 것이 인상 깊었어."

하는 감상을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누군가,

"선생님은 어때요? 누구 곡을 가장 좋아하세요?"

하고 물어 보았다.

"나는, 글쎄......"

트라우트너 선생님은 좀 생각하더니

"그때 그때 자기가 치며 부르고 있는 '마왕'이 가장 좋아. 그 순간에는 나에게 있어서 그 '마왕'밖에 없으니까 말야. 레베를 부르고 있을 때는 레베가, 라인하르트일 때는 라인하르트가, 그리고 슈베르트일 때는 슈베르트가 나의 속에 살아 있고,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부르고 있는 거야."

아이들은 그렇구나 하고 깊이 느낀 것 같았다.

"선생님, 괴테는 어땠어요? 누구 곡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어요?"

그래, 그것이 가장 알고 싶어! 아이들은 또다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괴테 말인가? 그는 라인하르트 곡에는 만족한다는 걸 곧 밝혔지만 문제는 슈베르트야. 이 가난한 음악도는 '마왕'의 작곡을 괴테에게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지. 대문호 괴테 선생님께서는 내 곡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는 매일매일 편지 오기를 기다렸지. 하나 괴테는 답장을 안 썼어. 그리고 슈베르트는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어. 그날까지 괴테의 답장을 기다리면서 - 그가 죽은 후 어떤 사람이 괴테에게 물었지. '슈베르트의 그 마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이봐, 얘들아, 괴테는 이 질문을 듣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어. 그리고 마구 화를 내면서, '괘씸한 것 같은이라구!' 하고 소리쳤지. '그 곡은 내가 시의 형식으로 부른 것을 그대로 다 음악으로 해 버렸어. 그는 나의 '마왕'을 훔쳤다구!'"

숨을 죽이고 이 에피소드에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이 '휴'하고 한숨을 쉬었다.

핀키가,

"괴테란 사람,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이야!"

라고 잘라 말했다.

"정말이야. 참을 수가 없어!"

"슈베르트가 불쌍해!"

"정말 그는 천재야!"

교실은 분노와 동정과 찬탄의 감정이 뒤섞였다.

그때 끝나는 종이 울렸다. 트라우트너 선생님은 다시 칠판 앞에 서서 말했다.

"다음 주부터는 당분간 슈베르트를 공부하자."

"찬성, 찬성!"

아이들은 힘차게 박수치며 선생님을 보냈다.


[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 - 독일 자유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 현장 고야스 미치코, 임영희, 이연현 옮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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