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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

솔직함에 대하여

by adnoctum 2010. 10. 30.


   생각했던 것까지도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이 마음. 무분별하고 정리되지 않은 채로 진행되던 생각들, 그러나 그 안에서 무엇인가 깨달음이 있었기에 나중에 다시 기억하고 싶은 생각들. 그러나 후에 애써 생각해 내려 해도, 단지 무엇인가 생각해 내고 싶었던 것을 생각했었다는 사실 이외에 내가 얻게 되는 것이 없을 때, 참으로 난감하다.
 
   어제 있었던, 해야 할 일이 너무 뻔한 것이라 별로 재미가 없었다는 사실. 그 때는 어렴풋이 느꼈던, 그러나 오늘에서야 점점 구체화되고 명확해진 사실은, 그러한 일들, 즉 어떻게 해야할지 자명하기에 별다른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뻔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해야만 그 다음의 무엇을 할 수 있을 때, 설령 그 뻔한 일을 하는 것이 못 견디게 지루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일 다음에 있을, 우리가 좀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을 위해, 그 지루함을 견뎌야 하는 것이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게 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고, 이제 제법 즐겁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내 글에서는, 약간의 오만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를 제외한 사람이 설령 그것을 느낄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있기에, 그것은 문제가 된다. 오만하다는 것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글 속에 담으려 하는 것, 또는 결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뉘앙스의 말들을 언뜻 보면 결코 쉽게 알아볼 수 없게 글 속에 몰래 숨겨 놓는 것, 그러한 것을 의미한다. 특히나, 누군가와 논쟁을 하게 될 때 특히 심해진다. 아직 정신이 미성숙한 탓인지, 종종 논리가 아닌 권위와 경험에 기대어 내 주장을 정당화시키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그러한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가 더 엄격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너무나도, 불합리하게 편리하기에 종종 사용하곤 한다. 지금부터라도 그런 행동을 삼가야 겠다.

   우리는,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어느 정도까지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일까?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인다. 왜냐 하면 결국, 타인에게 솔직한가, 를 결정하는 것 역시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내 잘못을 시인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실은 단지 귀찮은 논쟁거리를 피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었다면, 나 스스로는 내가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자신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못된 동기에 의해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미숙하기 때문에, 그리고 허영에 의해, 자신이 잘못을 시인한 것은 꽤나 성숙한 정신력의 결과라고 믿고 넘어가려 한다. 그런 사람은, 남이 보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꽤나 반듯한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래서 남한테는 솔직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여전히 솔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의 잘못을, 미성숙함을, 어리석음을, 고집스러움을, 좁은 시야를, 박약한 사고력을, 진심으로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은 마른 땅이 물을 빨아들이듯  받아들여야 하겠지. 그런데 진심으로 자신의 어리석음과 불완전함을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결코 오만해지지 않을텐데, 행간에 자리잡고 앉아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있는 오만함이 내가 써 놓은 글에서 보일 때마다, 나는 지난 날의 내 잘못이, 미숙함의 흔적이 여기에도 이렇게 남아 있구나, 를 느끼고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글들은 지우고 싶은 충동이 인다.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누군가에게 나의 부끄러웠던 한 때를 보여주기 싫어서. 하지만, 그것이, 그토록 미숙했던 과거 역시 나였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 그냥 남겨 놓는다. 그렇게 나의 과거를, 단지 그것이 현재의 내 기준에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여, 흘려진 물을 휴지로 말끔히 닦아 휴지통에 던져 버리듯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아직도 오만하지 않고, 내 미숙함을 진심으로 인정하면서 솔직해지는 법을 잘 모르겠다.

원본 작성일 : 2007-10-2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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