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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영화

학습된 낙관주의

by adnoctum 2014. 8. 17.




   학습된 낙관주의(Learned Optimism)은 비관적/낙관적 관점이라는 두 관점 중 낙관적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 개인의 건강, 학업 성취도, 직장에서의 성취 등 많은 것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는 것을 여러 실험과 자료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비관적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낙관적 관점을 가질 수 있는가 역시 이야기 하고 있다. 




           






우선, 아래의 A 상황이라고 해보자. B1 과 B2 처럼 생각하는 것을 달리 함에 따라 나의 반응이 어떻게 나오는지 C1 과 C2 를 채워 보자. 



A. 식사하는 동안 어머니가 계속 옆에서 이거 먹어 봐라, 저러 먹어 봐라, 라고 하신다.  

 B1. 내가 좋아하는 거 알아서 먹을껀데. 

 B2. 어머니가 손수 하신 반찬이 맛있는지 궁금하신 거구나. 

 C1. "제가 알아서 먹을테니 걱정 마세요."

 C2. "네, 이거 정말 맛있네요."



 A. 앞에 가는 차가 계속 왔다갔다 한다.  

 B1. 분명 핸드폰을 하면서 가고 있을 것이다. 

 B2. 저 사람 혹시 아픈 거 아닐까?

 C1. 하여튼 저런 사람들도 전부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니까.

 C2. 옆 차선으로 가서 운전자가 아픈지 확인해 봐야겠군.



즉, 같은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반응이 매우 달라진다. 책의 핵심은 이것으로,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면 많은 것이 바뀐다는 내용. 특히, 실패와 성공에 있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하느냐가 비관/낙관을 나누는 핵심이라고,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보다. 



   책은 전반적으로 낙관주의라는 것을 심리학 쪽으로 거의 처음 끌고 들어 온 저자의 연구 일대기를 정리하는 듯 한 내용이다. 3부 낙관주의의 실천 전까지는 대부분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어떻게 해서 이러한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일화들 속에서, 자신들이 한 실험이 결과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역시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무기력, 즉 자신이 상황을 조절할 수 없으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는 무기력 역시 학습이 된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갖는 태도들 중 많은 것들은 어렸을 때 그렇게 형성된 무기력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 신기하게도 사춘기 전에는 무기력한 경우가 별로 없으며, 사춘기를 지나면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언어 생활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평소에 그가 어떠한 언어 생활을 하는지를 확인함으로써 낙관성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남겨 놓은 기록, 일기, 편지, 인터뷰 내용 등을 통해서 개인의 낙관성 정도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 낙관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실패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그 실패를 한 자신에 관한 언급이 더 잘 반영한다는 것. 그 중요한 요소는, 영속성/일회성, 보편성/제한성, 나의 문제/남의 문제, 라는 것. 즉, 

나에게 발생한 이 나쁜 일은 일시적인 것이며, 다른 일과는 상관이 없고, 나보단 다른 사람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나에게 발생한 이 좋은 일은 아마도 계속될 것 같고, 다른 일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고, 내가 이런 걸 좀 잘 하기 때문이다, 

와 같은 것. 그래서 평소에 이런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 요약 끝. 


   어떻게 생각해 보면 너무 사태를 자기 위주로 판단하는 것 같을수도 있는데, 저자 역시 이러한 문제[각주:1]에 대해 누누히 강조하고 넘어 간다. 또한 비관주의의 장점은 무엇일까를 숙고해 보며[각주:2], 비관주의자가 현실을 보다 정확히 본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 물론 낙관주의가 좋지만 비관주의적 속성을 갖고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또한, 문제에 대해 자기가 원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다소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 수 있고, 특히 동양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책에 나온 개인적 성향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동양의 "겸손"에 해당하는 특성이 어쩌면 서양 사회에서 동양인들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일 수도 있다[각주:3]고 하니 과하지 않은 정도의 중용은 지켜야 할 것이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 것. 가령 우산을 깜빡하고 안 가져 왔다면, 

A. "앗, 우산! 늙으니까 기억력도 떨어지네." vs. B. "앗, 우산!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했네."

처럼 우산을 잊은 원인을 얘기한다고 했을 때, A는 '늙어서 그렇다'처럼 실패의 원인을 다소 영속적으로 얘기를 하고 있고, B는 원래는 안 그런데 급하게 하느라 그렇다는, 일시적 원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보편성은 한 곳에서의 실패를 다른 곳에까지 가져가는 것. 가령 실수로 커피를 쏟았을 때, 

A. "윽! 아놔, 오늘 되는 일이 없네." vs. B. "윽! 야, 여기 불운의 장소다, 자리 옮겨."

처럼 A는 커피를 쏟은 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불운이 닥칠 것처럼 반응하고, B는 바로 옆자리로만 옮겨도 괜찮을 것처럼 보고 있다. 나의 문제/남의 문제의 경우, 운동 경기에서 상대편이 이겼을 때, 

A. "난 원래 배드민턴 잘 못 해." vs. B. "쟤가 테니스 하더니 배드민턴도 갑자기 잘 하는데!", 

처럼 A는 내가 원래 못한다는 식이고, B는 나 때문이 아니라 쟤가 워낙 잘해서 그렇다는 반응. 


   즉, 좋은 일의 원인은 계속될 것이고, 여러 군데에서 나타날 것이며, 아무래도 내가 좀 잘해서 그런 것 같고, 나쁜 일의 원인은 이번만 그런 것이며, 이 경우에만 그런 것이고, 아무래도 나의 문제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상황의 문제이기 때문인 듯. 이렇게 생각을 하면 그 뒤에 따르는 감정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 나의 경우 변화가 절실한 굉장한 비관주의자로 나왔었는데, ㅋㅋ, 그건 나의 언어 생활의 특징 때문인 듯 하고, 실제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비관주의적인 것은 맞는데, 특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항목처럼 생각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예를 들면, 내가 뭔가를 잘 했을 때 난 "아, 뭐, 이런 건 그냥 누구나 이 정도 해요", 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내가, 이거 쫌 잘 해", 또는, "오늘 감이 좀 좋은데", 처럼 한다. 생각해 보니 그런 사람이 주위에 몇 있다. 내 조카만 해도, "~~~~, 난 창의적이야.", 라고 할 정도로 긍정적인 아이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대로 얼마간 시도를 해 볼 생각이다. 


이 곳에 예제를 추가한다. 




  1. 대체로 어느 주제에 대해 글을 쓰거나 그 주제를 오래 숙고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내놓을 반론들을 대부분 오랜동안 생각해 봤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이 양반, 이렇게 글을 주저리주저리 쓰지만 이 점은 못 봤을 꺼 아냐?" 하는 생각이 드는 그 것, 그런 것을 대부분 이미 생각해 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본문으로]
  2. 진화론적으로 접근하는데, 사실 이 접근법은 매력적이라 사용하긴 좋은데 증명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본문으로]
  3. 원 글에선 '겸손'을 유일한 원인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동양인의 stereotype(전형?)에 겸손도 있으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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