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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관련/연구생활

열리지 않는 문

by adnoctum 2013. 2. 23.

 

 

 

   이제, 나의 학생증으로는 이 곳을 들어올 수 없다. "귀하의 카드는 승인되지 않은 카드입니다." 였나, 사용이 불가능한 카드입니다, 였나. 어제 졸업식을 끝마치고, 새로운 집으로 가서 잠을 잔 후, 학위복을 반납하고, 기숙사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짐 몇 가지를 챙기고 청소를 한 후 퇴사를 했다. 이제서야 비로소 완전히 졸업을 한 듯한 느낌이다. 물론 절차가 100% 끝난 것은 아니지만 99.9%는 끝났다고 봐야 하겠지, 어쨌든. 디펜스가 끝난 날도, 학위심사위원회의 결정이 있던 날도, 언제나 아직 뭔가 모를 것이 남아 있어 여전히 학위 과정이란 느낌이 들었는데. 졸업식이 끝났을 때조차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오후에 연구실에 들어가려 했을 때 이제 더이상 나의 학생증으로 열리지 않는 연구실 건물 출입문을 맞딱뜨리니 비로소 졸업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열리지 않는 문이 역설적으로 또 다른 문을 여는 한 걸음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더구나 오늘, 기숙사에서 퇴사를 하니, 이젠 정말 졸업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젠 정말 졸업이구나.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석사과정 2년. 박사과정 6년. 2년은 년차초과. 제 때에 졸업할 수 있었지만 욕심 때문에 계속 미루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대전에서 보낸 시간이 8년, 그리고 길면 1년 정도는 더 보내겠지. 서울서 보낸 것이 6년이니, 고향을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 산 곳이다, 지금까지는. 4년여 즈음 교수님께서 그냥 그걸로 졸업하라고 하셨을 때 졸업할 껄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더구나 비슷하게 입학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진로를 찾아 나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 그 때 굳이 졸업을 마다했던 이유는 그 당시의 내 능력에 대한 스스로의 불신이었다. 이 정도로는 뭣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하는 생각. 그 때까지만 해도 생각이 어느 정도 얕고, 뭔가 다뤄 보거나 해보는 것은 많았지만 깊이가 없다고 느껴졌다. 어떤 큰 흐름, 혹은 근본적인(fundamental) 철학이랄까, 뭐, 그런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매우 편하게, 혹은 다른 말로 하자면 안일하게 생각하며 연구를 하던 상황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조급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 굳이 졸업을 여러 번 미뤄가면서까지 내가 추구하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얄팍하지만 어쨌든 나만의 어떤 통찰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 꽤 느즈막히 가시화되어 나오는 결과들을 보면서 6년이 다 되어갈때즈음에서야 이젠 졸업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간 온갖 코딩을 하면서 얻게 된 지식과 경험이, 이젠 어디가서 뭐를 해도 어떻게든 할 수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졸업을 유예시켰던 자신감 부족이 어느 정도는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하나 알게 된 것은, 지금 바로 내가 할 수는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라는 느낌이 들 수 있을만큼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 지금 갖고 있는 지식 혹은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지식과 능력을 증가시키는 능력,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

 

   학위 기간동안 참으로 여러 가지를 했었고, 여전히 몇 가지는 진행중이고, 아직 할 것도 많이 남아있지만 어쨌든, 이제 이 과정은 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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