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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

노숙용 모포

by adnoctum 2011. 11. 12.


   약간 추울 것 같아 노숙용 모포를 꺼내 덮었다. 이 모포는 학부 때 내가 하도 집에를 안 들어가니 누나가 그럼 따뜻하게라도 자라며 사준 것이다. 오리털이라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매우 따뜻하다.

   여태까지 중에 학부 때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때보다도 더 열심히 했으니까. 그런데, 집은 수원이고 학교는 서울이라 통학하는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2학년 때부터는 첫 차를 타고 다니기는 했는데, 3,4 학년이 되니 그것도 귀찮아서 학교에서 밤을 새는 일이 잦았다. 단과대 건물에 도서관같은 공부방이 있었고, 같은 건물 6층에는 쇼파가 많은 곳이 있었다. 대강당 밖의 대기하는 장소였는데, 크고 작은 쇼파들이 많이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캠퍼스 여기저기서 수업을 듣고 저녁이 되면 단과대 공부방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새벽이 되면 모포를 들고 6층의 쇼파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쇼파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잠을 잘 수 있게 해 놓은 후 모포를 덮고 잘 잤다. ㅋ, 어디서나 잘 자는 것은 이럴 때 편하더군. 그리고, 아침에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오시기 전에 얼른 일어났다, 보통 7시 전후. 그리고 세수는 걸어서 한 15분 정도 거리는, 하숙하는 친구네 집에 가서 하고 오곤 했었다. 하루나 이틀 정도 밤을 새던 초반과 달리, 나중에는 아예 일주일동안 집에 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마지막 학기에는 그래서 학교 근처의 조그만 고시원을 잡아서 생활했었다.

   대학원을 오면서 모포는 별로 사용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걸어서 5분 거리의 기숙사조차 가는 것이 귀찮을 때가 많아짐에 따라 랩에서 아무렇게나 잠을 자게 되곤 했다. 한때는 박스를 바닥에 깔고 잠을 잔 때도 있었는데 랩에 쇼파가 들어 오면서는 거의 그 곳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겨울에는 좀 추워서 그 때 다시 이 모포를 가져다 덮고 잤었던 것이 아직도 여기 있다. 이런 생활을 몇 년 하다보니 몸이 많이 축나는듯 해서 지금은 밤을 새는 경우가 많지는 않아서 모포를 방에다 가져다 놓았던 것이다.

   어떤 분은 내가 쇼파에서 자는 것을 보고, 저러다 죽는 거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고 하던데, ㅋ, 전 괜찮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놀라움의 대상이 될 때가 있곤 한데, 그 중에 하나가, ㅋ, 내가 초등학교 때 집에 가던 도중에 졸려서 그냥 길 옆에서 책가방 베고 잠을 잤다는 것. 아니, 난, 그냥 걸어가다가 하도 졸려서 길 옆에서 잠깐 잔 것 뿐이라고. 또렷이 기억되는 몇몇 과거의 일들 중에 이 일도 한 장면 정도 포함이 된다. 여하튼, 그렇게 자고 있는데, 외진 동네라 팀스피리트 훈련을 하던 군인이 나를 깨워서 짚차에 태워 주었다. 그런데 조금 가다가, 위에서 내려 오는 다른 군용 차와 맞딱뜨렸고, 그 차에 타고 있던 상관이, 군용차에 민간인을 태우면 어떻게 하냐고 하자, 피곤해 보여서 태워줬다는 얘기를 했다, 나를 태워 주었던 군인이. 음, ㅋ, 피곤하기 보다는 그냥 졸렸던 것인데, 여하튼, ㅎㅎ.

   그러고 보니 참 오랜동안 동고동락한 모포구나, 이 노숙용 모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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