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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세상바라보기

한글

by adnoctum 2011. 7. 30.


   우리는 종종 흔한 것은 너무나도 흔하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살곤 한다. 나는, 조금 과장해서 인류사적으로, 그리고 특히 한국인에게 '한글'이 바로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곳에 글을 쓸 때 몇 가지 원칙을 유지하고자 하는데, 굳이 외래어로 쓸 필요가 없는 경우는 될 수 있으면 한글을 사용하는 것[각주:1]도 그 중에 하나이다.


   케이블 TV 제목에 외래어가 대부분이라는 기사가 났다. TV를 볼 때마다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 중에는 바로 이러한 외래어가 횡행한다는 것도 있다. 그리고, 그냥저냥 읽는 글에서 가끔 '니즈'처럼 나와 있으면, 이것이 needs 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가 영어를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p와 f 를 다르게 발음하면 알아듣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봐서 내가 '니즈'의 뜻을 모른다거나 영어에 익숙치 않아서 오래 걸리는 것 같지는 않고, 한국어로 된 문맥 속에 뜬금없이 나타난 외래어를 외래어라고 알아 차리는 것에서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얼마 전 작성한 글[각주:2]에서 마리연이라는 독일인이 "아이리스? 아이리스는 뭐지?" 라고 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나의 태도는 약간 모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누나한테, 조카들 영어 공부 시키지 말고 차라리 한문 공부를 시키라고 말을 하거나, 내 자식이 생긴다면 역시 이럴 것이고, 이 블로그도 '영어로 된 정보를 입수하는 능력이 한국어와 같은 사람만을 고려한다'라고 말을 해 놓았으니까.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학/공학/기술처럼 어쩔 수 없이 영어가 필수인 분야에 관한 것일 뿐이다. 나도 전공 얘기할 때는 거의, 조사만 한글인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아마도 이 곳의 글들 중 이공계통의 글이 아닌 경우 외래어가 무분별하게 쓰인 글을 찾는 것은 힘들 것이다. 가끔 있다면 약간의 비꼬는 농담 정도[각주:3]. 얼리버드 MB가카, 처럼. 그렇다고 packet을 보쌈으로 번역한 유명한 Unix 책은 좀 과한 것 같긴 하지만, ㅋ.

   보이스 피싱은 무슨 얼어 죽을, 전화 사기, 처럼 알아듣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어색하지 않은 좋은 말이 있는데 왜 굳이 '보이스 피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 그것도 고상한 '표준어'를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언론에서조차. 이것은 곧 한국인들이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에 거의 거리낌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제부터라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굳이 한글을 지키기 위한 전사가 되어 보는 사람마다 한글을 쓰자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자신부터라도 한국말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언어는, 막강하고, 신기하다. 자기 자식이 천재가 아닐까, 어느 부모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는데, 그 때가 바로 아이가 '언어'를 배워 나가기 시작할 때라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고도화된 능력인 추상화는 언어에 의해 어느 정도 표현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통해 추상화 능력을 급격히 늘려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 과정은 모국어를 통해서 할 때 가장 효과적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일단 사고능력을 키운 후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단순히 '사고를 전달하는 도구'를 배우는 것[각주:4]이기 때문에, 일단 사고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단어 하나를 알게 되면 그 단어에 응집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개념에 닿을 수 있는 수단을 얻게 된다. "삼촌, 정부(government)는 어디있어?" 6살 어린이에게 '정부'라는 단어는 추상적 개념으로 존재하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그 무엇에 대한 만남을 열어 준다. 알게 모르게, 나도 모르는 사이, 시나브로. 어처구니가 없군, 의 어처구니는 도대체 뭐길래 없으면 안되는 것일까? 어쨌든 어처구니는 필요하거나 좋은 것이겠지. 하여튼, 언어 자체도 신기하고, 한글 자체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한문은 수많은 단어들을 알아가게 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어린 아이가 단어의 뜻을 배울 때 한문을 통하면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것은,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난 중고등학교 때 이런 식으로 한문을 그냥 혼자 공부하곤 했다. 뭐, 지금은 어떻게 쓰는지는 거의 모르지만 뜻과 훈은 거의 기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영어의 경우, 한문처럼 우리 생활에 묻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이 상당히 어렵다. 난 영어도 결국 어근/어미를 이용해 익혔기 때문에, equi-, ipsi-, co-, 등등을 통해 배워 나갔는데(약간의 흔적은 이 글[각주:5]의 주석에), 한국어는 이것이 한문을 통하면 가능하고, 더 효율적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영어보다 한글, 한문을 먼저, 그리고 제대로, 많이 배워야 한다. 일반인, 성인들이라면, 나는 도대체 왜 한국말로 할 수 있는 것을 영어로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투리도 보전해야 할 문화적 유산이라 생각한다. '표준어'란 다양성을 무시한, 결국은 '효율성'을 위한 것일 뿐이거든. 의사소통이 사투리 때문에 안 되는 일은 한국에서는 그리 심하지 않거든, 중국이나 인도같지는 않으니까. 촌스럽다고? ㅋ, 개성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 도시적 특징을 갖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1. 정보를 목적으로 한 글이 아닌 경우 사투리나 속어도 사용하는데, 어쨌든 한글이다. 그리고 난 다소 딱딱한 글이 아닌 경우 사투리나 은어/속어의 사용이 결코 잘못이라 생각지 않는다. 다소 딱딱한 글들도 가로선으로 구분하고 시작되는 분리된 단락에선 비표준어를 많이 사용한다. [본문으로]
  2. 그곳에서 살아 보 기 [본문으로]
  3. 이것은 일상에서도 약간 비슷하다. 주로 우스갯 소리의 일환으로 영어를 쓸 때가 있다. [본문으로]
  4. 물론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사고 능력을 배우는 것 중 더 쉬운 것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다. [본문으로]
  5. 상관계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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