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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

그곳에서 살아보기

by adnoctum 2011. 7. 2.


   요즘 밤을 새는 일이 잦아 졌는데, 그럴 때 항상 옆의 컴퓨터에 그곳에서 살아보기를 틀어 놓고 있는다. 혼자 조용히 일을 하는 것을 즐기기는 하지만 새벽의 그 적막함이란 그리 친근해 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이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여행의 형태가 딱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행 프로그램들이 그냥 여행지의 멋진 곳이나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이 프로그램은 직접 현지인과 생활을 한다. 더구나, 일꾼인 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그냥 일 한 번 시켜보는 정도에서 그친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지라도 여행자가 현지인과 한두시간이라도 같이 일을 하기까지 한다. 육체적 노동이 갖는 가치를 잘 아는 나는, 그래서, 이런 장면에 더더욱 호감이 가는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도, 내가 좋아하는 여타의 프로그램처럼 길지 않은 방영기간 끝에 막을 내리긴 했다. 일요일일요일 밤에, 에서였나, 동남아시아의 어느 후미진 곳에 가서 우물도 파고, 하는 프로그램도 (단비, 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보기 시작한 후 한 2,3주 후에 종영을 하더니만... TV를 거의 안 보기 때문에 비교체험 그곳에서 살아 보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연예인인지 일반인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어서, 가끔은 대체 누군가, 하고 찾아 볼 때도 있다. 가수도 있고, 탤런트도 있고, 모델도 있고, 그렇더군. 요즘 한창 유행인, '리얼'이라는 이름 하에 나오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결국 또 짜여진 극본 속에서의 리얼이기에, 내가 인정하는 거의 유일한 '리얼'은 전국노래자랑밖에 없었는데, 이 프로그램도 전국노래자랑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리얼'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각주:1].

   그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몇 있는데, 에바하고 서인영인가 하여튼 무슨 인영이라는 사람이 덴마크로 갔을 때, 보트에서 생활하는 노부부와 식사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도중에 여자 탤런트가 방울 토마토를 덴마크 할머니 입 앞에 갖다 댄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럴 때 주로 할머니들이 입을 벌려서 받아 잡수시는데, 이 할머니는 그냥 냄새만 맡아 본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먹여 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ㅋㅋ, 여자 탤런트가 이 말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낚시에 미끼를 달지 않으며, 잡은 고기의 크기가 30cm 가 되지 않으면 다시 놓아 준다고 한다. 뭐, 사람 사는 동네이니 누군가는 몰래 30cm가 안 되는 고기를 잡을지는 몰라도, 이런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진정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서도 투우를 하는데, 스페인처럼 소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지금은 안 그렇다고 하던데, 스페인도), 소 뿔에 있는 헝겊을 떼어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또한 소들을 생각해서 한 소가 한 달에 두 번 이상 경기를 하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호주인가에서는 돌고래 관람을, 하루에 할 수 있는 횟수 였나를 제한했다고 한다, 돌고래를 위해서. 덴마크의 경우, 자기 집의 보수공사조차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태국에서는, 지금의 할머니 세대들이 어렸을 때는 지금과 같이 모두가 고유한 이름을 갖기 보다는 고양이, 말과 같이 주변에 흔한 동물이나 사물 이름을 사람 이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보통 한국 사람과 외국 사람(이 사람들은 주로 미녀들의 수다에 나왔던 사람들로 보인다)이 같이 여행을 가는데 외국인 여행자는 주로 한국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프랑스를 여행할 때, 향수 제조하는 곳에 갔던 외국인이, "아이리스? 아이리스는 뭐지?" 한다. 이 외국인은 독일인이었고, 프랑스어를 할 수 있어 보였으며, 당연히 영어는 잘 했을텐데, "아이리스"를 몰랐을 리는 없다. 아마도 머리 속에서는, 한국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에서의 아이리스를 찾고 있었던 것일까? 쓰여 있는 것은 불어나 영어였을텐데 왜 아이리스를 곧바로 알아 보지 못했던 것일까? 흥미롭다. 또한 에바가 '동상'이라는 한국어를 생각해 내려는 장면도 재미있고, 마리아 였나, 하는 덤벙대는 외국인이 태국에서 '이모'라는 단어 '쿤메'를 알아가는 장면도 재미있다. 이 밖에도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있다. 물론, 영화를 봐도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매우 짧거나 사소한 부분들이라 많은 사람들이 거의 무시하긴 하지만...

   제일 괜찮은 여행은 이언정과 브로닌인가 하는 사람의 그루지아행이다. 지나가다가 결혼식에 가는 신랑.신부를 만나 결혼식에 초대 받아 현지인의 결혼식에 가는 장면과(특히 이언정이 현지인과 춤추는 장면, 정말로 '리얼'하다), 2000미터가 넘는 고산 지역에서의 생활, 등등. 제일 재미있었다.


(내일은 이미지를 추가해야지)


   이런 류의 프로그램은 좀 더 길게 계속되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끝나버렸다. 반복적으로 한 열번 씩은 본 것 같아서 다른 여행 프로를 찾아 보았는데, 역시나, 그냥 놀고 먹는 것이 주를 이룰 뿐이다. 보통은 출연자들이 다소 수동적으로, 그러니까 그냥 얼굴마담 식으로 나올 때도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다소 능동적으로 출연자가 행동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출연자가 직접 자료도 찾아 보고, 갈 곳을 정한 듯이 보이는 장면도 더러 있었다. 여행은 이렇게, 여행자가 직접 선택하고, 현지인과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맛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좋고, 멋진 곳 뿐만이 아니라, 라오스 여행편처럼 시골의 어느 집에 가서 벼도 베고, 점심을 먹는 도중에 반찬 장사 아주머니가 들르기도 하고, 그런 것처럼.


(오랜만에 만난 나의 친구 segmentation fault을 또다시 기다리며 적어 본다. 데이터 하나 처리하는데 5분 정도 걸리는 것을 몇 십 개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놈의 seg. fault 가 떠놔서, 일단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아 본 다음 batch 로 실행시켜 놓고 자려다 보니 벌써 새벽이다, >.<"")


  1. 물론, 현지인의 제안이나 출연자의 몇몇 언급들이 짜여져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지만 생활하는 모습 자체는 정말 현실적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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