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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

by adnoctum 2011. 6. 3.


   태어난 생명이 당위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목적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다. 따라서, 그냥 태어났으니까 대충 살다가 죽어도 상관이 없다. 즉, 왜 사는가,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삶에 있어 목적을 갖고 살 것인가, 하는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따라서, 그냥 개처럼 벌어서 개처럼 쓰다가 개처럼 죽어도 상관이 없다. 이것저것 생각하기 골치 아프고, 당장 월세가 바꿔버릴 통잔 잔고의 숫자 몇 개가 걱정이고, 회사에서 김대리가 자꾸 딴지를 거는 것 같아 이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할지 적당히 친해질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고백을 했건만 아무런 연락도 없는 그녀에게 문자라도 한 번 더 넣어볼까 고민도 되고, 등등등 현실적인 삶의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히기 전에, 그 전에 진지하게 한 번 만이라도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최소한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나는 어떻게 살겠다', 라는 것이 정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아무렇게나 살겠다'도 그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 중 한 예이긴 하나, 그렇게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사는 것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꼭 같지는 않다.

   왜냐 하면, 결정 끝에 '아무렇게나 살자'로 나온 것은, '선택'을 거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요하다. 선택을 거쳐 나온 것이기에, 언제라도 다시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즉, 언젠가는 '아,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라거나, '아무렇게나 사는 것보다는 저렇게 살아야 겠다', 라는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산다면, 선택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이 살다가, 무로 남아 있게 될 때조차도 아무 생각이 없게 될 뿐이다. 즉, 자식교육도 엉망이란 얘기다. 이런 사람들은 죽은 이후에는 그토록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무소유를 실천하시면서 살아 있을 때는 모든 것을 갖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어리석은 일이다.

   목적성은 방향을 지시한다. 방향은 행동을 지정하고, 시간과 함께 움직임에 변화를 가져 온다. 가끔가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또한, 그 방향에 맞는 행동을 계속적으로 찾아 내게 된다. 그렇게, 1년, 3년, 5년이 흐르면 작게 쌓인 행동의 결과는 결코 작지 않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들은 1년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10년에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고. 1년 계획을 거창하게 세운다는 것은 1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과장한 것이다. 반면 10년 동안 꾸준히 한다면 훌륭한 것을 할 수 있지만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는 것의 위대함을 좀처럼 알지 못하기에 10년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은 별반 다르지 않을지라도 한 달 전과 오늘, 1년 전과 오늘, 5년 전과 오늘, 10년 전과 오늘은 달라야 한다.

   계획은 필요 없다, 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언제나, 극단적인 표현은 틀린다 - ㅋ. 방향성에 대한 행동 방식 중의 하나가 계획이다. 구체적일 수도 있고, 허황될 수도 있다. 행동하면서 계속 바꿔 나아가야 한다. 행동과 생각은 언제나 상호작용 하에 시간에 따라 유기적이고 유동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지향하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브라운 운동처럼, 아무리 빨빨대고 이것저것 행동해 봐야 변위(displacement)는 0,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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