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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

무책임한 페르마

by adnoctum 2011. 10. 9.


   x^n+y^n = z^n

을 만족하는 (x,y,z), n>2, n 은 자연수, 해는 없다.

"나는 이것을 기가 막힌 방법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여백이 없어서 적지 않는다."

라고 했다 하지. 무책인한 녀석.

문제를 제기할 때는 대안도 함께 제안해야 한다.

가 바로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논술을 할 때 따라야 하는 범생이 답안인데, 페르마는 대안, 즉 증명을 제안하지 않고 문제만 제기했다. 그런데 실상 수학의 많은 증명들이, 아마도 이럴 것 같다, 는 가설(conjecture)을 제안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증명이 되곤 한다.

   그런데 이 내용을 조금 더 확장해 보자면 사회에 관련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가 대안도 함께 제시하지 않으면 그런 문제 제기는 할 필요가 없다거나 무책임하다거나,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거나, 말하며 폄훼를 한다. 우낀 일이다. 아마도, 수업 시간에 허구헌날 들었을 "문제 제기 후 대안 제시"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것은 교과서에나 있는, 틀에 박힌 문구에 불과하다니까. 그저,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을 마치 무슨 정답인양 세뇌당하는 학생들에게는 다 자라나서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지. 교과서조차도 단지 '안전한 시선'의 집합채에 불과한, 한 시각일 뿐이고, 그것이 결코 답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문제 제기 후 대안 제시"라는 틀은 어리석은 말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내용의 교과서(적) 말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활자의 권위에 중독될 필요는 없지, 쳇. 

문제 의식도 주시고, 답도 주셔야지요. ?

   그렇다면,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문제 제기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바로 이러한 것이다. 지극히 논리적인 귀결에 따라 아마도 이 글의 어딘가에는 반드시 이러한 단락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자체 모순을 방증하게 된다. 즉, 문제를 제기할 때 대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것은 문제와 답을 함께 달라는 것이다. 답안지가 없는 문제집을 풀지 못하는 이들처럼, 답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답을 달라는 것이다. 나는 생각할 줄을 모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모범 답안'에 맞는지도 확인해야 하는데, 답이 없으면 그것을 못 한단 말이지. 우끼는 일이다. 제 생각이 왜 고정된 틀에 들어 맞는지 아닌지를 생각하려 하지? 그냥 자기 생각일 뿐인데 어느 생각에 맞을 필요는 없잖아. 따라서 답안이 없는 문제 제기도 얼마든지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답안이 없다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우선 생각 가능한 답안을 스스로 생각해 내서 실제로 적용해 보면서 조금씩 수정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 제기는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출발점이다. 대안은 '같이' 생각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 '답안을 주시면 따르겠사옵니다', 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으름뱅이처럼 문제와 답을 모두 주세요, 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답도 '정답'을 원하는데, 우낀 일이다. 그딴 건 문제집의 문제에나 있는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언제나 한계를 갖는 방법으로 시작하여 조금씩 수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뭐하나 제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스스로 해결해 본 경험 없이 그저 문제집이 시키는 풀이법에 따라 끄적거려 답을 찾고 답안과 맞추어 보기만 했다면 하늘에서 완벽한 정답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거부하려 하지. 그러한 게으른 이상주의는 버려야 한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이론적 완벽함에 갇혀 있다. 글 하나만 읽어도 그 글 하나가 그 자체로 완벽할 것을 기대하는데, 이것도 우낀 일이다.


   따라서, 나는, 문제 제기는 대안이 제시되지 않더라도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첫 걸음이기에 호의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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