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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영화

즐거움에의 몰두

by adnoctum 2011. 1. 29.


   즐거움에의 몰두. 무엇인가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 다른 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자체만을 위해 그것을 할 때. '그것'이 무엇인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그 무엇에 몰두되어 그것을 해 나간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영화에서 몇 장면을 뽑아 본다.


   서편제 (1993년, 한국)







   스윙 걸즈 (2006년, 일본) (4분 부터 보면 됨. 애들이 화내는 장면의 시작 부분. ㅋㅋㅋ )



(윽, 위 영상을 클릭하면 재생할 수 없다는 메세지가 나오는데, 다시 한 번 클릭하면 유툽에서 볼 수 있다)



   샤인 (1997년, 미국)




    빌리 엘리엇 (2000년, 프랑스/영국)
왕립 발레 학교 오디션 장면. 영상 못찾음. 대신 빌리가 화나서 춤추는 영상이라도 보자.






   '몰두'는, 처음 시작하기 좀 어려운데, 일단 몰두를 하게 되면 몰두되어 있는 시간동안에는 '자신을 잊는다'고 한다[각주:1]. 영상을 찾지 못해서 넣지 못했는데, 빌리 엘리엇에서 빌리가 왕립발레 학교에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정규 발레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광산 촌구석에서 온 빌리가 제멋대로 춤을 추니 심사위원들이 좀 당황. 그런데 한 명의 심사 위원이 춤을 출 때 무엇을 느끼는지를 묻자 빌리는, "~~. 그리고... 저는 없어져요." 갑자기 증가되는 심사 위원들의 시선 교환. 이것은 어느 소설엔가에서도, 외줄타기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자신을 잃고 외줄에서 노는 것이라던 것과 일맥상통. TV처럼 그냥 아무런 노력 없이도 시작하게 되는 일이 몰두를 가장 어렵게 한다고 하는데, TV와 같이 시작이 쉽게, 아무런 노력도 없이 되는 것은 결국 지나고 나면 항상 허무감만이 남는 반면 몰두를 하게 되는 것은 시작하기 매우 힘들지만 일단 시작하면 자신을 잊게 되고, 그리고 끝났을 때는 커다란 만족을 얻는다고 한다.


   서편제. 넉넉지 못한 소리꾼 생활. 누나를 여자로 여기며 좋아하는 남동생의 슬픔과, 소리꾼이 되기 위해 맹인이 되어버린 여자의 슬픔, 그리고 그것을 아는 아비, 게다가 아들과 딸이 원래 전혀 핏줄이 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감추고 있는 아비. 그러한 생활 가운데, 그 누구의 즐거움도 아닌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위해 저렇게 길을 가다 진도 아리랑을 부른다. 아...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인지 6학년 때 저 영화를 학교에서 틀어 준 적이 있었는데, 난 다른 장면은 전혀 기억이 안나고 딱 저 장면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얼마 전 저 장면을 유툽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어찌나 기쁘던지.

   스윙 걸즈. 대회에 못 가게 된 절박한 상황. 그 와중에... 갑자기 시작되는 연주. 아이들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를 한다. 비록 장면이 매우 짧아 아쉽기는 한데, 나는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이 가장 좋더군.

   샤인. 피아노를 쳐야만 하는 이. 결국... 찾아간 식당에서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게 되는데...

이 세 영화 모두 어느 정도 슬픔이 있는 상황에서 즐거움 그 자체에 몰두하는 것. 원래, 진정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상황이 저렇게 힘들 때에서야 비로소 힘을 발휘하는 것. 원래 평화로울 때는 대부분 착하고, 행복할 때는 많은 이가 긍정적이다. 진정한 선함과 긍정, 강인함은 상황이 악화 되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 쇼펜하워였나 아리스토텔레스였나, 하여튼 누군가는, 그래서 '비극'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문학의 정수라고 했던 듯. 저 세 영화도 살짝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영화 여인의 향기(1992년, 미국)에서 나오는 장면 중,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이라 생각하는 마지막 장면[각주:2]. 주인공과 알 파치노가 학교에서 교장과 학생들 앞에서 범죄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알파치노의 연설 장면. 알파치노가 연설할 때 다른 사람들의 모습, 바로 그 모습이 몰두한 모습. 알 파치노 연기는 정말 지존!



잠깐 설명하면, 주인공 찰리 심슨은 친구들의 못된 장난을 보게 되는데, 교장은 그 장난을 친 놈들이 누군지 밝히려고 한다. 찰리가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을 알고, 만약 누가 그랬는지 말해주면 하버드에 추천서를 써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찰리는 끝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 알 파치노는, 찰리가 알바를 하면서 만난 퇴역군인인데 원래 찰리의 도움으로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자살을 하려 하였다. 그런데, 찰리와 같이 있는 동안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고, 그래서 찰리를 돕고자 저 재판에 찰리의 부모 친구라 하며 참석하게 된다. 알 파치노의 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눈이 보였을 때는 이보다 더 어린 아이들 팔다리가 뜯겨 나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이렇게 영혼을 망가뜨리는 모습은 없었다." (원 대사는 there's nothing like a sign of an amputated spirit).


(ㅋㅋ 난 오래 된 영화만 취급한다는...)


  1. '몰입' by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읽은지 1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이 내용은 기억이 난다. [본문으로]
  2. 많은 이들이 탱고 추는 장면을 꼽곤 하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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