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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모범답안이라는 추상적 해결책에 대하여

by adnoctum 2011. 1. 4.

 
   많은 문제의 경우, 우리는 '모범 답안'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왜 그 모범 답안이라는 것이 현실성 없는 추상적 이야기로 매도되어야 하는 것일까? 에 대한 의문이 있다. 문제는 추상적 모범 답안이 아니라, 추상에서부터 현실로의 이행을 이루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닐까?


   예를 들면, 이공계 종사자/프로그래머에게 영어는 꼭 필요한가? 프로그래머에게 수학은 필요한가? 이공계 사람들에게 문학적 소양은 필요한가?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범 답안을 알고 있으며, 많은 경우, 그것이 무엇이든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착실히 고민을 거듭하여 결국은 "모범 답안"에 도달하다고 해도, 또 하나의 고민이 없다면 그 답안은 그저 공허한 소리로 그치고 만다. 다음 예를 보자. 지난 달에 발표된 논문에서 일부 인용해 본다.

Additionally, it is worth noting that for many complex diseases, known preventive lifestyle changes are broadly beneficial: weight loss, smoking cessation, blood pressure control, regular exercise, diets enriched with fruits and vegetables, etc., so to many individuals, it might be wasteful to spend $1,000 to find out they are genetically at increased risk for some condition only to have their doctor tell them all they can do is to lose weight and stop smoking. On the other hand, if the person is more likely to make lifestyle changes and stick to them, then the benefits can be great, both for the individual and the population as whole.
- Jakobsdottir J, Gorin MB, Conley YP, Ferrell RE, Weeks DE (2009) Interpretation of Genetic Association Studies: Markers with Replicated Highly Significant Odds Ratios May Be Poor Classifiers. PLoS Genet 5(2): e1000337. doi:10.1371/journal.pgen.1000337


 
대충 해석하자면,
"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에 대해서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몸무게를 줄이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 혈압을 조절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과일과 채소가 많이 든 식생활을 하고 등등. 따라서, 그러니,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특정 질병에 위험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의사가 해줄 수 있는 말이 고작 몸무게를 줄이고 담배를 끊으라는 것일 때는 유전검사 비용 100만원을 낭비한 것밖에 안된다. 반면 특정 질병에 대한 위험한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도 생활 습관을 좋게 꾸준히 유지한다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매우 큰 이득인 것이다" - (많이 의역함. 이 논문 내용 자체는 이것에 촛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association study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뭐, 그런 내용)

   그러니까,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어떤 질병에 대해 위험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를 아는 것 보다는, 좋은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이다. 꽤나 모범적인 말이 아닌가?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모범 답안을 알고 있더라도, 그것을 "현실화"시키지 못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많은 해결책들은 구체적 상황에서 툭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 / 구체화의 단계를 수도 없이 왔다갔다 하면서 진정한 해답이 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거처야 하는 사고의 과정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가를 연구한 어떤 논문의 결론은, 전문가들은 문제를 구체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그것에 해당하는 일반 원리에 입각해서 바라 보기도 하고, 이 두 단계를 자유롭게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내 몸무게가 60kg일 때, 커다란 풍선에 헬륨을 넣어서 나를 띄우기 위해서는 풍선이 얼마나 커야 하는가? 와 같은 문제를 접하면 일단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계산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력'이라는 일반적 원리부터 생각한다는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에 예를 적용해 보면, 우선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추상적 답, 즉, "자유롭게 사는 것"을 얻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자유로운 삶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 "얽메이지 않기, 돈이나 명예, 관습이나 관념",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서 좀 더 자유로워 지는 것. 이런 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금전적 보상을 보다 빨리 주는(주던) 전산이 아닌 생물학을 택한 두 번째 이유이다. 


    이공계 사람들에게 영어는 필수인가? 모범 답안: 물론 그렇다. 하지만 영어 자체를 배우는 것에 있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도 막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과학 기술 자체가 영어를 중심으로 발전이 되고 있고, 따라서 영어를 중심으로 발전되는 과학 기술에 접하기 위해서는 영어라는 관문을 통하지 않고는 힘들다. 유럽에서 출간되는 논문들 또한 영어로 발간되고 있지 않은가? 노벨상 수상자를 17명 배출한 독일의 Max Planck Society, 왜 이 곳의 공식 언어는 영어일까?[각주:1] (제발 한국을 일본과 비교하지 마라) 자, 이런 추상적 답변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다른 것 없다, 우선 영어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번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면 된다. 번역 부분은 개인 차원에서 될 일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하는데, 한국은 거의 없는듯 한 것이 문제이지만.

    수학과 프로그래밍. 수학과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수학이 필수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각주:2], 수학을 해서 프로그래밍에 해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무의미한 논쟁을 매우 싫어하는데, 중요한 것은 수학이 프로그래밍에 필요하느냐 안 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수학 지식과 수학적 사고력을 어떻게 프로그래밍에 적용할 것인가, 이다. 이 추상적 해결책 속에 숨어 있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사용할 방법은 무엇일까? smoothing이 하고 싶은가? 급하면 library 찾아 쓰거나 matlab에 있는 함수 호출해서 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cubic spline 같은 것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구현하던가, monotonicity가 중요하면 monotone cubic interpolation이나 Savitzky-Golay smoothing (관심 있는 사람은 일독을 권함. 감동적임) 을 이해하고 쓰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너무 연구하는 입장에서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알고리즘이 pseudo code로 나온 논문을 가지고 구현을 하지 못하면 프로그래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회사 다니는 친구는 논문 찾아 달라고 자주 부탁을 하는데, 그 녀석은 거기 나온 알고리즘을 구현해 쓴다) 심지어 change of basis나 2차원을 N 차원으로 확장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를 갖고 씨름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여러 번 있는데, 수학을 모르거나, 공식을 수학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몇 가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모범 답안'을 아는 것에서 그치고 만다. 바로 거기서 멈추었기 때문에 그것이 쓸모 없게 생각되는 것이다. 우선 추상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놓은 다음, 그것을 구체화 시키거나, 구체화된 여러 사례를 이용해 추상화 한 후, 그것을 다시 구체화시켜 생활에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모범 답안은 죄가 없다. 그것을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일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개별 사례(하늘색 네모)에서 추상화를 하면, 같은 추상적 개념 밑에 있는, 내가 전에는 보지 못했던 개별 사례(갈색네모)의 실체에 보다 쉽게 접근할 기회가 생긴다.






ps. 모범 답안에 딴지를 거는, 의심하는 태도, 매우 좋다. 모범 답안은 통시적으로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원본 작성일 : 2009-04-03 00:45

미몹 백업함.
  1. official language가 영어라는 말을 예전에 MPI 홈페이지 뒤지다 본 기억이 있는데, 지금 다시 찾으려니 못찼겠다. [본문으로]
  2. Fourier transformation 같은 것을 '하느냐, 아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수학이란. '공식'을 외우느냐 못 외우느냐 하는 것이 '수학'이 아니라는 말이다. 상상력과 논리적 철저함을 버무려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수학이지. 참고로 내가 지금 쓰는 수학 공식들, 학부 때 배운 것은 거의 없다. 학부 때는, 단지 그것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을 배웠을 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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