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영화

글읽기와 삶읽기 1편 - 조혜정

by adnoctum 2005. 5. 14.




   인상적인 부분의 글 색을 바꾸다, 너무 많아서 그냥 모두 검은색으로 남겨 둔다. 낮잠을 잘 요량으로 골랐다, 그 자리에서 다 읽게 되었던 책.


 


지은이: 조혜정.


 


비판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도 그냥 외워버려 박제화했다. -p.175 ... 지금도 나의 이야기를 하는 수업보다는 남의 글들을 읽고 요약 정리하여 발표하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쉽다. 나의 가슴은 차갑게 놓아두어도 되며 멀리 떨어져 관망하는 자세가 편하다. 나를 들춰내는 것은 아프다. 그러나 그만큼 내가 하는 일에서 해방감이나 신바람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없다. (대학원 2학기, 은희) p.124 ... 내가 고민하는 공부가 내가 바로 내가 해야 하는 공부라니!


 


가정에서 "예, 예" 하고 학교에서 "예, 예"하며

입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우리

12시간을 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교과서와 문제집에 통달한 훈련된 우리

'꿈'많은 부모님의 장한 아들과 딸

'선진조국'의 자랑스런 국민.


교과서에 없는 질문은 하지 마세요, 선생님.

正典을 외울 때가 행복했어요, 선생님.

괴로운 고3이라니요, 괴로운 대학이지요!

명령해 주세요, 권위 있는 소리로,

문제 의식도 주시고 그 해답도 주셔야지요.

현실 보는 눈을 따로 갖고 싶지 않아요.

- p.125

 


"재미는 있지만 교과서는 될 수가 없겠어요. 어디다 밑줄을 쳐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 초등학교 6학년.

"문명의 4대 발상지는?"하고 질문이 떨어지면 퀴즈의 답을 맞추듯 답을 재빨리 찾아내는 훈련은 누구 못지 않게 받게 되며 이때 이들은 문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세상에는 황금률이란 없다. 이것이 첫번째 황금률이다"는 깨우침 속에서 자율적이고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면 학생들은 두려워하는데, 그런 상대주의적 입장은 무규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끈질긴 불안과 공포는 어디서 오는지? - 180



   위의 글에서 보이듯이 이론에서 명료한 대안까지를 기대하는 의존 심리와 글의 논리성과 객관성에 대한 논란이 푸코에 대한 학생들의 토론과 쪽글 내용의 주제였다. 여전히 역사성을 바탕에 둔 상대주의보다는 절대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푸코가 제시한 역사적 해석 방법의 유용성이나 식민지였던 사회에서 푸코적 언설과 맑스적 언설이 시사하는 바의 차이 등과 같은 차원의 논의보다 텍스트 자체의 완벽성과 글 안에서 논리적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 또는 지금 규정된 상태의 한국사회론과 이 새 이론과의 접합성을 따지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자신의 신념과 연결시켜서 그 선 안에 들어오는지 안 오는지를 판가름하는 당파주의 책 읽기 경향도 현저하게 드러났다. 규범적인 사고가 개방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강하게 억제하고 있음을 여기서 보게 된다. -119p

 


   똑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입시 위주 공부를 저항없이 해온 순종형으로 '공부'를 잘한다는 덕에 부모와 교사로부터 턱없는 우대를 받으며 자란 '애 어른'들, 대학에 와서 비로소 '자유'와 '자율'을 누릴 기회를 갖게 되지만 그 자유의 공간이 부담스럽고 어색하여 자신의 몸을 기댈 새로운 권위를 찾아 헤메는 입시 중독증 환자, 풍요로운 감성을 느낄 바탕을 거세 당한 지 오래이며, 교실에 한없이 앉아 있으라고 하면 그렇게 할 참을성 외에는 참을성이라고는 없고, 텔레비전과 오락기로 스트레스를 풀어온 세대. 교실에서는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저희들끼리는 밤새 코미디 같은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아이스크림을 고르라면 수십 가지 중에서도 문제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낼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삶의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는, 그 세대 특유의 유행성을 내세워 기성세대를 턱없이 무시하다가 어느새 체제 순응의 옷을 순식간에 갈아입고도 별 갈등을 느끼지 않는, 이 시대의 불행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는 희생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 편견이 이 교실에서의 만남을 통해 크게 수정되었다. -p126.


 

   먼저 책 안 읽기와 입시 중독증에 관해 살펴보자. 현재의 대학생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문을 뚫고 거의 탈진 직전에 대학에 들어왔다. 입시 준비 시절의 괴로움에 비례하여 기대감은 컸고, 막상 대학 입학 후에는 심리적 갈등이 많은 시기를 거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앞으로 이 사회의 지도적 지식인이 될, 아니면 적어도 안정된 생활을 할 가능성을 확보해 놓은 집단이며 경제성장이 급격히 이루어진 시대에, 입시 경쟁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자식들의 출세에 목을 매단 부모들의 기대 속에 자라났다.

   이들이 약 18년간에 한 삶의 체험이란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온 경우일수록, 재수를 안한 경우엔 더욱, 극히 한정된 범위에서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학 신입생을 가르칠 때마다 그들의 체험은 국민학교 5학년 정도에서 멈추어선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나는 종종한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경쟁적인 입시 풍토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나름으로 삶을 직접 살아보는 체험의 기회를 박탈당해 왔을 뿐만 아니라 간접체험의 장인 책 읽기의 기회마저 빼앗긴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책 읽기는 도식적 책 읽기일 것이다. 교과서나 참고서 외에는 책을 읽지 않으며 - 잠시잠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만화책을 읽는다- 읽더라도 매우 수동적으로 읽는 것, 시험 준비를 위한 '보충 참고서 보기'나 교리문답 준비를 위한 '성경 읽기' 식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도식적 책 읽기에 길들여진 학생들 중에는 대학에 들어와서도 계속 교과서나 읽고 학점 따기, 영어 공부, 취직 공부나 하면서 삶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책보다는 일간지, 월간지나 텔레비전 수준에서 '정보'를 얻는 식으로 지낼 것이다. -p164



   "재미는 있지만 교과서는 될 수가 없겠어요. 어디다 밑줄을 쳐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이렇게 국민학교 고학년이면 벌써 입시 중독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현재와 같이 형편없는 수준의 사지택일형 시험공부만 하다보면 학생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교과서 안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현실과 관련이 없는, 외울 수 있는, 그러면서 점수 차이를 낼 수 있는 단편적 지식들"을 요약 정리하고 출제자가 기대하는 정답을 찾아내기에 급급해진다. 달리 말해서 "문명의 4대 발상지는?" 하고 질문이 떨어지면 퀴즈의 답을 맞추듯 답을 재빨리 찾아내는 훈련을 누구 못지않게 받게 되며 이때 이들은 문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본다든가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상상해 보지 않는다.

   자연히 암기력에 바탕을 둔 기계적인 사고를 하게 될 뿐 다른 식의 사고, 곧 비유적인 사고라든가 독창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들은 커다른 틀 안에서 개념과 기준이 먼저 주어져야만 머리를 굴린다. 이 <문화이론> 수업이 괴로운 것은 개념 규정을 확실해 해주지도, 생각을 정리할 기준을 명확하게 주지도 않은 채 진행되기 때문이다. 정답을 잘 찍어내기 위해서는 변화무쌍한 실생활과 연결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 시험을 잘보는 황금률 중에 하나다. 실생활과 관련시키다 보면 헷갈리기 일쑤이고 그러면 틀리게 된다. 적당한 수준에서 머리를 굴려야 하며 너무 추상적으로나 너무 현실적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부'를 위한 말과 생활을 위한 말은 일찍부터 분리되며, 삶과 따로 노는 지식이 '공식적' 지식으로 군림하게 된다. 학생들이 단편적 지식을 조립하는 기계적인 사고훈련만 받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들은 반복적 '공부' 과정에서 엄청난 '의지력'과 참을성도 기르고 극심한 경쟁심도 갖추게 되며 자신 속의 소리를 듣기보다 항상 남(특히 입시출제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를 보는 기술도 배운다. 이런 모든 능력은 거대규모의 생산공장에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산업 역군이 가져야 할 가장 필요한 자질들인지도 모른다. 상관의 마음을 잘 읽어 내고 경생심을 늦추지 않으며 시키는 일이 아무리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계적으로 꾸역꾸역 해내는 인내심을 가진 탈정치화된 인력 양성의 차원에서 말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식인'과는 거리가 먼 단순 체제 인간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p164~165


 

   이 세대에게 훌륭한 책이란 "삶이 담기지 않고 그 자체로서 하나의 완벽한 체계를 갖춘 책", 아니면 누구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권위주의적 목소리를 담은 책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자기의 삶과 연결되는 '소소한' 개인 이야기가 담긴 책은 심각하게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심어졌을 것은 분명하다. 학생들 중에 어려운 말이나 이론이 담기지 않은 책을 볼 때 불안해 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너무 쉽게 이해되면 배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이런 '배움 아닌 배움'에 길들여진 강박관념에서 나오는 반작용들이다. -p166


 

   그 동안의 입시 교육의 뿌리가 너무 깊어서 새로운 책 읽기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근대적 사고의 기본이 '의심'의 제도화에 있다고 기든스가 지적했듯이 사실, 절대주의적 사고를 넘어서서 상대주의적으로 보는 것, 곧 주어진 '진리'를 끊임없이 의심해보고 새로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태도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그 동안 학생들이 길러온 태도와 너무나 다르다.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에서 길들여진 학생들은 정답이 없는 질문을 매우 싫어하며 혼돈 상태를 참아내지 못한다. 성급하게 근원주의, 본질주의로 빠지는 것이라든가 어떤 거창한 이론에 완전히 기대버리고 싶어하는 것도 바로 그 동안 길들여진 사고 경향과 관련이 깊다. '경전 읽기' 방식을 벗어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그들은 결국 경전만 바꾸었을 뿐, 그 방식에서는 여전한 경전 읽기를 계속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이 실은 바로 문화의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닌가? - p167


 


    나는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다루고, 또 그에 알맞는 이론을 구축하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겨왔다.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인간이나 뒤떨어진 지식인으로 취급된다. 내가 한때 지방자치제에 관하여 공부하고 있을 때 나의 좁은 시각을 꾸짖던 친한 친구의 모습은 이 시대 지식인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한국 사회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데에는 익숙하면서도 우리 동네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수거 문제의 원인 분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과연 이 시대에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이론은 무엇인가? 적어도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외면하지 않는 이론이어야 한다는 것이 최소한의 대답은 될 것이다.

   나는 방법론에 참 관심이 많으며 또한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기능주의, 구조주의, 해석학, 현상학, 방법론적 개인주의, 변증법적 유물론, 이 모두 나에게 큰 흥미를 주었던 분야이다. 방법론에 대해 남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나의 논리에 매료되기도 한다. 남들도 그러한 나의 모습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한마디 물음에 나는 맥을 못춘다. "그래서 어떻게 (무엇을) 하면 되는데? (so what?)" 정말 나는 나의 방법론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실제 어떠한 모습으로 발현되는지, 방법론과 실제가 어떻게 조응되는지, 그리고 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감감하며 아예 관심도 없다. 그러면서 수업시간에, 그리고 술집에서 열띤 논쟁을 벌이며 자위하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경영학과 대학원 2학기, 남, 준규) -p179


 


    "세상에는 황금률이란 없다. 이것이 첫번째 황금률이다"는 깨우침 속에서 자율적이고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면 학생들은 두려워하는데, 그런 상대주의적 입장은 무규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끈질긴 불안과 공포는 어디서 오는지?

   사회과학에서, 특히 현실을 이해해 가려는 과정에서 '감을 잡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 면에서 '감응적 개념'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감응적 개념'이란 그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감으로는 알고 있으나 아직 명확한 개념 규정은 이루어지지 않은 개념을 뜻한다. 사회과학의 발전사는 어떤 면에서 이런 감응적 개념을 보다 확실한 개념으로 풀어가는 역사이다. 그런데 기존의 교실에서는 이런 감응적 개념을 싫어한다. 그런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불안하게 생각하고 그런 개념을 담은 책들을 교재로 쓰지 않는다. 학생들도 이 감응적 개념을 참아내지 못한다. 불명확하게 규정된 개념에 대한 불신감은 참으로 대단하다. 확실한 것에 대한 유혹은 어쩌면 자신의 사고력에 대한 불안과 비례해서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개념이란 거의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한 지성계를 생각할 때 이러한 반응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그러나 "감을 잡아가는 과정"을 않겠다고 버티는 한 우리 학문은 자라날 수 없다.


 

'독서.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월한다는 것  (0) 2006.07.14
무뎌진다는 것  (0) 2006.06.29
성채 - A.J. 크로닌  (0) 2005.07.02
우파니샤드  (0) 2005.06.11
명상록 - 마르쿠제  (0) 2005.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