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냥_생각

작은 역할

by adnoctum 2011. 1. 11.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국어책에 '현이의 연극'이란 글이 있었다. 현이 엄마의 시점에서 쓰여진 글이었는데, 현이가 학교에서 연극을 한다고, 엄마 꼭 보러 오시라고 해서 갔는데 연극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더래서, 연극이 끝나고 현이에게 어떤 역할로 나왔느냐고, 엄마는 못 보았다고 하자, 현이는, 작은 나무였는지 꽃이였는지를 했다고, 중간에 다른 아이가 건드려서 쓰고 있던 소품인가가 떨어져 얼른 정상으로 해 놓았다는 얘기를 듣고, 작은 역할을 맡고도 열심히 하는 딸이 대견스러웠다는 이야기.


   나는, 누군가를 훌륭하게끔 해주는 '결정적이고 커다란' 그 무엇은 없다고 본다. 단지 작은 것들 여러 개가 더해져서 훌륭한 사람도 나오고, 매우 악질적인 사람도 나오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되기 어려운 것 같다. 뭔가가 눈에 확실히 보이면 그것만이라도 따라 해보며 배우려 노력할 수 있을텐데, 그냥 겉으로 보아선 뭐 별로 다른 것도 없는 것 같단 말이지. 사람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모두 그렇게 작은 것들이 합해 져서 좋은 가정, 좋은 사회, 좋은 국가가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단박에 뛰어난 국가가 되겠다고 뭔가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되겠는가. 흔히 말하는 저력/내공이란 언제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한땀한땀 짜임새 있고 튼튼하게 하려면 시간이 안 들어갈 수 없겠지. 얼마 전부터 여기저기 만들어지기 시작한 어린이 전용 도서관, 아무리 그래도 한국의 문화적 수준[각주:1]이 유럽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시작해 놓았으니 조금씩은 나아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지금 한국 사회는 참 여러 가지가 비정상적이다. 어디, 무너지는 나라가 전쟁과 기근 등의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어느 순간 확 무너지겠는가. 다 조금씩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지. 코끼리한테는 쥐가 무서운 놈이라고 한다. 코끼리 다리를 갉아 먹는데, 코끼리는 그것을 미쳐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중에서야 다리가 많이 없어진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그런 것처럼, 우리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둘 모여서 결국은 큰 게 되는 것이겠지.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만든다' 참 좋은 말이다. 그것이 좋은 작은 것이었든 나쁜 작은 것이었든, 여하간에 작은 것들이 조금씩 시나브로 모이면 커다란 게 된다. 그러니,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있더라도 좀 참고, 화를 내야 할 것에서는 화를 낼 줄도 알면서도, 자기가 맡은 작은 일도 정성들여 하는 생활, 분명 나를, 우리를, 그리고 나아가 더 많은 것들을 바꾸게 될 것이다. (흠, 자, 이것으로 오늘의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E.B.S. 응?)

원본 작성일 : 2009-02-23 02:58
미몹 백업함.

  1. 이런 말에, 사대주의라느니, 문화의 '수준'은 주관적인 것이라느니, 그런 말 하지 말자. 그러면 더 불쌍해진다. 딱 개념이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오락가락하는 질풍노도의 중학생이 반항하면서 하는 말이란 말이지. 그래서 그런지 저런 말 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데서 자부심을 갖고, 자부심을 가져야 할 곳에선 열등감을 느끼더군. [본문으로]

'그냥_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임감  (1) 2011.01.22
아닌 건 아닌 게 아닌가?  (0) 2011.01.19
사람은 어떻게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0) 2011.01.11
인생...  (2) 2011.01.04
짧은 생각들  (0) 201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