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사/노을과풍경

서늘한 바람

by adnoctum 2010. 8. 8.
2009-08-27 21:48


   얼마 전부터, 부쩍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 서늘해진 바람. 오늘은, 비가 온 후 좀 무더운 바람이 온통 세상을 덮어버리긴 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꽤 서늘했다. 요 며칠간 몸이 많이 안 좋아서, 일찍 들어와서, 글이나 쓰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룸메이트가 오면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우다, 잠깐 밖에 나가 담배 하나 물고, 운치 가득한, 밤하늘과 구름, 별들하며 달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는 많이 서늘해진 바람이,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뚜렷하지 않은, 가을에 관련된 몇 가지 '느낌'들이 떠오르면서 살짝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벌써 목요일이다. 나의 친구 두통. 그리고,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피로감이 나를 1mm 로 짖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랩에 느즈막히 나가서 - 잠에서는 좀 일찍 깨긴 한다 - 일하는 흉내를 조금 내다보면 피곤해서 그냥 졸고 있고, 버티기 힘들어서 일찍 들어 와서 자려 하면 또 잠은 안온다. 역시, 농부의 아들에게는 노동이 필요한 거야... 너무 몸을 막 굴렸는지, 얼마 전에는 낮잠을 4~5시간 자고 밤을 새려 했는데, 새벽 2시가 되니 졸려서 좀 의아했다. 이젠... 사람답게? 생활해야겠구나.


   요즘 쓰는 글들은 모두 건조한 것들. 딱히 전공과 관련된 생각 이외에는 하는 생각이 별로 없다. 생각이 없다, 생각이. 하나 살짝 말하면, 과연 자연과학은 얼마나 '귀납적'인가, 그리고 '연역'이 자연과학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있고, 자연과학은 귀납적이라 흔히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자연과학의 커다란 발전 순간순간에 연역이 커다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은 것. 이 부분을 좀 더 파고 들어가고 싶은데, 이런저런 일상에 치이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많이 없어진 것 같다. 너무 빡빡하게 생활하고 있는 느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 이 느낌이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좀 전에 저녁을 먹고 들어 가는데,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지기 시작해서 구름에 서서히 붉은빛이 감돌고 있었다. 누적된 피로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국 밥을 먹을 수밖에 없어서 먹었다는 생각과, 별로 유쾌하지 않은 공기, 그리고 처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n 가지의 일들.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모든 것을 여기서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처음이다, 자살충동은. 역설적이긴 한데, 불만 자체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즐겁게 사는 것이 내 방식이기 때문에, 세상사와 사람군상, 그리고 우리의 리명X 가카 등에 짜증을 많이 내긴 해도 여태까지 결코 자살충동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가 자살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내 처지를 비관해 보며 자살충동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려고도 했지만 결코 성공하지는 못했었다. 삶에 대한 욕구 그 자체는 강하지 않은데, 아무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몇 가지 경험해 보고 싶은 것들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어서, 그것을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죽고 싶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커다란 나무가 만든 그늘 밑 노천카페에 앉아 즐겁고/심각하고/전문적이고/추상적이고/허황되지만무의미하지는않고/일상적인 얘기들을 나누어 보는 것. 한국에서는 자주 해 봤으니 다른 나라에서도 해보고 싶다. 또는, 새로운 생화합물을 찾아 여기저기 탐사를 떠나는 것. 제주도 오지, 설악산 중턱, 우포 늪 어느 구석, 비무장지대, 이런 곳. 또는 EBI나 구글 같은 곳에서 팀 하나를 꾸려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런 일들을 해보고 싶은 마음. 그런데, 그 난데없는 자살 충동은 무엇이었을까?...

   요즘 몸이 너무 부실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귀찮은 거지. 뭐든 하기가. 이런 나의 자살충동은 사치성 자살충동이라 할만 하다. 삶의 괴로움이 아닌, 겨우 이런저런 것들이 귀찮으니까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고, 현실적으로 적절한 핑계거리가 없으니까, 만들어 진. 쳇.


   단 3초 정도 들었던 생각이긴 했지만, 어쨌든 좀 뜻밖이었다. 어쨌든 랩에 들어가니, 책 한 권을 오늘 몽땅 끝내기로 한 사람들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아직까지 맹렬한 스터디 중이었다. 나는, 가방을 챙겨 나왔다. 벤치에 앉아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보고 싶었지만, 괜시리 지는 해 따라 그녀석이 다시 생겨날까 해서 그냥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집에 전화를 걸어, 몸보신을 좀 해야 겠다는 말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내 몸을 걱정해 봤다. 하고 싶은 것이 아직 많은데, 다른 커다란 명분 때문도 아니고 단지 몸이 아파서 못 해본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 미몹 백업함.

'일상사 > 노을과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벚꽃 나들이  (0) 2010.11.22
가을저녁하늘  (0) 2010.10.26
벤치 한 곳  (0) 2010.07.30
야경  (0) 2010.07.08
구름, 노을, 그리고...  (2) 2010.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