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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노을과풍경

산들바람에

by adnoctum 2008. 7. 26.
  생활의 빡빡함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곤 한다. 실상 그 빡빡함이란 외부의 조건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내부의 문제인 경우가 많겠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거리에서도 조금만 여유를 가진다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얼마든지 관심을 기울일 수는 있을테니까.


  인간사가 얼마나 복잡하고 시끄럽게 흘러간다 한들, 자연은 언제나 한결같이 그 갈 길을 가고 있다. 인간, 제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 안에서만 시끌벅적하게 살아가다 보면 자연의 그 정교하며 조심스러운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조금만 여유를 가진다면 자연이 만들어 내는 조화 속에서 얼마든지 위안을 얻을 수 있을텐데.

  요 며칠동안 계속 비가 오락가락 하고 있다. 간간히 보는 뉴스에서는 어느 곳에 얼마만큼의 비가 쏟아져 무슨무슨 피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흘러 다닌다. 하늘은 구름에 잔뜩 뒤덮여 있고, 그래서 태양 보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가끔 앉아 있는 벤치에서는 살며시 바람이 불어 준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조용하게 왔다 조용히 사라지기 때문에 일부러 신경써서 의식하지 않는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른 모든 것도 그렇겠지만.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란, 이 복잡다양하게 얽혀 있는 욕망의 세계에서 조금은 물러나, 있는 그대로 자신을, 우리를,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며 그것을 포용하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닐까. 욕망이란 그물은 너무나도 단단히 사람을 얽메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빠져 나오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나의 바램이란 그저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가는 것. 그것이 어떻든간에 마음 속에 여유만 있다면 잠시동안만이라도 앉아 쉰다 한들,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겠지. 쉰다는 것 자체가 어떤 게으름으로 비쳐지는 세상 속에서, 아무런 야망이나 포부도 없이 그저 굶지 않을만큼만 돈을 벌면서 시간 날 때는 커다란 나무 밑에 누워 지나는 구름이나 보고, 살며시 부는 바람에 조금씩 움직이는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 오는 햇살이나 맞으며 공상에 잠기다 때 되면 밥 먹고, 잠자고, 이런 일상을 기대하는 나란 사람이 참으로 못마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조차 잊은 채 한달음에 달려가려 한다 한들, 과연 무엇을 얻게 되는 것일까? 그냥, 난 그냥, 햇살 비치는 여름 날이면 평상이든 잔디밭이든 어딘가에 누워 공상에 잠기다 졸리면 자고, 비오는 날이면 어딘가 멀리 버스타고 가면서 비오는 밖을 보고, 눈 오는 날이면 춥지 않게 옷을 입고 조금은 멀리 걸어다니는 생활, 이런 생활을 원할 뿐이다. 요즘과 같은 때라면, 소나기 그친 오후에, 한층 맑아진 대기를 느끼며 아무런 목적도 없이 다리가 아파올 때까지 걷는 것도 괜찮겠지. 그러다 좀 멀리 갔거나, 늦었거나 하는 생각이 들면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아니면 계속 걷든 해서 집이든 어디든 편히 쉴 곳으로 가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어딘가에 앉아 붉게 타오르는 저녁 노을을 보면서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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