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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관련/연구_생각

불완전함에서

by adnoctum 2010. 6. 3.


   나는 끝맺음을 잘 못하는 스타일인데, 원인을 생각해 보면 너무 완벽한 것을 추구하려는 것이 제일 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와, 내가 원하는 정도의 간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일을 한 80% 정도까지 해놓고 나머지 20%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흐지부지. 실제로 그 80% 정도까지는 미친듯이 달려 나가지만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해 놓은 것이 항상 그 상태로 완벽하거나 완전하기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보다 발전된 모습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의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논문을 위한 논문,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그리고 '실제'로는 의미없이 '이론적'으로만 의미있는 일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도 항상 신나가 달려 나가다가도 '그런데, 이 일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 거지?' 란 생각이 들고, 그러면 또 방황하다 그만 두어 버린다. 아마도 내가 그 어떤 논문도 아직 갖고 있지 않은 이유는, 하는 일의 불완전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각이 너무 빨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을 마무리 하기도 전에 수많은 문제점과 불완전한 면들을 알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 하나하나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지쳐 나가 떨어지는 것. 확실히, 좋지 않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구분하여 보다 더 중요한 일에 힘을 쏟아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성격이 그래서, 란 말은 결국 부족한 능력에 대한 변명밖에 안된다.


   시스템 생물학이라는 것이 막 태동할 시기, SBML 이라는 것이 발표되었는데, 학부 때, 그 Specification 을 전부 프린트 해서 읽어 본 후, 몇몇 문제점을 알 수 있었고, 그 당시 그것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 이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근 5년이 지난 지금은 꽤 여러 곳에서 지원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일단 시작하고 차근차근 살을 붙여 나가는 것이었는데, 나는 매우 초창기 모습을 보고 불완전하다 하여 그 이후 경시했던 것이다. 잘은 모르겠는데 이런 것이 꽤 있었다.


   잘 하지는 못해도 발전하는 중이라는 얘기, 물론 남한테는 쉽게 해주지. 그리고 나 스스로도 항상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한다'라 말하곤 하지만, 어떤 완성된 이야기를 해 나아감에 있어 군데군데 빈 곳이 보이는데 그냥 넘어가기가 영 맞지 않아서 너무 많은 일들을 흘려 보냈다는 생각을 요 며칠 사이 많이 했다.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2009-07-10 03:16
미몹 백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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