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냥_생각

당신은 고유한가?

by adnoctum 2010. 8. 8.
2009-08-11 21:53


   나는 오랜동안, 우월함이나 열등함에 대한 가정 없이 주장을 했을 때 그 주장이 우월함 또는 열등함에 대한 이야기를 내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당황했었다. 그 원인을 나도 딱히 몰라서 언젠가부터는 그런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았는데, 오늘에서야 왜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와, 내 이야기를 듣는 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나는 어떠한 차이에 대해 그것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우월함/열등함"에 대한 판단이 필요치 않은 반면, 내 이야기를 듣는 이에게 그 주장은 "다양성"이 배제된 채 다가가기 때문에 열등함 -- 우월함 이라는 수직선 상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성이 배제되었다는 것은 곳 '고유함'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것으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성을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렇다. 우선, 개인들 각자의 고유함이 없다. 이것은 곧 개인의 취향이 극소수의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을 읽는다 쳐도 분야가 한정되어 있다. 드라마/영화/연극을 본다 쳐도 한정되어 있다. 액션 영화만 좋아한다던가. 자, 여기 이 얘가 좋다. '액션영화만 좋아한다던가'는 '액션영화만'이 아니라 '액션영화'으로 이해해야 한다. 전자가 바로 '액션영화'를 다른 분야의 영화와 수직선상으로 비교하여 '고상함'을 주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취했음직한 태도이다. 난, 그런 것을 의미하려는 것이 아니라, 후자, 즉 '만'에 촛점을 두어 취향이 한정되어 있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액션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본 씨리즈나 트랜스포터(트랜스포머 아님). 일 포스티노나 지중해, 올리브나무 사이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와 같은 영화만을 좋아하는 것은 일견 본 씨리즈/007 씨리즈, 스티븐 시걸 형님이 나오는 영화만을 좋아하는 것보다 고상해 보이지만 난 다양성 측면에서 별로 좋게 보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것도 그렇다. '소설만' 많이 읽는 것은, 여러 분야를 두루 읽는 것보다는 안 좋게 생각한다. 소설/수필을 주로 읽더라도 가끔씩 리바이어던이나 로마제국쇠망사 같은 책을 좀 읽어 준다던가, 여하튼 다양한 것이 좋아 보인다. 종종, 단순히 비슷한 류의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독서를 제대로 한다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틀리진 않았을지라도 보다 나아질 여지가 많아 보인다.

   TV도 그렇다. 드라마, 좋아할 수도 있지. 그러나, 드라마'만' 좋아하는 것은, 좋지 않다. 연애/쇼 프로나 그와 비슷한 것'만' 좋아하는 것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가끔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도 좀 보고, EBS에서 하는 만화를 보며 순수함을 좀 느껴 보고(신기한 스쿨버스, 참 재미있다), 과학 채널도 좀 보고. 나도 본방사수 하는 드라마가 종종 있고, DMB로 개그 프로 본방 사수도 하고, 출발 비디오 여행/전국노래자랑/패떳/미수다/야심만만 등등도 집에 있으면 자주 본다. 다시 말해, 내가 고상한 것만 보기 때문에 드라마나 쇼/연애 프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 관건이라는 얘기다. 1박2일이 동물의 왕국보다 저급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다른 하나의 관점은, 사회적 다양성. 한국을 구성하는 많은 이들의 취미와 취향이 비슷하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하지 않는 언어습관에서도 알 수 있고, '평균' 지향적인 사회 습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인들은 '보통'과 조금 다르면 큰일이 난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공부밖에 모르는 모범생을 비웃는 사람들도 결국 공부를 꾸역꾸역 하는 것말고는 딱히 정상적 궤도에서 일탈하지 않는 모순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들은, 결국 다 비슷한 길을 밟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모두 비슷하다. 당신은 고유한가? 다들 좀 잘나고 싶은데 모두 비슷해서 그런지 나의 눈에는 명암 대결을 펼치는 이들이 너무 많아 보일 뿐이다.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의 한장면. 난 이 부분이 제일 우끼더군.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의 '고유함'이란 주로 수직선상에 놓을 수 있는 그 어떤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재산'이 많거나 '좋은 외제차'를 갖고 있거나 '좋은 대학'을 나왔다거나. 그러한 것은 결코 '고유함'이 아니다. '특성'은 될 수 있어도 결코 고유함은 되지 못한다.

   우끼지 않는가? 나의 그러한 이야기를, 자신들의 천박한 문화/교양에 대한 힐난이라 간주한 이들이 취향의 상대성을 근거로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반면, 그들 스스로는 오타쿠와 같은 이들을 자신들보다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은.


저 사람은 얼마나 고유한가! 저게 뭐가 우끼지?


   결국 비슷비슷한 사람들로만 채워지다 보니, 사회 역시 다양성을 잃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성'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다양성이 필요할 때 다양성의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2NE1이 몇 명인지 모르는 것은 이상한 것이고, 20살이 넘어서도 에리히 프롬의 글은 둘째치고 그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것을 전혀 이상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 우끼지 않은가? (이 부분이 좀 어려운데), 많은 이가 2NE1 을 알고 있다, 비슷하다 하지 않았는가, 한국은. 그리고, 많은 이가 에히리 프롬을 모르고 있다, 비슷하지 않았는가, 한국은. 만약 다양성이 충분했다면, 2NE1을 아는 사람도 많고, 모르는 사람도 많고, 에리히 프롬을 아는 사람도 많고 모르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2NE1을 알거나 모르거나 에리히 프롬을 알거나 모르거나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에리히 프롬을 아는 이는 매우 적고, 2NE1을 아는 이는 매우 많겠지. 이렇게, 개인 자체의 다양성 부족은 그들이 만든 사회의 다양성 부재로까지 이어진다. (구체적으로 2NE1과 에리히 프롬을 언급한 것은 그것이 정확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돌'과 '철학자'와 같은 일반명사보다는 직접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이다).



   결국, 한국은, 구성원 개개인으로 봐도 딱히 다양한 속성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래서 한 명의 특성은 한두가지로 요약이 되고, 그런 특성이 많은 이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사회 자체가 비슷비슷한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이가 얼마나 희안하게 보이겠는가? 젊은 사람이 아래처럼 할 때 우리는 칭찬해 주어야 한다. 뭐...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의 저와 같은 패션 센스 또한 충분히...


서울에 나타난 잭 스페로우.




에바 초호기 실사.





고유함이 없는 개인. 그리고 그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다양성이 부족한 사회.



텅빈 세대 Part 2.- 노브레인


쓰레기 더미위에 불을 지르세
어디로 가는가 텅빈세대여
제도의 노예여 통념의 제물이여
피다만 이름이여 텅빈세대여

중산층 가치관의 철부지로 태어나
통제와 억압속에 유년을 보냈노라

가려진 하늘이여
화려한 꽃들이여
염병할 가치여
빌어먹을 돈 없는 자들이여

쓰레기 더미위에 불을 지르세
어디로 가는가 텅빈세대여
뻔하디 뻔한 미사여구들이
하잘것 없는 내게 무슨 소용있는가?



 

  이런 글을 읽으면서, 여전히 "이 놈, 지 고상한 거 자랑하려고 안간힘을 쓰는군" 이란 생각을 한다면, 더이상 할 말은 없다. 나 역시 무식한 공대생의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내가 위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단지,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러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과연, 흙투성이의 옷을 입고 시골에서 닭똥을 치우고, 도리깨질을 하며 콩을 털고, 모내기를 하고 있는 나를 만났을 때 어떠한 태도를 보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시골서 일하다 만나는 grandeur xg 급 정도만 되는 차만 타도 사람을 무시하는 그 태도란... 천박함은 돈 쳐바른 차로도, 도서관 100 개로도 감출 수 없다. (어떤 이는 이런 반응을 또 열등감이라 하더군. ㅋㅋㅋ 나에게서 만들어지는 감정 중 '열등/우월'이 포함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누누히 말했는데도...)


'그냥_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든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것  (0) 2010.08.09
공각기동대  (0) 2010.08.08
생각이 갇힌다는 것  (0) 2010.08.08
보편성에 입각해서  (0) 2010.08.08
기술이 인간의 개방성을 증가시키는가  (0) 2010.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