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책임감을 갖기로 했다. 어른들, 그러니까 대략 40대 정도이고, 한 가정을 짊어지고 있으며, 직장에서도 부하 직원들이 있는 사람들의 힘겨운 모습은 나에게는 좀 두렵게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스물 한 살 때, 그리고 몇 년 전 보게 된, 그런 사람들의 힘겨워하는 모습은 나에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리웠지만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동경을 갖도록 해 주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추구했던 자유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많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 며칠 내 심리적 토대와, 그것이 얽혀 있는 논리들을 자세히 들여다 본 결과, 나는 책임감을 회피하기 위해 몇 가지 논리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기대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내가 나 스스로를 한없이 작은 존재로 만들어 놓으려는 것도 그 중에 하나이다. 그렇게 작은 존재라면 그 책임 또한 작으니까 결국 별로 책임질 것이 없다고 스스로 말하기 위해 나는 나를 먼지보다 사소한 사람이라 생각하려 했던 것. 물론 이것이 모든 이유는 아닐지라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오만함이나 자만함에 빠질 것을 우려하여 나를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려 했었지. 그런데, 이런 생각이 오히려 무책임함으로, 사회적으로 주어 지는 책임에 대한 회피 논리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때때로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나의 중요함은, 나의 그러한 중요한 역할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하였고, 그것으로부터 탈출하고자 사용한 논리가 결국 '자유'라거나 '나는 잡놈'이란 것. 이러한 것은 심지어 가족 내에서도 나타나서,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내가 갖는 위치조차도 부담스러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부모님이나 조카들에게조차도 나의 가치가 조금이라도 느껴질 때면 나는 조금 부담스러워 했던 것. 관계맺기란 글에서 말한 것이 심지어 가족관계에서조차도 나타난 것이었다. 어찌 보면 막내 컴플렉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이제 그것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여하간, 가족들에게조차도 나의 존재의 영향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과연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알 수 없는데, 그러니까, 과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하물며 가족에게조차도 그럴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떠했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나에게 주어지는 책임들을 감수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겠다. 뭐, 굳이, 소명의식처럼 거창한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책임에 대해 어느 정도는 관심을 기울이고, 직장은 아니지만 여하튼 연구실에서 내가 차지하는 비중에 따른 책임과 그에 따른 행동양식도 좀 고려를 해야 겠다는 생각. 돌이켜 보면 내가 회식이나 랩미팅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도 위와 같은 논리에 기댄 면이 크다. '아니, 다 큰 성인들인데 내 행동이 지들의 그런 행동에 대한 근거가 된다고 하면 안되지', 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랩미팅에 나가지 않는 것이 다 큰 성인들인 다른 학생들이 랩미팅에 빠져도 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지, 하는 생각. 하지만, 그래도 랩에서 거의 최연장자인 내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 맞는 것일지도...
- 어찌 보면 나는 나 스스로를 마치 타인처럼 대하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본문으로]
'그냥_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부른 돼지가 되리 (0) | 2011.01.23 |
---|---|
12345 (0) | 2011.01.23 |
아닌 건 아닌 게 아닌가? (0) | 2011.01.19 |
작은 역할 (0) | 2011.01.11 |
사람은 어떻게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0) | 2011.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