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타인

관계맺기

by adnoctum 2009. 4. 6.


   내성적인 것은 맞는데, 이 때의 '내성'이라는 것의 구체적 정의가 항상 마음에 걸린다. 내성적이다... 무엇인가 부끄러워, 그러니까, 어떤 '주목'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약간 꺼리는 것이 내성적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내성적인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관심 따윈 내 관심사가 아니기도 할 뿐더러 오히려 그런 것은 나에겐 거추장스럽고, 만질 수는 있어도 별로 만지고 싶지 않은 개구리 같은 것이니까. 루소가 그의 책 '어느 산책자의 몽상'에서, 시장바닥에서 평민들을 마치 무슨 동물 다루듯 귀족들이 빵을 나눠주고 있을 때,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예외가 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한두번 하고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고 했을 때, 아마도 그런 것이 내성적인 성격의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포함한 어떤 소극적 태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난, 원하는 게 있으면 내성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어려워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까. 100명 앞에서 하는 발표 따위들. 아직 외국에서 그래본 적은 없는데, 해외 학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어도 거의 떨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것과 관련해서는 여기저기 찔러 보곤 했으니까. 게다가 사람 눈을 빤히 쳐다 보면서 말하는 버릇 때문인지, 눈을 쳐다 보면서 말을 하면 두려움 따윈 없어진다.

    그러니까, 내가 사람과 맺는 관계에 있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이런 내성적 성향 따위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내성적이라는 것을 저렇게 정의한다면. 오히려, 관계라는 것이 갖게 되는 어떤 의미에 대한 부담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관계... 그러니까, "나"에게 그의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것보다는 "그에게 있어 나의 의미"에 대한 부담은 항상 나를 괴롭힌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나는 결코 그 누구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는 생각. 인간은 모두 고유하고, 개체로서는 서로 다른 그 어느 두 개체도 접점을 가질 수 없고,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남을 아는 것처럼, 공감하는 것처럼 스스로에 대해 최면을 걸 뿐이라는 사실. 모두 서로가 타인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런 사실을 받아 들이기가 두려워 마치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냥 조용히 서로 알면서 넘어가 주는 것. 나에게 사람과의 관계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해오던 생각, 우리는 결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그 누구의 아픔도/괴로움도/고독/외로움도, 그러니까 한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그 어떤... 존재의 무게라고 해야 하나, 존재함으로 인해 생기게 되는 어떤 근심 또는 고민과 같은 것,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 그러니까, 아무리 발버둥을 쳐 보아도 너는 내 손톱 밑에 박힌 작은 가시가 주는 아픔을 알 수 없고, 내가 어느 날 문득 느끼게 되는 어떤 아련함을 알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으며, 그것은 서로 다른 모든 두 사람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

    그런데, 이런 말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하다는 말을 쉽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근원에 있어 결코 타인은 타인으로만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그냥 그냥저냥 맺는 관계 따위는 그냥 그럴 뿐이기에 별로 관심사가 아니고, 뭔가, 좀, 깊게 맺어진 관계같은 것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리고 자주 느껴지는, 이런, 일종의 심리적/감정적 고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들, 아마도 이것의 근원은 저와 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아직까지 변하지 않고 있는 생각 때문이다. 내 말에, 생각에, 느낌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런, 어떤 근본적 타자성 - 이런 단어가 있다면 - 때문인지,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매우 사소한 존재로 생각되며, 그래서 좀처럼 그 누구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꺼려진다, 다른 사람이 내 영역에 들어 오는 것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이것은 자신감과는 다른 것 같다. 그러니까, 온전히 존재하는 사람인데, 내가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어차피 지금 잘 존재하고 있는데, 내가 있거나 없거나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나는, 존재는 그냥 온전하게 지켜주고 싶음 마음이 크다. 그러니까, 잘 존재하고 있는 것은 그냥 냅두는 편이 좋지, 괜히 내 욕심 채운다고 건드려서 흐뜨러뜨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커다란 바위틈에 조금 있는 흙 위에서 작은 제비꽃이 힘겹게 자라는 것이 가엽게 느껴진다고 그 제비꽃을 뽑으면, 그것은 '가엽게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만을 생각한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없어도 온전히 존재해 나갈 수 있다면 나는 왠만해서는 그 영역 안으로 발을 들여 놓지 않고 그냥 관조하려 하는 태도를 갖고 있으며, 이것은 내가 타인에게서 관심을 받지 않고 싶어하는 것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런저런 많은 사람과 맺는 피상적인 관계들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나는, 모두가 갖고 있는 어떤 벽을 자주 느끼고 - 심지어 같이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실 때도 - , 그것 때문에 종종 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나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생각,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는 다소 과장된 생각이 때때로 나를 조금은 어둡게 하곤 한다.


    뭐, 어차피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매우 무심한 것처럼 보여도 상관은 없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조차도 나에겐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서, 그런 말도 조금 힘들어 하곤 하는데 - 많이 아프다며? 몸은 좀 어때? 이런 말들... 아프다고 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관심'의 표현?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표현? - 그래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매우 무관심한 것처럼 느껴질텐데, 무관심하진 않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그 선을 결코 넘을 수 없으며,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항상 회의적인 나로선 그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몇 가지 예의 혹은 사회생활의 수단으로서의 인사만 할 뿐이다.





'타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 얘기만 하는 사회  (0) 2009.09.03
벽, 그 넘어로  (1) 2009.04.09
언론 = 싸이코패스  (0) 2009.02.22
타인  (0) 2006.11.29
영원한 타자  (0) 2006.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