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시간의 흐름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 불연듯 시간에 눈길이 가면 어느덧 몇 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노을은 이미 지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엔, 특히 오늘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온도도 조금은 쌀쌀했다. 바람은 별로 불지 않았다. 대기는 충분히 깨끗했고, 사람들은 충분히 적었으며, 태양은 충분히 밝았지만 어둠 역시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을 뒤로 한 채 작은 연못 위를 수놓은 노을빛. 또렷한 능선을 만들며 이제 막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겨울의 저녁 노을. 검푸른 색에서부터 검붉은 색으로까지 채색되어버린 하늘.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이런 분위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을 생각할 때면 항상 수위에 위치하는 것이고, 그런 풍경이 실제로 펼쳐지는 때면 왠지 들뜬 기분이 된다. 특히 오늘처럼 쌀쌀함이 더해준다면 더욱 더.
다소 기계적인 일을 하다가 문득 만난 그 풍경은 생각의 흐름을 다소 흐뜨렸기 때문에, 실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공상인지 추억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헤매이다 온듯 하다. 왠지 모르게, 어둠이 깔린 시간에, 낯선 곳에 있으면서, 잠잘 곳을 찾는 그 느낌이 좋다. 나그네에게 이 밤은 길기만 하여라. 실제로, 어딘가 매우 낯선 곳에서, 저녁에 길을 잃고 헤매이던 기억들이 있다. 외국이었던 적도 있고, 한국이었던 적도 있고. 그런데, 뭐, 어차피 그 당시에도 그리 당황스럽지 않았기도 했거니와, 지금 생각하면 더욱 더 그 시기가 그리워지곤 한다. 그런데 좀 희안한 것은, 이런 생각이 꼭 동반하는 추억 중에 하나는, 어렸을 때, 한겨울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막 어둑어둑해질 때, 불꺼진 약간 어두운 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이불 밑에서 보던 TV의 한 장면, 매우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인데, 어느 여자가 눈길을 헤치면서 어딘가를 찾아 분주히 가는 장면. 매우 오래된 기억인데,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때일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때 보았던, 길찾는 여자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느껴지는듯 하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는듯한 상황이 내 기억 속에는 많이 있다. 별로 나쁘지 않다. 왜 좋은지는 알 수 없다. 기분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