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동기가 된 글 : strict weak ordering
원본 작성일: 2010-07-13 00:42
다름, 그리고 고유함.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남자들은 연정훈이 부럽지 (만약 부러워 한다면) 결코 한가인이 부럽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들은 한가인을 부러워 하지 결코 연정훈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비교가능함' 때문이다. '비교'라는 것은 그 작용을 할 수 있는 두 사물이 정해져 있다. 훌륭함에 있어 사람과 팥빙수를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연정훈은 '남자'이고, 남자는 자신과 동류인 연정훈을 비교하지 결코 여자인 한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즉, 연정훈과 나는 비교가능한 집합에 속한다. 하지만 나와 한가인은, 나와 팥빙수처럼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집합에 속한다. '비교'라는 연산이 아무렇게나 주어진 두 항목에 적용될 수는 없고, 비교를 수행할 수 있는 요소들의 집합이 항상 따로 존재한다. 위와 같은 경우, 나와 연정훈은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한 경우인데, 이 경우도 주로 다음과 같은 식으로 한 단계 거쳐서 비교가 진행된다.
나랑 쁘띠건희 할아버지는 우리 각각이 '소유'한 그 무엇을 비교함으로써 비교된다. 우리는 결코 1조원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 1조원을 '소유'한 사람을 부러워할 뿐이다. 그런데 만약 다음과 같다면?
즉, 내가 추구하는 '돈'이라는 것과 이건희 할아버지가 소유한 '돈'이라는 것을 애초에 비교불가능한 집합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명품 신발이 아니더라도 내가 취직했다고 아버지께서 손수 사다 주신 신발은 그보다 비싼 신발들보다 더 가치있지 않던가. 즉, 비록 '신발'이라는 사물의 관점에서는 비교가능할지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에 의하여 그것은 다른 것들과 비교불가능하게 된다.
보다 발전하여, '나' 자체를 고유하게 인식하면, 나와 관련된 그 무엇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즉, 다음과 같다.
나랑 이건희는 그 자체로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둘이 갖고 있는 그 무엇으로도 간접적 비교를 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무엇을 함축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개성을 찾아 그것을 추구하며 살 때에서야 비로소 남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나 자체로 고유해야만 그 무엇으로도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과 타인을 비교가능한 것으로 인식하여 비교를 하게 되는데, 마땅히 자신만이 고유하게 추구하는 것이 없으니 그저 남들과 똑같은 것들, 소위 '재산'이나 '소속'으로 비교를 하기 시작한다.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당당할 수 없기에 소유와 소속으로 자신의 가치를 뽑내려 함이다.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 - 그것이 곧 개성 - 를 찾아서 그 안에서 산다면, 또다른 개성을 갖고 사는 타인들과 만나 알록달록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설리가 진리
그리고,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좌절감과 우월감이라는 어리석음 또한 피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내가 추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가카도, 이건희도, 다비드 비야도, 우리 지성이도 부럽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연정훈은 초큼 부럽다... 연정훈 나쁜 놈.
- 미몹 백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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