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기술이든 사상이든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경우 우선 충족되어야 할 조건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호기롭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겠다, 하는 패기는 이 세상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새롭게 알아 갈수록 수그러들기 십상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그러한 패기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오래 되면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채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고립되기 십상이다. 자신이 창시해 놓다시피 한 분야인 양자역학의 발전에서 멀어진 채 고립되어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아인슈타인을 생각해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인 습성 자체가 일단 "내가" 해보자, 이기 때문에 나의 경우 주로 내가 하려는 것은 이미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 있거나 활발한 발전의 도상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우선 내가 스스로 먼저 해보기는 하는데, 그것은 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우선 내가 "경험"해보고 나 스스로 고민해 보고 싶어서이다. 예를 들면, GoF 의 design pattern 의 서문을 읽은 후, 나는 아직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읽어도 내게 느껴지는 것이 별로 없음을 알고 덮었던 것처럼. 혹은 다익스트라 알고리즘을 알고 난 이후, 같은 문제를 나 스스로 새롭게 풀어 보고자 하여 시도했던 것처럼(그 경험의 결과에 관한 글, 물론 내가 알아 낸 알고리즘 자체가 다익스트라 알고리즘이었다). 박사학위(Ph. D)를 받는 것의 의미에 관한 글 중 다음 그림.
그렇다. 어쩌면 의기소침해 질 수 있겠지만, 우리가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의 지식의 경계를 "조금" 더 넓힐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굳이 너무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다. 그 경계에 닿았다는 것 자체도 큰 기쁨일 수 있으니까. 대부분은 그 경계에서 한참 먼 중심부근에서 머무르다 생을 마감하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지식을 안다는 것, 제대로 익힌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바퀴부터 다시 만드는 경우는 없는 것처럼, 많은 새로운 것들은 지금의 것의 개선/증가/확장 혹은 새로운 "조합"의 결과이다. 특히, 새로운 조합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단지 새로운 조합만이 있다고 누군가는 말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기술이나 지식 뿐만이 아니라 사상이나 미술/음악 등의 기법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것을 제대로 익혀 그것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조합으로 인해 이제껏 없던 것을 만들어 내기만 해도 훌륭한 것이다. 요즘 매우 각광을 받은 분야인 뇌의 투명화 기술, CLARITY. 하지만 이것은 다른 장기의 경우 이미 있던 것이라 한다. 단지 그 적용을 새로운 분야에 해 보았던 것이다. 다른 많은 곳에서 이렇게, 한 분야에서 대수롭지 않은 것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여 매우 많은 진보를 가져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 역시 "지금의 것"을 제대로 익혀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필요한 이유이다. 서양 철학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이라 누군가는 말하지 않았던가. 비트겐슈타인 정도 되어야 그 독창성을 인정받는데, 그런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테고, 잘 모르긴 해도 비트겐슈타인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우선 쇼펜하워가 있는데, 쇼펜하워 역시 괴테/칸트/플루타르크 등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이런 식인 것이다.
단순히 옛 것을 고민없이 받아 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옛 것에 관한 완전한 무지 역시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ps. 내가,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는 반론에는 답변을 하지 않는다"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ps2. 오늘 뭔가를 구현하려다 완전히 새로운 두 개를 접목시키는 아이디어가 문득 떠올라 글을 쓴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deterministic 한 solution 이 알려진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approximation 하는 것이 2년 전에 나온 것인데, 그 둘을 조합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해는 물론 approximation 해야 할텐데 그 둘을 조합하는 개념 자체가 아직까지 없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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