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한 것을 힘들여 논리적으로 입증한다는것만큼 쓰잘데기없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을 해보려 한다.
타인은 결국 타인에 불과하다. 다소 1인칭이 가미된 이 말을, 뜻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인칭을 바꾸어 말해보자면, 우리는 결코 남을 이해할 수 없다. 역지사지라고 하지만, 그 역지사지조차 한계를 지니고 있다.
입장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타인과 나의 취향, 사고방식, 가치관 등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시험 점수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더 나아가 그 무엇에서든 합격/불합격이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내가 아는 사람이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나는 내가 떨어졌다고 가정하는 것만으로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그가 그 시험에 대해 느꼈을 부담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에게 시험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까지, 그리고 내가 제 3자이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그 문제에 얽혀 있는 수 많은 사실들, 가령 그 시험을 준비할 때 부모님이 각별히 신경을 써 주어서 그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그 시험에 꼭 합격하고 싶어했다거나 하는 것들, 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난 그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없다.
또는, 이미 지난 날에 대해 말하는, "나도 한 때는 다 그랬다."하는 류의 말들. 이 말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실과 과거라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타인에게는 엄연한 현실일 때,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입장은 천지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일이 잦아짐에 따라 사람들은 경험해 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경험을 해 보았다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타인을 이해한다는 듯한 태도는 잘못이다.
우리는 결코 남의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제 3자의 입장에 서 있어도 된다는 것을 정당화시켜줄 수 있는 것일까?
'타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 (0) | 2006.11.29 |
---|---|
영원한 타자 (0) | 2006.11.21 |
다른 사람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1) | 2006.02.18 |
타인을 안다는 것 (0) | 2006.01.13 |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1) | 2005.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