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타인

타인을 안다는 것

by adnoctum 2006. 1. 13.



   사람은 원형(prototype)이라는 것을 이용한다. 예를 들면,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다 같은 것. 즉, 우선 여러 특성을 하나의 묶음으로 만든다. 그 후,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그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면, 자신이 예전에 묶음으로 만들어 놓은 특성 중, 그 사람의 관찰된 특성이 포함된 묶음을 살펴 본다. 그리고, 그 묶음에 있는 다른 특성들이 그 사람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원형이다.

 



   원형은 비교적 유리한 면이 있다. 즉, 여러 가지를 판단해서 알 수 있는 것보다는, 쉽게 누군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느 정도 뉴런의 재배치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Hebb's rule), 생리심리적으로도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고, 따라서, 그냥 예전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생체의 생물리적으로는 이득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기존에 굳게 믿고 있던 판단을 잘 바꾸지 않으려 한다. 원형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원형은 얼마나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가, 자신이 남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생각해 보면, 도대체 타인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내면, 그의 특성, 그의 사고관,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 어떤 행동을 정당화시켜 주는 그만의 논리, 그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근거들, 여하튼 이런 모든 것을 포함하여, 남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누군가의 일부분만을 본 후, 자의적으로 그를 규정한 다음, 뒤에 관찰되는 그의 행동을, 자신이 멋대로 규정해버린 그의 특성에 끼워 맞추고, 그 특성에 맞지 않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넘기는 행위들. 이것이 남을 오해하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짜증이 나는 것은, 마치 남을 자신이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그 태도이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그러한 태도는 자칫 오해를 넘어서, 오만과 무례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쳇, 내가 너 머릿 속에 들어가 있다, 하는.

 


   건방지게, 남을 이해하고 있다는 그 태도는, 정말 역겹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잘 모르는 주제에, 어디 남을 안다고 그 따위로 행동하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타인의 모습은, 그(녀)의 아주 일부의 모습이고, 그것도 자신의 판단에 의해 규정된 타인의 모습일 뿐이지, 타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렇듯이.


'타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원한 타자  (0) 2006.11.21
어쩔수 없는 타인  (0) 2006.07.11
다른 사람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1) 2006.02.18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1) 2005.11.04
존재와 실존  (0) 200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