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타인

다른 사람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by adnoctum 2006. 2. 18.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을 해도, 결국 나는 타인일 뿐이다.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은 사실 그가 겪고 있는 고민의 일부일 뿐이다. 그 고민과 연관되어, 문제를 더더욱 어렵게 하는 다른 수많은 사실들을 나는 볼 수가 없다. 결론이 난다고 했을 때 그 문제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내 문제가 아니므로, 나는 그의 문제에 대해 언제나 타인으로 존재할 뿐이다. 게다가 그 결과나 문제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그와 나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고, 이것이 내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생각이 온통 집에 가서 성적표에 부모님 도장을 맞아야 하는 초등학생의 고민 거리를 듣고 있자면, 부모님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것 때문에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고, 그리고 그렇게 고민해 보았자 바뀔 것은 없으니 우선 맘 편하게 있으라고 말해줄 수 있다.

 


   연인과 헤어진 사람에게는, 정말로 인연이면 다시 잘 될 것이고, 아니라면 차라리 잘된 것이고, 그 헤어짐은 진정한 인연을 만나기 위해 거처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해줄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같은 상황을 경험했다는 것을 근거로, 다른 이의 고민을 쉽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오류다. 왜냐 하면, 나의 과거와 그의 현재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현재가 우리에게 더욱 의미가 있다. 내가 힘겹게 보낸 그 현재가 과거가 되어 버린 지금이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을 뿐이지, 그 문제 자체가 별 것 아니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단지 비슷한 경험을 해 보았다는 것만으로 남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간의 이러한 착각은, 그래서,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인생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취하게 해준다. 왜냐 하면, 무슨 일이 있었든 인생이란 그들에게 과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점점 더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은, 과거와 현실이라는 핵심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도 한 때는 그랬다, 나이가 들면 별 것 아니다, 라는 다분히 과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말을 한다. 훗,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여, 그래, 마찬가지로, 어차피 당신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그 수많은 문제도 죽기 직전에는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게 될꺼야.

 


   타인의 문제에 대해 너무 빨리 결론을 내어 버린다. 그것은 그만큼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어쨌거나, 남을 이해하기란 정말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생각때문인가? 남들은 나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나의 근본 가정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아니면 이 가정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논리로 위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일까?)

 

 

 

   하나 더 덧붙이자면, 과연 체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실효가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예를 들면, 체험 학습이라던가, 10,000원으로 한달 버티기, 이런 것. 정말로 10,000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런 생활을 해본다? 글쎄... 이런 것은 마치 이것과 같다. 천 길 낭떨어지 위에 걸려 있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과, 떨어지면 죽는다고 가정한, 땅 위에 그어 놓은 선을 걸어 가는 것. 이 둘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 어차피 '그래, 한 달만 버티면 된다. 그러면 맛있는 것 실컷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증거이다.

 

'타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원한 타자  (0) 2006.11.21
어쩔수 없는 타인  (0) 2006.07.11
타인을 안다는 것  (0) 2006.01.13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1) 2005.11.04
존재와 실존  (0) 200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