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懷疑, skepticism) 따위는 필요 없다.
참으로 많은 이유들이 우리들을 행동으로부터 떼어 놓는다. 해볼만한 이유가 그리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면 안 되는 이유만 그리도 많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러한 이유는 잠시 미뤄 놓고, 일단 해보자. 왜냐 하면, 아직 안 해 봤기 때문이다. 많은 일들이, 실제로 해보는 것과 생각만 해보는 것은 다르다. 물론 현실 감각을 잊은 채 지극히 이상적인 태도를 가져도 안 되겠지만, 수많은 현실을 고려하다 결국 일을 시작도 못 해 보고 그만두는 것 역시 하면 안된다. 일단 해봐야 한다. 그래야 빠져 나갈 구멍이 보인다. 단순히 머릿 속으로만 생각해서 나오는, 하면 안 되는 이유들은 행동을 하지 않을 때는 일을 시작하면 안 되는 이유에 머무르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고 나면 그러한 이유들은 단순히 넘어 가야 하는 하나의 장애물에 불과하고, 우리는 결국 그것을 넘어 가거나, 피해갈 수 있게 된다. 고민의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똑같은 문제에 대하여, 시작하기 전에는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시작하고 나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로 바뀐다. 그래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극복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가치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이가 많은 '현실적'인 고려 끝에 그만 두는 길을 택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한국의 교육방식을 매우 싫어했고,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와 대학 때, 성적(학점)을 버리면서 나의 공부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밀어 부쳤다. 많은,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나에게 그러한 태도는 힘들다고 했지만 나는 고수했으며, 그러한 과거와 그 결과에 불만이 없다. 대학원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의 내 태도였던 밀어 부치던 방식을 잠시 접어 둔 채, 많은 일들을, 좀 더 신경 쓰고, 완벽하고, 정확하게 해보기로 결심했었다. 그리고 몇 년을 그렇게 일해 왔다. 그래서 일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고, 내가 이러한 길을 택했을 때는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감수하기로 했었다. 그 길의 끝에 와 있는 지금, 그 방법은 가치가 있었다. 내가 고민하지 않았을 가치있는 문제들을 보여 주었고, 고민하도록 해 주었다. 그것으로부터, 얄팍하나마 어떠한 내공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것을 조금은 느낀다. 하지만, 물론 밖에 내보일 결과는 많지 않다. 이 문제도 예상했고, 감수하기로 했었다. 돈도 없다. 이 문제도 예상했고, 감수하기로 했었다. 내가 회사가 아닌 학교를 택했을 때는 이미 돈은 잠시 미뤄 두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나에게 제안된 몇몇 길들을 가지 않은 것 역시,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돈에서 자유롭게,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그 방식 그대로 연구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몇 가지 고려 사항들은, 새로운 선택이었던 대학원을 시작했을 때 이미 생각했던 것이며, 그래서 지금까지는 최대한 그러한 요인들로부터 자유롭게 지내 왔다. 종종, 얼마 간 보였던 나의 모습이 나의 본래의 모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다. 나는 선택을 한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자 따랐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선택을 하려 한다. 그것은, 지난 몇 년간 가져 왔던 태도들과는 조금 다르고, 오히려 그 전의 태도와 비슷한, 밀어 부치는 방식이다. 중간에 약간 헛점이 보여도,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도, 일단 일이 끝날 때까지 밀어 부쳐 보는 것. Done is better than perfect, 라는 말을 직접 행동하는 것.
이러한 선택에 대하여, 많은 '현실주의자'들이 어렵다는 것을 상기시킬 것을 알고 있으며, 그와 같은 어려움들이 나에게 어느 정도는 실제로 닥칠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그러한 어려움들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채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설령 지금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그것을 넘어 더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정도에 있어서 비교하기는 힘들겠지만, 내가 경험했던 바에 의하면 그러한 어려움들이 중간에 나를 주저 앉히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