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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

정체성, 직업정신 : 나는 가수다

by adnoctum 2011. 8. 21.


   우리 사회는 거짓이 참의 자리를 꿰어 차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심지어 진짜 취급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MBC에서 하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는 이에 정면 대결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짜를 보여 준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돈을 주고 노래를 들었다. 보통 유툽이나 예전에 받아 놓은 mp3를 들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집에 있게 되면 tv를 보기까지 한다, 연예오락 프로를 말이다. 유일하게 보던 것은 전국노래자랑 뿐이었는데, 오락 프로는. 꽤 오래 전부터 이 방송에서 시작된 글을 써볼까 했는데 지금에서야 써 본다. 

정체성: '나'는 가수다. 
직업 정신: 나는 '가수'다.  


정체성: ''는 가수다. 
   
   '나'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를 무엇이라 말하면 그 무엇에 관련된 일반적 기준에 맞게끔 행동하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예전부터 나를 무엇이라 규정하는 것에 약간의 반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무엇이라 말하는 것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매우 바꾸기 힘든 나의 고유 속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말. 부끄럽지 않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말. 나의 생각을 이루고, 가치관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삶의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그런 속성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몇 년 전에 해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내가 얻은 결론은, 나의 첫 번째 정체성은 농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산과 들로 뛰어 다니고, 논과 밭에서 일을 하면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한 경험에서 만들어진 나의 속성은 내가 수학이나 생물학을 좋아하는 것보다 더 지대하게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추억들. 농기계가 보급이 많이 되어 있지 않았을 때는 많은 일을 손으로 했고, 초등학교 1, 2학년이더라도 손을 더할 수 있었기에 종종 일을 하곤 했다. 벼를 베어 놓으면 그 위에 짚을 몇 가닥씩 올려 놓으면 어른들이 볏단을 묶는 것과 같이. 추수 끝난 늦가을이 가장 좋은 것은 그 시기에 관한 추억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벼의 아랫둥만 남아 있는 추수 끝난 논에 고여 있던 물에 비친 하늘과, 그 때의 쌀쌀함. 태양에 벼를 말리고, 저녁이 되면 볏자루에 담아 경운기에 싣고 방앗간으로 가져 가던 일. 빈 경운기로 집에 돌아갈 때면 나는 털털거리는 경운기 바닥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곤 했었다. 저 멀리 일을 나갈 때의 밥과 참은 언제나 소풍가는 기분이 들게 했고, 지금도 그러해서 외려 먼 논으로 일을 갈 때 싸가지고 가는 몇 가지 참거리가 일의 고됨을 잊게 해주곤 한다. 더 어렸을 때 담배를 재배하던 시기. 비닐 하우스에서 담배를 말릴 때 잠자리가 하우스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든 잡고 싶었지만 담배 냄새가 너무 괴롭던 기억. 겨울이 되기 전이면 언제나 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해 오셨고, 나는 한겨울이면 종종 장작을 패곤 했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그 앞에 앉아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상념에 젖던 기억들. 바로 등 뒤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고, 옆에는 강아지가 앉아서 졸고 있고, 부뚜막에는 고양이가 앉아 있고, 가마솥에선 쇠죽에서 김이 나는 일. 이런 일들. 이런 경험은 지금의 내가 언제나 목가적인 환경을 그리워하고,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어딘가를 가도 한 곳에서 한량처럼 어슬렁 거리게 만들고 있다. 돈도 명예도 이런 것과 바꿀 수 없기에 나는 언제나 이런 '환경'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미래를 생각하곤 한다. 

   인간은 결국 자연과 연결되어 있고, 많은 생활이 자연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말로 언급되는 것 이상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1992년 여름, 몇 시간동안 쏟아진 비는 결국 동네 위쪽에 있는 저수지의 둑을 무너뜨렸다. 동네 앞에 있던 논들은 모두 모래밭으로 바뀌었다. 부모님도 그렇고 어른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을 커서야 알게 되었다.  난 그냥 저수지에 있던 고기가 논바닥에서 파닥거리는 것이 좋아서 밥 먹으면 매일 모래밭으로 변한 논을 다니면서 고기를 잡곤 했었지만. 그 후 비가 오면 신경이 어느 정도 곤두서곤 한다. 날이 너무 가물면 밭 저 밑에 있는 냇가에서 물통에 물을 담아다 콩이며 고추, 깨, 배추에 물을 주던 기억. 그리고, 항상 모내기철이 되면 피어 저 멀리서 바라보게 되는 살구꽃. 나는 살구꽃 색을 가장 좋아한다. 모내기가 끝나고 나면 보이는, 애초롭게 서 있는 작은 모들이 얼마가 지나지 않아 제법 자란 벼가 되었을 때 느껴지는 대견함. 풀밭 속에서도 여전히 열매를 맺고 자란 호박들. 복숭아, 자두. 살구, 산딸기. 밤. 올해는 어찌저찌 해서 살구가 안 열렸다던가, 하는 말들. 모두들 노리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를 잘 맞추어야 맛을 볼 수 있는 드룹. 머루. 오디. 그런 것들. 

   커다란 밭의 한 구석에서 일을 시작할 때. 남아 있는 밭이나 논을 쳐다 보면 이 많은 것을 언제 끝낼까 싶다. 하지만, 결국은 끝난다. 나는 여기서 인내를 배웠다.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을 하면 결국 끝난다. 힘이 든다. 하지만 계속 하면, 결국은 된다. 


몇 년 전, 고구마를 다 캐고 찍은 사진. 이것도 되게 힘든 일이다. 시골 일은 안 힘든 일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끝까지 하면 일은 끝난다. 정직하다. 들인 시간과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허황된 욕망도 없다. 두 시간 일을 했으면 딱 그 만큼만 바랄 수 있다. 이러한 습성은 지금도 내가, 현금 3만원 줄테니 카드 가입하라는 둥 하는 얘기에 콧방귀를 뀔 새도 없이 됐거들랑요, 하고 마다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곤 한다. 횡재, 대박, 이런 것, 농사에 이런 것은 없다. 노력한 딱 그 만큼만. 물론 비가 많이 온다던가 가뭄이 든다던가 하면 노력보다 적게 얻게 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모든 것의 운명일 뿐이다. 

   시골에서는 계산이 불분명할 때가 많다. 누구네 집에서 배추 30포기를 '그냥 주었다', 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런 것은 그냥 '인심' 정도일 뿐이다. 모든 것을 정확히 '교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돈'을 받겠지만, 시골은 아직도 아닌 경우가 많다. 물론 모종을 사고 파는 등 돈으로 거래를 하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돈 없이 '인정'으로 서로 주고 받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손실을 고려해서 행동한다던가, 주고 받은 것을 철저하게 따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친구들과 술마시고 밥먹고 할 때는 '이번엔 내가, 다음 번엔 니가 내라', 처럼 하곤 하지만, 이렇게 명확한 경우가 아닌, 그냥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에선 안 그런 경우가 많다. 과자를 하나 샀으면 그냥 테이블 가운데 펼쳐 놓고 다 같이 먹는 거다. 난 입이 매우 짧아서 먹고 싶을 때가 아니면 안 먹기 때문에 남이 사 온 것을 먹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여하튼, 먹고 싶으면 그냥 가서 '나도 좀 먹자', 처럼 하곤 한다. (눈치 없이 하진 않는다, ㅋ). 그리고, '내 것 하는 김에 네 것도 해줄께', 처럼 하는 것. "OO아빠, 밭 갈 때 옆에 우리 밭도 좀 갈아 줄래요?", "그래요". 이런 경우. 부탁한 사람은 나중에 참외 몇 개라도 가져다 주는 염치를 보여 준다. 이런 염치. 내가 한국의 '정' 이라던가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한다던가 하는 경우는 바로 시골에서의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각주:1]. 규칙이나 논리, 법 따위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당연한 '도리', 그 도리에서 나오는 염치와 고마워 하는 마음, 이런 것이 없다. 따뜻하지 않다. 

   물론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싸우는 경우도 있고 뭐 그런데 난 선택하라면 10중8,9 시골을 선택할 것이다. 

   두번째 정체성은 '생각하는 사람', 이라는 것 정도. 이것은 철학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이겠지. 물론 생각이 너무 많아서 행동이 느려 보이는 경우가 많곤 한데, 실제로는 성격이 급해서 밀어 부칠 때는 숨막히게 밀어 부치곤 한다. 하지만 상황 판단에 따라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을 생각하곤 한다. 뭐, 철학에 조금이라도 더 조예가 있다면 '철학하는 사람', 이라고 하겠지만, 개미 눈꼽보다도 아는 게 없고 단지 그런 책과 그런 생각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게 나의 습성에 보다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세번째 정체성은 생물학도. 뭐를 해도 항상 생물학이 중심, 전산이든 수학이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 


직업 정신: 나는 '가수'다.  

   직업 정신, 프로 정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적어도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 하는 자기만의 기준. 지도교수님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내가 졸업을 미룬 이유는 나는 아직 그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나 스스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젠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ㅋ). 언제나 전공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좌우지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은 내가 사람을 판단할 때 있어 제일 싫어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재능있는 굴뚝 청소부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하던 어느 외국 굴뚝 청소부 아저씨가 정말 좋았다. 반대로 공무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 학부 4학년 아이들이 전공에 대해 다 알았다고 착각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앎이 깊지 못하면 만족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 교만해 지게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런저런 것을 하다 보면 언제나 부족함을 느낀다. 물론, 막상 남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 얄팍한 앎조차 대단하게 비춰지곤 하지만 스스로는 알고 있는 것이다, 말 사이사이에 생략된 무지의 존재를.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종종 교과서를 다시 보거나, 심심할 때면 논문 싸이트를 돌아 다니거나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것이 곧 프로 정신. 

   tv를 안 봐서 그런지 김범수의 존재를 전혀 몰랐었는데, 별 희안하게 하고 춤을 추면서도 역시 가창력이 되니 노래가 좋다는 것을 보면서 진짜는 상황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은 체구, 당당하게 보이고 싶어 하지만 그냥 귀엽게만 보이는, 그래서 그런지 약간은 수줍게 보이는 것 같은 박정현. 하지만 막상 노래를 시작하면 이 곳에서 끝장을 보고 내려가겠다는 듯 최선을 다 하는 모습. YB.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굳이 YB까지 듣지는 않았었고, 난 YB가 항상 즐거운 노래를 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탈락곡 내 사람이여를 부르는 YB를 보면서 확실히 노래를 잘 한다고 알게 되었다. 요즘엔 좀처럼 보기 힘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게 되었다. '나는 가수다, 그래서 노래로 끝장을 보겠다', 하는 태도. 


   요즈음, 연구실 아이들이나 다른 아이들과 얘기할 때 '연구에 대한 열정을 잃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나가수 출연진들을 보면서 다시금 마음이 잡히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연구를 열심히 하는 랩의 어떤 형도. 이렇게 나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허구헌날 잡기에 신경쓰는 사회 안에서, 그리고 난 아직은 진짜가 아니기에. 




  1.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읽어 보면 미국의 시골도 예전엔 이랬는데 지금은 안 그래서, 이러했던 생활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끼리 마을을 만들어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CID, common interest district 였나 뭐였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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