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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

세상을 등진 자

by adnoctum 2011. 6. 20.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나는 원래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려는 성향이 강했다, 사람의 성향을 말함에 있어 '원래'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격이 워낙에 내성적이기도 하려니와, 그래서 그런 것인지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적잖이 피곤함을 느낀다. 흔히 내성적인 것은 소심한 것과 결부되기에, 이 둘이 다소 분리되어 있는 나의 경우, 물론 많은 이들이 나를 착각하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경우에 한한 것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에 있어선 조금 적극적이기 때문에 내성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일 뿐,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피곤함을 느낀다. 이러한 피곤함이 약간의 염세와 만나게 되었을 때는 거의 필연적으로 세상을 등지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사람에 대한 실증, 실제적 만남에 대한 피로. 이러한 상황에서 관계들을 끊어버리고 홀로 조용히 살아가는 것 말고는 딱히 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에반게리온에서 이카리 신지에 대한 말,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잘 모른다는 말이 나에게 조금은 특별히 다가 온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 때는 아마도 고등학교 2, 3학년 때 쯤으로 기억한다. 세상과 다소 소통하며 살아가는 태도를 취해 보겠다고 결심한 것이. 물론 그렇게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염세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와 같은 태도를 지니는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가능한 것이었고, 그것조차도 매우 불연속적이다. 나는 일단 생각해야 할 상황이 많은 것에서는 언제나 피곤함을 느낀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 두 가지에 집중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머지 사안들은 정말 거짓말처럼 무관심해 진다. 때때로 이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무책임하거나 무심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이 되곤 하지만, 이러한 것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꺼번에 많은 상황들을 고려하기는, 힘들다. '원래' 그런 거니까 괜찮아, 라는 것이 아니라, 나도 때때로 이러한 태도가 무관심으로 비춰지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고쳤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에서 느껴지는 피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저렇게 맺게 되는 관계들 속에서 나를 발견할 때 나는 적잖이 당황하곤 한다. 그 어디에도 내 존재의 무게가 실려 있는 대화는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하는 일에서 뻗어 나가는 내 위치와 내가 한 일들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그러한 상황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자주, 그러한 생활 속에서 약간의 부담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것이, 언급된 과제(일)에 대한 부담이면 차라리 누군가에게 물어 본다거나, 힘들다고 말해 보거나, 할 수 있겠지만, 이처럼 다소 추상적이고,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것에 관한 것일 경우, 결국은 혼자 고민할 뿐이다. 그리고, 뭐, 주어진 일이 어렵기 때문에 부담이 된 적은 지금까지의 기억으론 없긴 하고, 언제나 문제는 결국 풀릴 수밖에 없거나, 최소한 무가치하지 않을만큼까지만 해결하더라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러한 문제가 부담이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홀로 나아간다는 것 또한 자원의 효율성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것임을 알기에, 결국 내가 맞추어야 하는 균형은 나의 이러한 생각을 조금씩 줄이는 것 정도일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소설의 주인공처럼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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