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고향 집에를 갔다. 평소에는 매주 갔었지만 요즘엔 약간 일이 좀 있어서 한달만에 가게 되었다. 계산된 행로를 거의 틀리지 않게 거쳐 집에 도착해서, 으레 그랬던 시간들을 보내고 잠을 자려고 거실에 자리를 마련하고 누웠다. 조카가 오면 내 방 침대가 작아서 주로 거실에서 조카와 함께 자곤 한다. 불도 끄고, tv도 끄니, 약간의 달빛과 가로등 불빛만이 남아 있다. 조금 열어 놓은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쉬지 않고 스며들어 왔다.
갑자기, 모든 것이 뒤엉키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과 상상, 공상. 현재와 미래, 과거. 지금 이 공간에서 10년 전, 5년 전으로. 5년 전의, 50년 전의 다른 공간으로. 어디에 존재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어느 공간에, 특정되지 않은 시간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 공간과 시간, 현실과 상상이 모두 뒤엉켜버리는듯한 느낌. 어쩌면, '기억의 고집'이라는 좀 이상하게 번역되는 살바도르 달리의 The persistence of memory 가 이런 느낌과 조금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바도르 달리, The persistence of memory.
저런 느낌이었다. 조금 더 보태자면 공간까지 시간 축에서 일그러져 있었다는 점.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왠지 모를 약간의 설레임과, 약간의 당황스러움? 조금은 역설적인데, 초행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는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둠이 내릴 때의 조급함, 이런 상황이 나에게 가져다 주는 느낌은 희안하게도 희미한 설레임이다. 바로 그러한 느낌이, 뒤틀린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과 함께 떠오르곤 한다. 그 때 그 순간이 존재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몽환적이기 때문에 쉽사리 다시 떠오르진 않지만.
매우 독특한 느낌이기 때문에 설명을 잘 못하겠다. 막상 그런 느낌이 떠오를 땐 계속 느끼고 싶기 때문에, 단지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인 흔적을 애써 끄집어 내어 보이는 것이니 결국 생기를 잃고 빛바랜 감정밖에 안 될 것이다, 글로 남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