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나는 한국인들이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으나 한국인들에게는 아직도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제 스스로는 행동할 줄 모르고, 단지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기계처럼 행동하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젊은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젊을 때 제멋대로 행동해도 용인되는 시기에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고, 그렇기에 이 시기의 젊은이들이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들이 사회와 맞서야 하는 때에는 모두 노예가 되어 명령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냉소. 참으로 많고 창의적이고 다양한 냉소가 한국에는 존재한다. 일단 가장 쉬운 예가, 김예슬이었나, 하는 학생에 대한 냉소. 그 이외의 다양한 냉소의 근간을 따라 들어가 패턴화시켜보자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100% 할 수 없는 것에 의한 냉소. 예를 들면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가 이익을 위한 행위를 할 때, 자본주의 욕하면서 돈벌려고 한다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헛소리. 학벌 비판하면서 자녀 학원 보내면 그것도 욕하기. 유학을 보내면 그것도 욕하기. 없는 사람 돕자고 하면서 5,000 원 짜리 커피 마시면 그것도 욕하기. 왜, 은하계 평화를 당장 실현시킬 수 없는 모든 인간은 입을 다물라고 하지.
우리는, 우리가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의 모든 생활을 그것에 맞도록 할 수 없다. 즉, 사회적 약자를 돕자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그의 생계만을 유지하도록 하면서 생의 모든 것을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에 헌신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아예 하지도 말라고 한다면,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적긴 하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게 되는 것이다. 실상 대부분의 행동이 그런 것이다. 완벽할 순 없지만 없거나/안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는 것이다. 완벽하게 살 수는 없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모두들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냉소적인 많은 이들은 바로 이 부분을 파고 든다. 너가 말하는 것에 완전한 헌신을 할 수 없다면 넌 그냥 위선자, 따위. 그런 식의 태도는 결코 좋지 않다. 그렇게 거창하게 뭔가를 이루겠다고 선언하는 이 치고 제대로 하는 이가 별로 없다. 노자는 이것을 일컬어, "너무 크면 빈 듯 하고"라고 하였고, 우리는 선거 때마다 너무 커서 空約이 되어버리는 供約을 보곤 한다.
원본 작성일 : 2010-11-15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