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역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한 가치를 명확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점점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역사 교육인데, 아마도 이것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호기심 또는 경외보다는 약하지만 그와 같은 류의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역사 교육은 현재에서 더욱 가까운 것일수록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추정해 낼 수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태도를 갖는 나에게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우는, 이 돌도끼가 신석기 시대의 것이냐 구석기 시대의 것이냐, 하는 것 따위는 도무지 배울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어차피 성적 따위에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 역사 수업은 눈만 뜨고 있었지 듣는 것이 없었고, 때리지 않는 과목은 필기도 하지 않던터라 내 역사 지식은 역사 성적이 정확히 대변해 주었다. 모의 고사를 봐도 역사를 푸는데 5분이 채 안 걸렸는데, 풀었다기보다는 그냥 다 찍는 수준. 도대체 현실에서, 현실적 고민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것을 배운다는 것이 나에게는 도무지 쓸모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생물/화학/수학/영어 같은 과목을 좋아했겠지. 난 심지어 공업.기술/교련 같은 과목도 바로 그 실용적인 면들 때문에 배우면서 재미있었으니까.
그런데, 학교에서 떠먹여 주는 수업만 받는 때가 지나 내가 스스로 뭔가를 익히고 배워 나가는 시절이 되었을 때,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조금씩 늘어 나고, 그것으로부터 얻는, 얄팍하나마 교훈같은 것이 늘어날수록, 바로 이래서 역사 교육을 제대로 받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과거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계처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사건을 분석한 내용이 지금의 정세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하는 것. 의금부가 지금의 어느 부서에 해당하느냐 따위가 아니라, 정조의 수원화성 건립의 정치적 목적이나 배경과 같은 것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도시 추진과 같은 정책과 어떻게 연관지어질 수 있는지 하는 것들.
역사 교육이 1950~2000 대에 집중된다면 가장 싫어할 사람들이 누굴까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역사 교육을 가치없는 것으로 만들고자 불철주야 노력하는 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은 수능으로 수렴하는 '수능과목'에서 역사의 비중을 낮추거나 없애버리려는 이들, 과거를 말하지 않고 미래만을 말하려는 이들.
'나'를 '나'인 것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기억'이다. 어제 저녁 먹고죽자며 술을 먹은 것도 바로 지금 머리가 이리 띵한 바로 '나'라는 이 기억이 없으면 자아는 존재할 수 없다. 자아는 곧 기억과 함께 시작된다. 이렇게, 기억은 개체적인 관점에서 자아를 형성하게 해주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한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해 주게 된다. 우리가 허구헌날 부르짓는 '한민족'이라는 것도 결국 지금의 우리가 서 있기까지 겪었던 오래된 과거들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찌 보면 1900년을 전후한 이후에서부터 대략 1세기 정도가 없어진듯 하다. 참으로 희안한 일이다. 어찌 보면 최근래의, 가장 결정적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이 무엇에 의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의 부족으로 느껴진다. 나는, 아마도 이러한 면이, 오늘날의 한국에서 제대로 된 가치관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고, 그냥 제멋대로 행동하는 수많은 이들과, 이들과 함께 박자를 잘도 맞추면서 나아가는 정치/사회 적인 많은 면들이 설명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하곤 한다. 물론 역사지식이 1ng 도 안되는 무식한 잡놈의 생각이니 별로 중요하진 않다.
끝.
원본 작성일 : 2010-12-18 11:50
미몹 백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