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인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통칭하는 것인
반면, '실존'은 '나', 이 글을 읽고/쓰고 있는 바로 '나'라는, 살아 숨쉬고 있는 생명 그 자체를 일컫는다. '자아'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자각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나'는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그에게 '실존'은 '존재 일반'과 같게 느껴진다.
실존과 존재의 차이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예는 '죽음'이다.
'죽음'이란, 인간이라는 '존재'가 맞이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동시에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죽음'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 단 그 죽음이 '나'라는 '실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전까지는. 대형
사고가 나서 수십, 수백명이 죽어도 별다른 감정의 기복이 생기지 않는 것은, '죽음'이 '존재'의 일반적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님 중 한 명이나 배우자, 자식 중 한 명이 죽으면 그 때의 '죽음'은 대형 사고에서 죽은
수백명의 목숨보다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왜냐 하면, '존재'라는 추상적 개념에 메몰되어 있던 '죽음'이라는 상징적 사건이
비로소 '나'라는 '실존'에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존재' 와 '실존'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나',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 실존적 개체인
'나'라는, 자아정체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나'가 무엇인지 모른다. '자신'을 항상 '존재'의
시각에서만
바라볼 수 있을 뿐, '실존적 존재로서의 '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나', '자신'이 없기
때문에 항상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모든 행복의 전제 조건이 '비교'가 된다. 왜냐 하면, '나'가 없기 때문에,
'나'안에서 발생하는 '행복'이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즐거워 어떤 일을 한다'라는 말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같은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이들에겐 어느 행동이든, 그 행동을
추진시키는 동기는 결국 타인의 '인정'이다.
'모든 것은 네 안에 있다', 실존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나'가 누군인지 아는 사람은 이 말의 뜻을 '실존적으로' 안다.
실존을 모르는 사람은 모든 일이 쉽게 느껴진다. 죽음처럼. 그들에겐
그래서 동정심이 없다. 항상 남의 어려움을
쉽게 이야기한다. 타인의 입장이나 환경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입장이나 어려움은 세상 그 누구의 문제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실존'적 고민을 타인에게까지 적용시키지 못한다. 존재와 실존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일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가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사랑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2005-03-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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