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큰 나무 밑에서 한가롭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나에게 휴식은 목적 없이 초행길을 걷거나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틈 속에서, 길 옆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이다. 날이 따뜻해지면 학교에서도 종종 특별한 목적 없이 어딘가에 앉아 있곤 한다. 그에 더해서, 습하지 않은 어느 더운 여름 날, 강렬하게 빛나는 태양 아래, 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 진 이미지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한여름의 열기 속 나무 그늘 밑에 쭈그리고 앉아 쉬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 로드뷰에서 우리 동네에 있는 느티나무 사진을 가져 온 것인데, 시골 동네 앞에는 저리 큰 나무가 있다. 아랫 동네이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것에 비하면 그리 자주 저 곳에 있지는 않는데, 그렇다 해도 나의 휴식에 대한 이미지 속에 존재하는 큰 나무는 아마도 저 나무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연유야 어떻든 누구라도, 언제라도 저렇게 큰 나무 밑에 있으면 많은 걱정은 잠시 미뤄둔 채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이라고까지 하긴 좀 그렇지만 이러한 것이 내가 자연으로부터 고맙게 얻을 수 있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살고 싶은 곳, 을 골라 본다면 단연 자연 환경이 제 1 순위이다. 연구 환경보다도 우선한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다. 그것은 내가 지금의 도시 사람들은 결코 상상도 못 할만큼 외진 곳에서 자연과 밀접하게 교감하면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산딸기 따먹고, 으름 따 먹고, 살구 따먹고, 돌을 들추면서 물고기를 손으로 잡고, 가제 잡고, 달개비꽃 따다가 지시약 실험 해보고, 등등등, 고등학교 전까지 워낙 시골에서 자유롭게 자랐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러한 자연환경에 대한 동경이 남아 있다. 지금이야 젊고 도시 생활을 꽤 오랜동안 해 왔기 때문에 그나마 도시 생활을 견딜 수 있긴 하지만 그 와중에도 조금이나마 자연에 가까운 곳이 있으면 언제나 기억해 두려 한다. 앞으로 살고 싶은 곳을 고르라 할 때 독일이나 스위스, 북유럽, 프랑스의 아를, 같은 곳을 떠올리고 나열하는 것도 그 자연 환경 때문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충분히 아름답고 경외로운 곳이 많음을 알고, 그래서 그런 곳에서도 살아 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라도 그러고 싶다. 복이라면 복일 수 있는 것은 나의 일은 대부분 컴퓨터로 인터넷 - 정확히는 네트웍 - 만 되면 어디서든 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 '위치'를 갖고 있는 나의 '직장'이란 곳이 생긴다 해도 만약 그 자리를 물리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보다 만들어 내는 결과물을 더 중시해 주는 곳이라면 난 그러한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지내며 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도 여름이면 집에서 종종 원두막에서 일을 하곤 하는데, 바로 그렇게.
어제인지, 오늘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문득 든 생각은, 외국의 어느 곳이라 해도 나를 '찾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생활은 궁핍해도 지조를 잃지 않으며 품위를 지키려 하는 누군가들처럼, 나 역시, 비록 현실은 내가 일자리를 요청하는 입장이 대부분일지라도 마음가짐만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를 찾게끔 만들자' 로 갖고, 그리고 그럴만큼 내가 잘 하자. 이런 태도. 이런 마음 가짐. 이러한 생각은 학부, 아마도 수학과 부전공을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던 시기 즈음에 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조심스럽게 - 안그럼 자만에 빠지니까, >.<"" - 계속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대상, 나를 찾는 사람은 언제나 우리 나라 사람, 회사였고, 외국에 지원을 할 때는 저러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것은 곧 내가 외국인들, 외국의 연구자들을 너무 두려워 하고, 그에 비하여 나, 그리고 한국의 연구자, 한국의 연구 환경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니 나 스스로 외국에 지원을 할 때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다. 궁극적인 것은 결국 연구 성과이겠지만, 그래서, 일일이 나의 연구 성과를 나열하면서, 이러니까 나를 선택해 줘, 가 아니라, 내가 한 연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먼저 나에게 연락해 오도록 하는 것. 이 상황을 최선의 상황으로 간주하고 연구를 해야 겠다, 이러한 생각을 했다. 단지 생각의 변화일뿐이지만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많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지금 진행해야 할 많은 주제들이 대부분 걸려 있는 일 한 가지가 있다. 쉽게 말해 pathway 를 지금 있는 연구 주제에 맞게끔 만드는 것인데, 지난 수요일부터 시작했다. 잡스런 코딩이 좀 들어가기 때문에 미뤘던 것인데 이제 거의 끝났고, Windows에서 GUI 를 달았다! ㅋㅋㅋ, 내가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는 코딩류, 이제 pathway 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는 루틴만 추가하면 된다. 그것에 필요한 파일 대략 3만여 개를 점심때부터 받아서 좀 전에 다 끝났다. GUI, 엄밀히 말하면 xml 을 읽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꽤 예쁘게 되었고, ㅋㅋ, 뭔가 재미있는 내용도 좀 있어서 조만간 그에 관한 글을 작성할 생각이다. PathVisio 라는 프로그램이 출력하는 것과 비슷한 그림을 출력하는 것인데, PathVisio 작성자들, 꽤 머리 썼다. 논리적으로 유추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값을 감춰버려서 실제로 그림을 그리려면 그렇게 숨어 있는 애들을 찾아 내어야 한다. 예전에도 이 코딩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그런 식으로 되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하고 input file 에 정보가 없어서 못 했었는데, 이번에 하면서 자세히 보니 없는 정보들은 있는 정보들을 이용하여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어서 이번엔 좀 제대로 되었다, ㅋ. 어쨌든 또 3, 4일을 쉼없이 달려 와서 그 사이 또 두통약을 3개나 먹었는데 - 오늘 한 개 포함 - 내일은 좀 쉬엄쉬엄 해야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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