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머리 속을 멤돌던 생각을 써본다.
요즘 동네 앞에 시끄럽다. 길이 생긴다고 한다. 생긴다 생긴다 벌써 20년 넘게 말만 이어지던 길이 드디어 생긴다는 것이다. 한 10여년 전 즈음 천막 쳐 놓고 공무원 몇 명이 나와서 하루 종일 통행량 조사를 하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뒤로도 길은 난다난다 말만 무성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정도 공사가 진행이 되었다. 사람이 모이기 위해 길이 만들어 지고, 길이 만들어지면 사람이 모인다. 사람이 모이면 지금 이 사회에서는 자본이 모이고, 이것은 곧 도시화의 시작을 알린다. 이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안든다. 아직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그래서 난 동네 앞이 개발이 되느니 마느니 하는 얘기가 돌 때부터 만약 개발이 되면 지금과 같은 시골을 찾아 갈 생각을 해 오고 있다.
길이란 보통 긍정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경부고속도로의 발달은 많은 것의 서울로의 집중화를 발생시켰다. 지방에서 서울로의 이동이 쉽게 되자 많은 것들이 서울로 서울로 갔고, 그 결과 서울만이 과도하고 비정상적으로 발달했고, 그 이외의 지역은 많이 뒤쳐졌다. 프랑스에서 초고속 인터넷 망을 전국적으로 설치하려 했을 때 심리학자와 교육학자들이 아이들의 교육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근거로 반대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다. 마냥 좋게만 보이는 기술/상황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 동네는 아직도 반딧불이가 날아 들고, 개구리가 울며, 수확이 끝난 논을 경운기나 트랙터로 갈면 뒤에 새들이 앉아서 온갖 곤충을 잡아 먹고, 산딸기나 살구, 오디 같은 것들이 그냥 여기저기 있다. 가재가 워낙에 많아서 몇 명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가재를 잡기도 했다. 동네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밑에서 한여름의 더위를 달래는 동네 어른들, 그리고 지나가다 잠깐 쉬어 가는 누구들. 그렇기에 동네 앞이 개발이 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발이 된다고 해 보았자 사람과 자동차만 많아질 뿐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 없다. 오히려, 늘어 나는 사람과 자동차는 공기와 소리를 오염시키고 밤의 그 어둠을 빛으로 오염시켜서 반딧불이도 쫓아 내고, 가재도 쫓아 낼 뿐이다. 욕심많은 사람들이 산이며 들이며 있는 열매들을 먹을만큼보다 더 많이 꾹꾹 눌러 담아 가져갈 뿐이다. 우리 집 앞에 심어 놓은 두릅나무의 두릅도 분명 누군가는 따갈 것이다. 다른 것은 다 늘어도 끝끝내 늘지 않는 교양 때문인지, 길거리에 있는 것들을 그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따먹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눈치가 없어서 사회 생활이 힘들 정도라면 모를까, 딱 봐도 누군가가 가꾸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욕심 채우기 위해 양심을 버리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동네를 가득 채우고, 그러면 또 이놈저놈 고성이 생길테고, 하여튼 그런 인간사의 더러운 모습을 보기가 싫은데, 사람들이 꼬이면 반드시 그런 사람들이 있다. 시골 사람들처럼 "도리"를 알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얄팍한 교양이란 허울 아래 빛 좋은 개살구마냥 몇 마디 유식한 말로 자신들의 추악함을 감추려 한다. 지금도 심심찮게 이런 사람들이 동네에 출현했다는 목격담이 들리고 있으니 나의 걱정이 기우만은 아닌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이, 결국은 길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지금도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동네로 버스가 들어가질 못하는데, 이것도 이제 곧 바뀌겠지. 길이 끝나는 곳, 그 곳도 이제 바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일 하러 갈 때면 몇 가지 참거리를 가지고 마치 소풍 가듯 가서 일을 하고 잠깐 쉬며 새소리를 들으며 참을 먹는 곳.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용인이란 곳이 여기저기 개발은 되고 있고, 더구나 길이 끝나는 그 곳의 산 저 너머엔 동탄 신도시라서 우리 동네 역시 개발의 마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진행될 것까진 몰랐을 뿐이다. 개발의 전면엔 언제나 길이 있고, 만들어진 길을 통해 사람들이 들어 오고, 그 때 조용함을 더럽히고 위험한 자동차도 같이 오고, 그리고 인간사의 온갖 추악함까지 같이 들어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그놈의 길을 통해 온갖 더러움과 욕망이 밀려 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그냥 계속 한적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길을 전면에 내세운 개발이란 이름 아래 나의 작은 바램이 조금씩 위협을 받고 있다. 내가 항상 원했던 길은 눈이 와도 버스는 다닐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길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