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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_생각

나는 왜 인터넷을 통한 대화를 그만두었나

by adnoctum 2013. 6. 14.




   기술은 소통의 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을 뿐 실제 소통의 증가는 여전히 인간의 문제임을 지금은 알고 있다. 이것이 내가 더이상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라 하겠다. 페북을 통한 간단간단한 이야기 이외에는 이제 거의 남과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설령 아주 가끔 댓글을 단다 하더라도 그 글을 읽을 사람의 반응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오해를 한 후 소통을 시도하는 이가 너무 많으며, 기본적인 태도 자체가 대화를 통한 합의의 도출이라기 보다는 그냥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마는 것인 경우도 많고, 자신이 겪거나 자기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일의 전부인양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쉽게 말해, 아 이 사람에게 내 저 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앞에 앉혀 놓고 한 시간 정도는 이야기를 해야 겠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교조적이라거나 우월감에 의해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고(아주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가 무엇을 오해하거나 곡해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그것을 직접 건드리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그 오해의 풀어헤침을 하기 위해선 그저 몇 글자 끄적거리는 것으로는 어렵다는 것 역시 느끼기 때문에 애초에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답답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인데, 하나는 글 하나에서 글 자체의 완벽성을 너무나 추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글 속에 표현되지 않았음직한 내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글 중간중간이나 한 단락 혹은 한 문장 정도에 오류가 있어도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표현되지 않은 내용들은 미루어 짐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 못한다. 내게 그런 모습은 글을 읽어 소화시킨 후 자신의 생각을 확장/변경하기 위한 태도라기보다는 그냥 이 글은 얼마나 완벽한가, 를 판단하는 것에 온 목적이 있는 매우 형식적인 태도로 비추어질 뿐이다. 모름지기 대화란, 그 수단과는 상관없이, 그 결과로 대화 당사자들간의 생각의 변화를 어느 정도 담보해야 마땅한데 애시당초 그런 생각이 없이 글을 읽는 이가 너무 많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려는 태도의 부족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보자면 이렇다. 우리의 생각은 단일 생각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고 수많은 생각들이 얼개를 이루고 있다. 글이란 그 얼개 중 적당한 부분만을 선택하여 쓴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글 하나가 표현하는 생각이란 결국 글을 쓰는 사람에 의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적당히 잘려 나간 것과 더불어 그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 역시 표현되지 않는, 일종의 축약본이다. 아무리 자세하게 써도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축약본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이의 행동이, 그와의 긴 대화를 통해 왜 그렇게 했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비로소 이해를 한 경험이 있는 이라면, 글 역시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글을 쓰는 자는 개인의 성향 및 능력에 따라 자기 생각의 일부만을 표현할 것이고, 따라서 읽는 자는 그것을 감안하여 그 표현되지 않은 부분들까지 될 수 있으면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글 하나에 나타난 생각이 그 생각을 이루는 전부라고 착각을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반응한다.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쓴 진화에 대한 오해란 글의 답글. 물론 나 역시 너무 많이 축약해 놓은 것을 깨달았기에 좀 더 보충을 해 놓았고, 따라서 저 글의 답글이 저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며,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저러한 태도가 다른 글에 대한 반응에서도 너무나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과학철학에 관심이 많고, 수학을 부전공했으며 생물학을 전공했고, 전산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저렇게 반응하진 않았겠지. 이 정도는 다른 글들을 조금만 읽어 봤더라면 어느 정도 느꼈을텐데 그 정도의 노력도 없이 그저 글 하나만을 갖고 나머지를 전부 판단하려 한 것이다. 난 B4의 반페이지에 딸랑 한 줄로 "이것을 증명하라" 한 해석학 시험에서 반페이지에 걸쳐 증명해 놓았는데 중간에 절대값 부호가 빠져서 감점을 받았던, 또, 2 대한 조건 딱 하나를 쓰지 않아서 나머지 내용이 전부 틀려버려 겨우 반점을 받았던 정수론을 들기도 했고, 등등등, 그 정도로 철저함과 완벽함을 좋아해서 1년을 더 다니면서 수학을 부전공한 사람이라구, 라고 글마다 써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이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해 줄 것이다, 란 생각을 하고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을 읽는 이는 이러한 점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글을 쓰는 자는 우선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을 쓰려 하기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모든 생각과 가정, 근거, 이유를 제시하기 힘들고, 어느 정도는 가치관에 의존하는 그러한 것들 역시 전부 쓰기는 어렵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글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가, 를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사소한 오류나 비문, 응집력을 깨뜨리는 문구/단락/문장, 다소 일관되지 않은 논리의 흐름, 등등을 감안하더라도 그 핵심의 파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어차피 우리가 쓰는 많은 글들이란 어느 정도 문제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읽기 시작 전부터 감안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혹자는 나의 대화 능력의 부족함을 치장하기 위하여 이러한 글을 쓴다고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는 자의적으로 나에 대해 판단을 내려버리지. 이렇게, 예상되는 반응에 대한 답변을 하다 보면 글이 지리멸렬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 말하고자 하는 핵심에 대해서 온전히 관심을 기울여 쓰지 못하게 되고, 읽는 이 역시 핵심에 덧붙여진 그러한 단락을 읽어야 하는 수고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난 오해를 줄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대화라고 생각을 하며, 지인들과는 3, 4시간 이상의 연속된 대화[각주:1]를 하는 경우가 많고, 처음 본 사람과도 내 의지에 따라 한두시간은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더이상 언급을 자제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난 인터넷을 통한 대화를 그만두었다, 10년이 넘는 블로깅을 하다가. 앞으로도 이러한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생각한다, 장담은 안 하지만. 




  1. 수다가 아니다. 오히려 건조하다면 건조할 수 있는 내 성향 상. 난 일반적으로 말하기 꺼려지지만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끄집어 내어 그것들을 헤짚어 보려는 경우가 많다. 감추고, 피해가려는 이들을 잘 구슬러 결국 그것을 끄집어 내고자 하면 시간이 꽤 걸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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