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여정도 곧 끝이 난다. 참 오래간만에 이렇게 불연듯 떠나 왔다. 몇 가지 문제들을 갖고 떠나 온 이 일정의 끝에서, 그 문제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어딘가를 이렇게 떠날 땐 항상 몇 가지 문제들을 갖고 있었고, 여행을 마쳤다고 해서 그 문제들이 해결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자주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마음의 여유가 좀 더 생겼고, 그래서 그 문제들을 좀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이번에 돌아 다닌 곳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원래는 교토를 가려고 했던 것이었지만 시기가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랑 맞물려 숙소가 별로 없었고, 그래서 교토에서 좀 먼 곳에 숙소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다음 날 일정에 대한 계획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그 날 숙소에 들어가는 도중 한 10초 정도 생각해서 거의 즉흥적으로 정했다. 정해진 일정을 따르다가도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지 바꾸기도 했고.
오사카 쪽은 2007년에 왔을 때랑 몇몇 여정이 겹치는 듯 하기도 했다. 열차를 타고 가는 도중 본 공원에는 그 때 갔었던 공원이 있었다. 수마우라 공원이었나... 산노미야도 지나갔고. 그 때는 아직 겨울의 막바지였기 때문에 상당히 한적했고 심지어 스산하기까지 했던 공원들이 봄이 되자 벚꽃이 공원을 매우 활기차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 때는 딱 두 사람만을 보았었는데 이번에 지나면서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그 공원에서 자리를 펴고 햇살과 벚꽃을 즐기고 있었다. 불연듯, 뭐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나 벚꽃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만개해 무리를 이루는 벚꽃을 보더라도 그리 큰 감흥이 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 밑을 거닐고 있을 때면 기분이 좋아졌다. 한국은 지금 막 절정인 듯 한데, 이곳은 어느 새 지기 시작했다. 엊그제 비가 와서 더더욱 이제 대부분의 벚꽃이 떨어지고 녹색의 잎들이 돋아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작은 놀이터조차도 공원이라 이름 붙여 놓아 가게 되었었는데, 왜냐면 난 주로 공원을 찾아 돌아다녔으니까, 아무리 작은 곳을 가더라도 여전히 몇 그루의 벚꽃나무가 있었고, 그것은 내게 매우 이채롭게 보여 대부분은 얼마 간 그 곳에 머물게 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일본만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일본에 대한 느낌은 여전히 평화롭고 조용하다는 것, 아주 좁은 2차로에 있는 대부분의 신호등도 지키려 하는 것에서 규율대로 움직이는 사회의 모습.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런 풍경, 자연과 분위기이지 일본인 자체는 아니다. 이런 것을 느낄 때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한국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나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일본의 그 저력, 한국인이 그토록 무시하는 일본이 세계적으로 갖는 그 위상이 좀 싫기도 하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대체 이놈들의 어떤 면이 그토록 이들의 그와 같은 위상을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여전하다. 이런 궁금증이 내가 국화와 칼을 읽게 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평화롭게 벚꽃놀이를 즐기는 여러 사람들 - 정말 많다, 여기저기, 곳곳에 - 을 보면서, 이렇게 평화로운 사람들이 한국에 했던 짓들을 정말로 했던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이들의 저 평화로움은 제들 국민(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아마도 일제가 우리를 침략한 시기의 봄날에도 많은 이들이 저렇게 평화롭게 보이는 벚꽃놀이를 즐기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러고 보면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 진 그 행위를 모든 개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지라도, 바로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사과를 하고 전비를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래야 개개인이 조금이라도 그것에 관심을 가질 테니까. 지들 국가가 우리 나라에 비인간적인 행위를 할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개개인은 그러한 것에 무관심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뭐, 그렇긴 하지만, 2013년 아직도 빨갱이 타령을 하고 있는 한국은 6.25도 지나지 못했으니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엔 요원하다. 그러니 이놈들이 더 그러는 것이겠지... (물론 이런 생각은 한 5분 남짓 했다. 단지 글로 주저리주저리 쓰니 이리 길어질 뿐)
이제 랩으로 돌아 가면 문제와 할 일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겠지. 그러니까, 세상은 내가 오기 전 일주일과 거의 변한 것이 없을 것이다. 단지 변한 게 있다면 내 마음, 그것도 아주 조금 뿐이겠지. 그래도, 자주 느꼈던 것처럼, 앞으로 생활하면서 힘들 때나 아니면 시나브로 상념에 잠길 때면, 이번 여행에서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풍경이나 일들이 떠올라 약간의 위안과 편안함을 줄 것을 기대한다. 기억에 남았던 것들은 자주 그렇게 쉽게 흘려 보냈던 모습들이었고, 그 모습들이 오히려 내게 더 큰 편안함을 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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