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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관련/연구생활

최종심사를 마치고

by adnoctum 2012. 11. 9.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이제 서류 상의 절차만 끝마치면 박사학위과정을 끝마치게 된다. 다소 철학적 물음에서 시작한 연구는 구체적인 관련 분야의 물음이 되었고, 그것은 끊임없는 생각과 고민의 연속 끝에 적절한 주제가 되어, 몇 년에 걸친 작업 끝에 결과가 나와 지난 수요일에 마지막 발표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대학원을 진학할 당시, 지적 능력의 사용에 관한 물음이 있었고, 그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풀어 나가고자 택한 것이 생물학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며, 따라서 나의 연구는 언제나 그 바탕이 되는 철학적 물음을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다소 추상적인 것에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공 분야에 맞는 물음으로 바꾸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고 그 구체적 내용이 다소 유치하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난 언제나 피상적 물음, 단편적 물음에서 시작한 연구를 지양해 왔으며, 추구하고자 했던 바는 보다 커다란 범주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 예로서의 연구였다. 비록 그 완성도나 중요도 면에서는 서툴지라도 학위 과정 중에 내가 해 왔던 방식은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바와 잘 일치해 왔다. 그래서 길었던 학위 과정에 대한 불만도 후회도 없다. 


   단편적 물음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특정 명제로 시작해서 명제로 끝나는 것이다. "A가 B한다면?" "A가 B하면 C하더라", 하는 식. 유전자 A를 없애면 암의 진행속도가 느려지지 않을까? 하는 식. 대신, 내가 추구했던 것은, 세포의 내부에는 단백질들의 무작위적 충돌에 의한 반응이 진화를 통해 선호되는 일련의 반응 연쇄가 생겨났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부르는 신호전달경로이며, 따라서 각 신호전달경로는 독립되어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상호교차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하에 그 상호교차에 대한 증거를 기반으로 현재 알려진 신호전달경로 간의 상호교차에 대한 증거를 찾아 내어 신호전달경로연결네트웍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전사작용과 그에 대한 반응의 조절을 자극-반응으로 간주, 이것으로부터 신호전달경로의 상호교차에 대한 증거를 얻을 수 있으므로 이것을 신호전달경로의 상호 교차에 대한 기능적 증거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몇 가지 방법론적 시도 끝에 적절한 것을 찾을 수 있었기에 계산이 가능했고, 따라서 연구는 느리지만 천천히 계속 진행되어 왔다. 세포 내의 '실제' 현상에 대한 보다 현실적 접근이라는 점과 더불어, 이로부터 질병이란 무엇인가의 기능이 저해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무엇인가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기에 생기는 경우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느낌까지 얻을 수 있었다. 즉, 다시 말해, 유전자가 과발현된 이유는 그 유전자를 발현시키는 조절자의 과도한 활성화라기 보다는 그 유전자를 억제하는 기능의 저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비단 유전자 과발현 문제 뿐만이 아니라도 질병의 상황은 정상적 기능을 잃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비정상적 활성화를 얻기 때문인 경우보다 많은 것 같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약간의 작업 후 이야기를 풀어 나갈 생각이다. 


   디펜스가 끝난 날은 별로 느낌이 없었다. 실감이 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래 간만에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한 달이 넘게 오지 않았더니,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어미 젖을 먹으며 기어 다니던 새끼 고양이들이 다 커서 뛰어 다니고 있다. 들녘은 이미 추수가 끝난 지 오래이며 길도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다. 도시야 계절의 흐름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변하기에 그러려니 하는데, 농촌의 모습은 계절과 맞물려 그 모습이 변하기에, 한 토막 떼어져 나간 모습이 그 기간 동안 내가 집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곧, 주말에 랩에 나가 일을 하다 종종 밖에서 들리는 시끌벅적한 즐거운 이야기들 속에 조용히 묻곤 했던 나의 소소한 가을놀이도 이제 끝나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한 단계의 끝맺음을 한 것이기에 마음만은 홀가분하다. 아직 그 홀가분함을 100% 만끽하기는 이른 감이 있지만, 가장 비중이 컸던 일이 끝났기에 이제는 조금은 더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겠지. 


   보장되지 않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잃는 것, 잠시간의 여유조차 부리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끊임없이 일에 몰두하는 생활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지난 한 달 간 생활했던 방식은 결코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어떤 끝맺음이라는 목표를 위한 것이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 언제나, 바쁜 일상 이더라 하더라도 잠깐동안의 여유를 느끼며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을 지향하기에, 그러한 시간이 다소 부족했던 지난 한 달이 조금은 아쉬울지 몰라도, 그 기간의 노력이 꽤나 많이 지금 돌아오고 있기에 이번에는 여유를 갖기 까지의 시간이 다소 길었다고 생각해도 좋겠지. 당장 이번 주 주말에 내려가면은 학교를 하릴없이 거닐어 보고 싶다. 요즘 이런 시간들이 너무 없었다. 특정한 목적 하에 정해진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만이 있었을 뿐. 이제는 조금의 여유가 생겼으니, 비록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일에 집중한다 해도 중간중간 시간을 내어 마치 한량이 뭐 시간 때울 것 없아 두리번거리는 것보다 더 한심스러워 보일 정도로 여유를 만들어 즐겨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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