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앞으로의 병리학 스터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우리 랩은 학생들 스스로 스터디를 조직해서 끌고 나가는 아주 좋은 분위기가 있다. 그간 했던 스터디 중 가장 효과적이고 이상적이라 생각되는 스터디는 심혈관계 관련된 스터디였다. 책은 introduction to cardiovascular disease 란 제목이었는데, 아마 200페이지 남짓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책이었다. 총 3명이 했었는데, 두 명이 주를 이루고 나머지 한 명은 참가해서 듣고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는 의대를 나왔기 때문에. 스터디는 하루에 두 chapter 를 했는데, 두 명이 두 장을 전부 읽어 온다. 요약은 워드 문서로 했다. 한 명이 먼저 한 장을 설명하면 나머지 한 명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누락된 것을 추가한다. 그 후 다시 역할을 바꿔서 다른 사람이 설명을 하고 마찬가지로 이번엔 처음에 설명했던 사람이 누락된 부분을 추가한다. 이런 식으로 책 한 권을 한두달 남짓 해서 끝냈었다. 이렇게 하니 서로가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고, 이 방식은 우리 랩에서 스터디의 가장 좋은 사례로 남아 있어 종종 회자된다.
다른 스터디는 알츠하이머에 관한 스터디였는데, 다소 두꺼운 책이었다. 너댓명이 참여를 했었던 것 같고, 교수님도 참석을 하셨었다, 순전히 학생의 입장에서. 하루에 두 장을 나갔는데, 한 명이 한 장씩 발표를 하는 식으로 참여 학생이 돌아가면서 적당한 chapter 를 맡아서 했었다. 이 때, 교수님은 (정신과 의사) 조언을 해주시긴 했지만 책의 내용을 듣고 싶으셔서 참석을 하셨었다. 물론 이 스터디도 다른 스터디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먼저 제안을 했고 참여자와 스터디 방식을 구성했으며, 따라서 교수님은 참석을 하시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들으시는 입장이었지 감독의 입장이 아니었다.
그 이외의 여러 스터디가 있었는데, 책을 목표로 하면 한 명이 맡은 분량을 발표하고, 논문을 목표로 잡으면 진행자(organizer)가 논문을 선별, 각 사람에게 할당했었다. 보통 두 시간 정도로 하루 일정을 잡는데 질의 응답 시간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길어지기도 했었다. 또한 처음에 말했던 심장관련질환 스터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가 발표 내용에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했었다. 한 번은 MIT의 OCW에 있는 동영상 강의를 같이 듣기도 했었다. 교수님이 하라고 해서 한 스터디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것도 넌즈시 이런 걸 공부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라고 말씀을 하시면 학생들이 알아서 조직해서 진행했었다. 지금 하는 병리학 스터디도 비슷했는데, 일단 교수님이 처음 제안을 하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한참 전에 병리학 책을 사서 공부를 했었고, 다른 학생 한 명이 내 책을 보고 자신도 사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던 와중에 몇 명의 학생이 자신들도 병리학을 좀 공부해 보고 싶다는 의견을 얘기하던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교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니, 아예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고 해서 이번 스터디가 시작이 된 것이다. 의사 면허를 가진 학생이 두 명 있고, 병리학 책을 혼자 공부하던 학생 두 명(나를 포함)이 있어서 일단 이 네 명이 처음에는 분량을 나누기로 했다. 나는 학부 전공이 생물학이라 분자 단위에서는 익숙해도 실제 조직이나 해부학, 그리고 생리학 지식이 부족했고, 다른 학생들은 생물학 전공이 아닌 학생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실험실에서 주로 암이나 당뇨와 같은 질병에 대해 연구를 하다 보니 모두들 분자 단위에서 일하는 것에 있어 좀 더 큰 그림을 알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꽤 많은 인원이 참석을 한다. 실험실이 크게 나누면 두 분야로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스터디는 두 팀 모두 참석한다.
다른 연구실도 이런 경우가 물론 있겠지만 학생들 스스로 하는 경우가 많은지는 모르겠다. 우리 랩은 오히려 교수님이 시켜서 반강제로 하는 경우가 이상할 정도로 학생들 스스로 하고, 그러다보니 스터디 모임의 가장 큰 병폐인, 난 그냥 참여만 해서 듣기만 할래, 하는 분위기가 별로 없다. 다른 많은 점도 좋지만 특히 이런 분위기가 연구실의 자랑거리라면 자랑거리이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