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를 마치면 누구나 으레 그렇듯 대학을 들어 간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진학이 스스로 한 결정일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 그나마 나는 생물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과를 정하고 대학을 점수에 맞춰 가는 정도가 내가 한 결정이라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 후 취직이냐 대학원이냐의 기로에 설텐데, 난 그보다 먼저, 부전공을 하느냐 마느냐의 결정. 아니, 그보다 회사에 다니느냐 마느냐 하는 결정도 물론 있기는 했다. 결국 학교를 택했었고. 졸업 후 대학원으로의 진로를 결정했을 때는 이미 최소 6년의 기간 동안 다시는 그러한 결정을 할 시기가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에 내가 결정적인 결정을 해야 했던 횟수는 회사 vs. 학교, 부전공을 하느냐 마느냐 (그래서 1년을 더 학교에 남느냐 마느냐), 대학원을 가느냐 회사를 가느냐, 이렇게 세 번 정도이다.
그 각 단계에서 새로운 단계가 시작될 때, 다른 때는 모두 설레였었는데, 유일하게 부전공 때문에 학교에 1년을 더 남게 되었을 때는 이게 과연 잘 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로서도 다소 의외였던 것이, 그 전 학기 때까지만 해도 확신에 가득 차서 1년을 더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괜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 때는 아직도 기억한다. 학생식당에서 과도관으로 이어 지는 통로를 지날 때, 컴퓨터실 앞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었지. 약간의 불안함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확신 역시 있었기 때문에 결국 1년을 무사히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때 그렇게 1년을 더 다닌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 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 곳에 결코 수식이 있는 글들이 씌여지지 않았겠고, 내 연구 과정 중에 만나는 수식에 내가 이토록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도 없었겠지.
그런 것 같다. 확신에 가득 차서 시작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일이 시작되었을 때는 다소 불안함이 생길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렇더라도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그 확신을 계속 갖고 조금 더 나아가 보는 것.
지금도 약간은 그런 상태다. 비록 파이펫 잡고, dish 긁으면서 western 을 하는 생활은 아닐지라도 결국은 생물학만을 위해 계속 진행되어 온 내 생활. 수학이든 전산(프로그래밍)이든 내가 한 모든 것은 언제나 생물학을 위한 것이었다. 읽는 논문의 90% 정도가 생물학 논문이고 그 이외가 통계/수학/전산 쪽이니까. 앞으로 살아 가면서 하게 될 일도 언제나 생물학만을 고려했을 뿐 다른 것이 내 생활의 주가 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전산 쪽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기도 했고. 그런데 요즘 진행되는 상황을 보아 하면, 엄밀히 말해 생물학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닐지라도 내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과연 그 곳에 어느 정도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자꾸 일이 커지면서 내 손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예전에 생각해 오던 생물학에 더 관심이 있고, 심지어 오늘은 둘의 융합을 그리기까지 할 정도이니, 이 새로운 곳으로 달려 들어가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따르는듯 싶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충분히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그 확신은, 이 새로운 것이 과연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과 더불어, 내가 하려던 곳을 계속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 그런데 여태까지 한 고민의 궁극적 종착역을 포기할 수는 없고, 또 크게 보면 서로 달라 보이는 두 분야를 내 안에서 합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이 조금 더 진행되면 지금보다 조금 더 확실해 질 수 있겠지. 그런데, 그러더라도 내가 지금까지 꿈꾸어 오던 것을 버리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것이라 공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공개로 한다. 아주 가까운 사람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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