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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

잃어버린 생활의 여유를 찾아서

by adnoctum 2011. 1. 7.

    어디를 가나 재빠름이 미덕의 얼굴을 하고 있다. 도대체 왜 빨리 해야 하는 것일까? 무료함 또는 지루함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그냥 계속 잤다. 잤을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 일어나니 꽤 환한 것이 이미 정오를 넘어선 듯 하다. 그렇군, 일어나서 잠깐 시간을 보았는데 12:15 라는 숫자가 명확히 보였던 기억이 있으니까. 조금 잔 것 같았는데 언제 이렇게 많이 잔거지? 또 그냥 무의식 속을 배회하다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니 벌써 해가 서쪽 하늘을 다 넘어가 있다. 저, 서쪽 하늘에서 태양을 가리우는 구름이 못내 미워진다. 하지만, 아직은 햇살이 많이 남아 있고, 커다란 돌 밑에서 제비꽃은 무심히 자라고 있었다. 카드키. 그러니까, 학생증. 학생증을 기숙사에 놓고 왔다. 매점및 약간의 건물을 제외하면 모든 건물이 일과 시간 이외에는 문이 잠긴다. 이런, 제길. 약 5분 거리의 실험실과 기숙사. 귀찮았지만, 그래도 저 햇살이 나의 짜증을 한층 누그러뜨려 주었다. 어제 새벽에 나오면서 카드키만 빼서 갖고 나왔는데, 좀 전에 방에서 나올 때 빼 놓고 나온 것이겠거니, 하고 다시 방으로 향했다. 6시 버스를 타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약간의 조급함이 생길만한 시간으로 떠밀리겠군, 이란 생각과 함께 방에 도착했을 때, 그 어디에서도 카드키를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니, 아침에 방에 들어올 때 대부분의 것을 실험실에 놓고 왔는데, 그 때 카드키도 놓고 온 것이란 생각이, 불안과 짜증을 동반하면서 떠올랐고, 실험실에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니 역시나 그 곳에 있었다. 건물 출입의 목적이 아니라면 그냥 갈까, 생각도 했지만, 이내 곧, 신용카드와 몇 가지 것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실험실로 향했다. 이미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햇살은 아직도 밝게 빛나고 있었고, 이 짜증섞인 감정들도 그 햇살과 봄기운에 취해 그리 힘을 쓰지 못했다... 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까지 느긋하진 않았으니 짜증이 났다. 실험실에 도착하니 벌써 시간은 많이 흘러 5시 반을 넘어 섰고, 6시 버스를 탈까 말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나가도 충분히 버스를 탈 수 있겠지만... 무엇이었을까?

   30분만에 밖으로 나온다는 것. 그것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닌데. 왠지, 너무 서두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7시 버스를 예약하고, 느긋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저녁을 먹고 조금 걷다 자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떠나야 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중간에 약간 막혔다.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번 신호등에 걸렸다. 갑자기, 예약된 시간인 7시가 넘어 가면 어떻게 하나, 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조금 더 생각을 해보니, 그냥 그뿐이었다. 놓치면, 놓치는. 서울을 갈 수 없는 것도, 서울을 간다면 용인을 갈 수 없는 것도, 그런 것도 아니니까. 시간이 조금 뒤로 밀리는 것을 제외하면 내가 있어야 할 바로 그 장소에 결국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평온함이 찾아 들었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여유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5분을 남겨 놓고 터미널에 도착을 했고, 기다리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버스에 올라 탈 수 있었다. 축구 중계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안 보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재미'에 불과한 스포츠 경기 때문에 고요함과 아늑함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은 그리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래서 그냥 음악을 들으며 약간 편하게 누워 있자니 어느새 서울에 도착을 했다. 서울에서 용인으로 오는 것은 9시 50분 버스를 예약해 놓았었는데, 한 시간이나 남았다. 혹시나 좀 더 빠른 것이 있을까, 하고 차시간을 물어 보니 그 전 시간은 이미 다 나가고 9시 50분 것만 남아 있다고 한다. 흠. 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실 한 시간 일찍 버스를 탄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많이 달라질까? 한 시간 늦게 집에 간다고 뭐가 많이 달라질까? 달라질 것은 별로 없는데 왜 서둘러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일까?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더구나 오랜만에 조카들이 와 있으니, 물론 중요하지만, 그리고 만약 9시 10분 버스를 탈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냥, 그랬다. 그런 거지, 뭐. 서점에서 책을 좀 보다가 시간이 다 되어 밖으로 나왔다. 과일껌을 사다 달라고 하던 조카의 말이 떠올라 과일 껌을 두 개 사고, 우유를 하나 사고, 버스를 타러 갔다. 아직 오지 않았다. 5분 전인데 왜 아직도 안 왔지. 하지만, 아무렴 어때. 오겠지. 어차피 안 올 것도 아니니까. 곧 왔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타고 있었다. 나는, 그냥 뒤로 물러나 있었다. 어차피 좌석이 다 정해져 있으니까. 굳이 크게 서두를 것이 없었다. 10초를 서두른 것 때문에 5분 뒤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 늦게 타든 일찍 타든 어차피 내 자리는 32번이었고, 결국은 그 자리에 앉게될 테니까.




   많은 것이 그런 것 같다.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찾아 보려 해도, 급하게 서둘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험은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너무 늑장을 부려 뒤늦게 그 나태를 충당하기 위해 조금 빨리 움직여야 했을 뿐.


원본 작성일 : 2009-03-29 03:22
미몹 백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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