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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여행/뉴욕(2007)-학회

둘쨋 날 쇼핑, 오페라의 유령

by adnoctum 2010. 7. 19.


2007년 3월 5일 월요일 - 둘쨋 날 우드버리, 오페라의 유령



2007년 03월 05일 월요일(한국 시간: 2007년 03월 06일 화요일)

  오늘은 옷을 싸게 살 수 있다는 woodbury 로 가기로 하였다. Pen station에서 9시 20분 정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아침에 살짝 잠이 깨어, TV위에 올려져 있는, 탁상 시계라고 하기에는 다소 커다란 시계를 쳐다 보니 6시가 조금 넘었다. 밖에서 들리는 바람 부딪히는 소리와 방안을 가득 채운 찬 뉴욕의 공기 때문에, 다시 잠을 자려고 했으나, 좀처럼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연결되지 않는 생각을 계속 하다 눈을 떠 시계를 바라 보니 6시 58분이다. 탁상 시계가 어느 정도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정확히 몇 분이 빠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7시에 맞추어 놓은 알람이 언제쯤 울릴지도 가늠을 못한 채, 눈을 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였다. 곧바로 시계가 울렸다.

  알람을 끄고, 이제는 버릇이 되어 버린, '5분만 더'를 하다, 상황이 상황임을 생각하고 그냥 일어났다. B를 툭툭 치며 씻으라 하자, 아직 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B는 내가 먼저 씻으라 한다. 내가 씻고 나오고 곧바로 B가 들어가서 씻고 나왔을 때는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씻는데 오래 걸린다는 A 누나에게, 30분 이내로 씻고 나와야 아침을 먹고 갈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B와 나는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아침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A 누나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기 때문에, 지리한 고민 끝에 우선 나가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내 전화기는 호텔 방에 놓고 그 옆에, 다 씻고 연락하라는 메모를 해 놓았다.

  호텔을 나가 좌회전을 하여 한 블럭 앞에 맥도널드가 있었다. 호텔 문을 열고 나가자, 어제와는 사뭇 달리, 거리에 사람이 많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추워서 발걸음을 재촉하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 거리의 차는 많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신호등이 채 하얀불이 되기 전에 건너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럴때면 차는 어쩔 수 없이 서야만 했다.

  맥도날드의 이중문을 열고 들어 서자, 문 앞의 남자 한 명과 계산대 앞의 여자 두명이 보였다. 우리가 주문을 하기 위해 계산대 앞에 섰을 때는 이미 두 명의 여자가 앞에서 주문을 마친 상태였다. 2000년과 2001년 중 한 번 맥도날드를 가본 이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떤 메뉴를 선택할까 고민을 좀 해야했다. KFC나 버거킹을 주로 다니는 나로서는, 닭고기 메뉴가 없는 맥도날드에서 무엇인가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약간의 사소한 긴 선택을 필요로 했다. 적당히 McGriddle이라는 것과 콜라를 시키 받고, 자리에 앉아, 나는 감자를 으깨 하나의 조그만 파이모양으로 만든 것부터, B는 햄버거부터 먹기 시작했다.

   햄버거는, 두 개의 팬케익이 위아래를 감싸고 그 안에 고기와 계란이 들어 있었다. 햄버거를 한 입 물자, 고기 맛은 느껴지지 않았고, 팬케익 속에 들어 있는 설탕 시럽 맛만이 느껴졌다. 끝맛에 간간히 고기와 계란의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가 먹는 사이 시간이 어느 덧 흘렀는지, 맥도날드 안에는 머리가 히끗히끗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흑인 젊은이, 백인 아주머니 아가씨 등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커피 3잔과 햄버기를 쟁반 위에 올려 가는 동양계 여자와 남자가 있었고, 갑자기 들이 닥친 10대 백인 소녀들 무리는 몇 마디 시끄럽게 주고 받고 밖으로 모두 빠져나갔고, 우리 대각선에서는 흑인 한 명이 커피를 마시며 아침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주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바뀌어 있었다.

  아침을 다 헤치운 우리는, A 누나가 올 시간이 되었는데 안 오기에 전화를 해보기로 하였다. 가는 신호는 결국 답을 받지 못하였다. 호텔을 나오기 전, 내 전화로 B한테 전화를 걸어, A 누나가 전화를 걸 때는 send만 누르면 되도록 해 놓았었다. 그러나 지금 B가 전화를 했기 때문에 A 누나가 단순히 send를 누르는 것만으로는 우리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왜냐 하면, 발신자로 나오는 번호로는 전화를 걸 수 없게 번호가 뜨기 때문이다. B와 나는 결국 호텔로 돌아 오기로 하고 재빨리 맥도날드를 나섰다.

  호텔에 도착하여, B는 방으로 올라오고, 나는 혹시 길이 엇갈릴 것을 대비하여 로비에 있기로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 A 누나가 가는 것이 보인다. A 누나를 불러 세운 후 B를 만나 A 누나의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맥도날드로 다시 들어 갔다. 그러나 프런트 앞에서 A 누나는, 혹시나 시간이 올려 걸려 woodbury로 가는 버스를 놓칠까 걱정하여 그냥 나왔다. 우리는 곧장 Pen 역으로 출발하였다. 길은 구조가 매우 단순하여 찾기가 매우 쉬웠으므로 우리는 쉽게 7th ave.와 33 st. 가 만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이 때였다. Pen 역에서만 만나자고 했을 뿐, 정확히 어느 곳에서 woodbury로 가는 shuttle bus가 서는지 알 수 없었다. D이와 C에게 몇 번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 우리 세 명은 결국 pen station 앞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를 반복하였고, 때때로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하였다. 그 때 경찰이 와서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내가 woodbury로 간다고 말을 했는데, 경찰이 발음을 잘 못 알아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그때까지 woodberry로 알고 있었고, 계속 [베리]라고 발음을 했었기 때문에 경찰이 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여 경찰이 알아듣기까지는 하였는데, 그도 shuttle bus가 어디에서 서는지는 알 수 없었고, 거기까지 어떻게 가는지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 C에게서 전화가 왔으나, 손이 얼어서 폴더를 열다 놓치는 바람에 전화가 끊어졌다. 이내 내가 다시 전화를 하였으나, 이런 상황에서 극히 전형적인, 통화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얼른 끊고 조금 기다리자 전화가 왔고, 내가 다급하게 어디에서 만나는 것인지를 물어 보았다. 시간은 이미 9시 30분을 막 넘어서고 있었다.

  8번가와 31번가가 만나는 곳이란 얘기를 듣고, 우리는 경찰에게 말할 겨를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우선은 8번가쪽으로 달려갔다. 바람이 앞에서 불어 뛰어 가기가 곤란하게 만들었다. 겨우 뛰어 8번가에 도착한 우리는 이제 31번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C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버스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을 하였다. 버스는 32번가와 33번가 사이에 있다고 했고, Monsei라는 글자가 버스에 적혀 있다고 했다. 우리가 막 33번가로 내려가려는데, 저 앞에서 A 누나가 저 버스같다며 안절부절을 못하고 그 뒤에서 B는 뻘쭘하게 서 있는다. C가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고, 우리는 다시 앞에 있는 신호등을 건너 버스를 타기 위해 달리던 걸음을 멈춰 방향을 180도 바꾸었다. 그 때 등 뒤에서 'Hei!' 하는 소리가 들렸고, 다시 뒤를 돌아 보자 마술모자같이 뾰족한 털모자를 쓴, 백발이 적당히 섞여 있는 할아버지가 가슴 높이에 폭 25CM 정도 되는 판자를 들고 있었다. 잘 안 보여 좀 더 가까기 가자, Woodbury라는 글자가 보였다. 거기로 가는 것이냐고 묻길레 누군가가 맞다고 하자, 차들이 멈춘 틈을 타 무단횡단을 하여 우리를 버스까지 안내한다.

  버스는 예약제였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을 많이 데려가야 더 많이 팔 수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떠나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C가 분명 기다려 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C와 D 앞에 앉은 B와 A 누나는, 오늘의 이 한바탕 소동에 대해 시끌벅적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좀 떨어진 곳에 혼자 앉게 되어, 모처럼만에 혼자 여행하는 기분을 내었다. 쿠폰북과 약도 등을 받아 조금 보는 듯 하다, 빈 옆자리에 내팽개치듯 던져 놓고 밖을 보며 상념에 잠기기 시작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기사 아저씨는 뭐라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잘 들을 수는 없었다. 그 중 그나마 생각나는 것은, 돌아올 때는 정확히 4시에 떠날 것이니 늦지 말라고 한다. 그 때 못 보면, 내일 볼지, 다음 주에 볼지, 내달에 볼지 내년에 볼지 알 수 없다고 하자, 사람들이 한바탕 웃는다. 길을 가다 중간에 나오는 지형물에 대해, 뭐 어느 아이스하키팀 경기장이라느니 하는 말을 하는데 별 관심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듣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머릿 속에서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 상태로 흘러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신치토세 공항에 내려서 홋카이도 역까지 갈 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 때, 만약 들리는 말을 제외하면 내가 현재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 결국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린 일. 그런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단지 풍경만으로, 그것도 열차가 달릴 수 있게 정비된 곳의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이국적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 이국적이라는 것은 그 풍경도 한 몫을 하겠지만,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 그것이 바로 이국적이라는 것의 정확한 대상일 것이다.

  도중 현대차 대리점이 잠깐 보였고, 작은 집들이 정비 되어 있는 마을이 옆에 강을 끼고 있는 것도 보였다. 이런 모습이 내게 불러 일으키는 첫번째 생각은, 평화롭고 작은 마을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치 도니다코(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은)처럼. 그런데 좀 더 생각을 해보니, 충분히 아름답고 재미있는 것도 생각이 날 수 있을텐데, 이처럼 암울하고 음침한 생각만 나는 것은, 나의 영화 스타일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범죄 스릴러, X-File, CSI, WTA, 하여튼 제리 브룩 하이머가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니 주로 그런 생각이 날 수밖에...

  또 한 번은 마치 골프장같은데 군데군데 나와 있는 나무로 보아서는 골프장이 아닌, 작은 구릉이 보였다. 그 옆에는 늪이 있어, 늪에 있는 억새(갈대?)가 옆의 벌판과 함께 만들어 내는, 갈색의 넓은 대지는, 어린 시절 좋아했던 '금발의 사라'라는 외화를 생각나게 했다. 사라 목소리를 했던 이현선이라는 성우를 좋아했고, 특히나 그 드라마에서 나온 풍경, 그러니까 금빛 갈대가 쫙 펼쳐친 시골 풍경을 너무 좋아하여 꼭 저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 그런 생각은 아직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 내가 때때로 어딘가로 무작정 발길을 옮기도록 하고 있다.

  얼마쯤 왔을까, 시계를 보아하니 10시 20분이 다 되어간다. 버스로 한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는 사실과 출발 시간을 고려하면 거의 다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 woodbury라는 글자가 보였고, 곧이어 도로 표지판에서까지 woodbury라는 글자가 보였다. 버스 기사는 차를 세운 후 오후 4시에 이 곳으로 오라고 하고 문을 열었다.

  D와 C, A 누나가 아침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우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있는 food court로 갔다. 그곳에서 D와 C는 mexican 어쩌구 하는 상점에 들러 무엇인가를 시켜 먹는다. A 누나는 중국집이 있다고 좋아하며 갔는데 문을 열지 않았다며 실망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결국 다시 맥도널드로 들어 간다. 적당히 다 먹고 다시 만난 우리들은, 어떻게 돌아다닐지를 정하는데, 어차피 뿔뿔이 흩어질테니 그냥 아무렇게나 출발하자고 한다. 그런데 A 누나가 전화기를 갖지 않고 있었으므로 B 것을 주어, 급한 상황에 대비하기로 하였다.

  나는 우선 D와 B를 따라 신발 가게로 갔다. 신발에 관심이 없는 나는, 한 30분 정도 같이 있나 밖으로 나와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고, 내가 아는 브랜드만을 골라 매장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우선 Calvin Klein으로 갔다. 한국에서 떠날 때 이미 이곳에서 검은 청바지를 사기로 마음 먹고 바지는 한 벌만 갖고 온 상태였다. CK에서 청바지를 찾다 양복바지 비슷한 바지 쪽에서 서성대고 있는데 점원이 와서 어떤 사이즈를 원하느냐고 묻기에, 29를 찾는다 하니 찾아 준다. 한번 입어보라기에 입어 보았는데, 그런데로 잘 맞는다. 그 옷을 꼭 사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에 어울리는 신발도 사야 했기에 우선 보류했다. CK에서 청바지를 두 벌 사고, 티도 마음에 드는 것이 많이 있었지만 다른 곳을 좀 둘러 본 뒤 사기로 하고 밖을 나섰다.

  그런데 밖은 세찬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눈 속을 헤치며 Nautica, Lacoste, Jorjio Armani, Polo Ralph Rauren 등을 둘러 보았다. 입으나마나한 잠바를 입고 왔기에 잠바를 하나 살 생각이었는데, 어차피 한국에 가면 봄이었기에, 이곳에서 잠바를 사느라 다른 옷을 못 사는 것이 아깝게 생각되어 결국 잠바를 사는대신 두꺼운 긴 팔 티를 사기로 하였다. Lacoste에 50~60$의 예쁜 옷들이 많았는데, 이미 다른 곳에서 그보다 훨씬 싼 옷들을 보았기 때문에, 고민을 해야 했다. 말로만 듣던 Jorjio Armani 매장에를 들어가 보았는데, 왠만한 티 한장은 200$가 넘고, 외투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1,000$이 넘는다. 내가 있을 필요가 없음을 재빨리 알고 금방 나왔다. 이정표의 제일 밑바닥에 붙어 있는 Sony라는 글자를 따라 매장의 제일 끝까지 이동하였다. 마침 디카에서 노트북으로 연결하는 잭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소니 매장에 들어가니, 박스도 뜯지 않은 물건들이 보였다. 많은 가전 제품들이 원가의 절반 정도 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누나의 디카에 들어가는 베터리가 있기에,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보고 있으니, 점원 아저씨가 옆에 와서 도움이 필요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디키를 꺼내 보이며, 이것을 노트북에 연결할 connector가 필요하다고 하자, cable만 필요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를 잘 몰랐다. 그 점원은 본격적으로 말을 하려고 했는지, 내 이름을 묻는다. 내 이름은 외국인이 발음하기에 힘든 것을 알기에 나는 그냥 [리]라고 하였다. 그 점원은 리를 부르며 이리 와보라고 하고 진열대 앞으로 나를 불러 세우더니, 자기는 진열대 뒤로 가서 무엇인가를 뒤적거려 꺼내 놓는다. 그곳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부품을 꺼내 디카에 꼽고, 케이플을 노트북에 연결하려면 이것이 필요하다며 이것이 나에게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것은 한국에 놓고 왔다고 했다. 그는, 금방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그는, 그 플라스틱 물건은 그 가게에서 팔지 않는다고 말을 한다. 나는 또 혼자 둘러보고 있는데 그가 나를 부르더니 더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한다. 나는 혹시 메모리 카드가 있느냐고 묻자, 1,2, 4 기가짜리가 있다며 어느 것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가격에 따라 다르다는 말을 하기 위해, "It depends on..." 까지 말을 했는데, 갑자기 price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1GB는 4만 5천원, 2GB는 6만 5천원, 4GB는 12만원(물론 $로 얘기했다)이라고 하며, 저 쪽의 프런트에 있는 남자를 부르더니 리에게 메모리 카드를 보여 주라고 한다. 나는 별로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이 사태를 어떻게 하나 하며 가서 보려고 서 있는데, 왠 여자 두 명이 노트북을 통째로 들고 와서는 프런트의 직원에게 뭐라고 묻는다. 직원은 바이러스 어쩌구 얘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틈을 타 소니 매장을 빠져 나왔다.

  Polo Ralph Rauren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글자가 옷 앞에 대문짝 만하게 써있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냥, 다시 Nautica로 가서 옷을 골랐다. 마음에 드는 잠바가 하나 있기는 했는데 색이 너무 칙칙해 결국은 사지 않았다. 나는 잠바의 안주머니를 꽤 중시하는데, 대부분의 것이 한쪽에만 안주머니가 있었다. 왜 두 쪽에 안주머니가 있는 잠바는 드문지 잘 모르겠다. 왼손을 잘 쓰지 않기 때문인가?... 어쩌면 내가 보통 사람보다는 왼손을 자주 쓰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 안주머니가 있는 겉옷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옷을 고르고 있는데, 죤이 아버지와 옷을 사러 나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죤, 이 옷은 뒤집어서도 입을 수 있는 옷이네. 너 어떤 사이즈 입니?" "아, 그래요? 저는 중간 사이즈 입어요." "너는 어느 쪽 옷이 마음에 드니? (어느 쪽으로 뒤집어 입는 게)"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아들이 아버지와 옷을 사러 나온 것을 느끼는 순간, 그냥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을 비로소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 뒤,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이국적이지 않고, 그냥 너무나 일상적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심코 시계를 본 순간, 앗, 벌써 3시 20분이다. 나는 티 4개를 Nautica에서 사고 CK에는 다시 들를 시간도 없이 버스타는 곳으로 가 보았다. 버스는 이미 와 있었고, 승객 몇 명은 이미 타 있었다.

  목이 말랐기 때문에 food court로 가서, 외국에서는 음료수 하나도 한국에 없는 것을 사먹어 본다는 여행 방식에 따라, 맛이 검증되지 않은 음료수를 사서 버스에 탔다. 아팠는지도 몰랐으나 자리에 앉게 되어 결국은 아프다는 것을 알아버린 다리를 달래며 시계를 보니, 3시 45분이 다 되어 간다. C에게 전화를 하니 B와 만나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조금 기다리자 D가 더웠는지 잠바를 벗은채 한 손에는 잔뜩 옷을 들고 버스 옆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후 C와 B가 왔는데, A 누나는 보이질 않았다. A 누나가 갖고 있는 B 핸드폰으로 했는데 안 받는다.

  4시가 다 되어 버스 운전수가 표검사를 끝내고 차에 시동을 걸고 차 문을 닫는다. 담배를 피고 오는 C에게 A 누나가 안 왔다는 말을 하자, C가 기사 아저씨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을 하고 밖으로 나간다. 나도 같이 가서 A 누나가 있다는, Max 어쩌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쉽게 찾을 수 없었고, 다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알만한 브랜드를 말해달라 하자, ESCADA 앞에 있다고 한다. 나는 ESCADA 매장이 어디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뛰어 가자, 저 쪽에서 A 누나가 왠 동양 아저씨에게 길을 묻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른 가서 A 누나 짐을 갖고 버스로 달려 와 겨우겨우 버스를 타게 되었다.

  막히는듯 싶더니 버스는 금새 뉴욕city에 접어 들었고, 곧이어 pen station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내려, 거센 바람을 맞아가며 호텔로 돌아 와, 각자 자기가 산 것들과,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고, The phantom of the opera 표를 끊기 위해 C와 나는 우선 먼저 Majestic 극장으로 갔다. 그런데 그 때부터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나는 결국 호텔로 들어와 1시간을 잤고, 나머지 일행은 BBQ에서 저녁을 먹었다.

  7시 30분에 일어나, 창가에서 소리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거센 바람과 그것이 몰고 온 추위를 대비하기 위하여 오늘 산 두꺼운 검은 Jean과 긴팔을 하나 더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극장 앞에는 이미 수백명이 줄을 서 있었고, 그 한 옆 좀 떨어진 곳에 C와 B가 서 있었다. 내가 거의 다 다가갔을즈음 C가 전화기를 귀에 대며 뒤를 돌아보다 나를 보고 전화기를 닫아 주머니에 넣는다. 입구가 여럿 있었기 때문에 사람은 의외로 빨리 줄어들었고, 우리도 쉽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는 매우 앞자리였기 때문에 사람들 얼굴을 모두 분간할 수 있었다. 특히 요즘에는 눈이 매우 나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잘 보이는, 꽤 좋은 자리였다, H9 였으니까.

  오페라의 유령은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공연을 보니 어디선가 들어 본듯한 내용이다. 결국 좀 전, 공연을 보기 전에 C에게 했던 말이 대략 맞기는 했는데, 좀 불확실한 것이 너무 많기는 했다. 전반부에서는 그래도 잘 들려서 이해가 잘 되었는데, 후반부에서는 배우들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대충 이야기 흐름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내용을 짜 맞추어 갈 수는 있을 정도였다.

  신기한 것은 무대장치였다. 어떻게 그 작은 무대에 그토록 다양한 배경을 사실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용도 어느 정도 괜찮았다. 다 알아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연극 중간중간에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나왔을 때, 나는 저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눈에 거의 띄지도 않는 배역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초등학교 국어 책인가에 나왔던 '현이의 연극'이란 글이 생각난다. 작은 풀 역할을 맡은 현이가 엄마에게 자기가 출연하는 연극을 꼭 와서 보라고 했다는 내용. 작은 역할도 열심히 하는 딸이 대견스러웠다는 내용. 그러면서 나도 내 일에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