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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여행/뉴욕(2007)-학회

첫째 날 자유의 여신상, 브룩클린 다리

by adnoctum 2010. 7. 19.


2007년 3월 4일 일요일 - 첫째 날 자유의 여신상, 브룩클린 다리


2007년 03월 04일 일요일(한국 시간: 2007년 03월 05일 월요일)


  시차 때문인지 아침 7시 정도에 잠이 깨었다. 밖의 날씨가 꽤 추웠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 겹의 커튼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에서 찬바람이 들어 왔기 때문에 방안의 공기는 쌀쌀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꽤 얇은 이불인데도 이불을 덮으면 매우 따뜻했다. A 누나와 B는 아직도 자고 있었고, 비행기에서도 꽤 많이 자고, 호텔에 와서도 7시간 정도를 잔 나는, 더이상 잠을 잘 수 없어서 한 십 여분 뒤척거리며 밖에서 이따금씩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 결국은 일어나 커튼을 활짝 걷었다.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순식간에 밀려 들어 오자 두 사람은 잠에서 깨었다. 우리는 씻는데 누가 더 오래 걸리는지 확인을 해 본 후, 가장 빨리 씻는 사람부터 씻기로 하고, B부터 씻었다. 그 후 내가 씻은 후, B와 나는 먼저 로비로 나가서 A 누나를 기다렸다. 얼마 후 세 명이 모두 모여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D와 C를 만나기로 한 시간이 10시 30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을 간단히 먹기로 하고, 호텔 바로 앞에 있는 food court로 갔다. 그곳에는 subway, KFC, Pizza Hut 등이 모두 한 매장에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한국에 없는 매장으로 가서, 남들이 주문을 하는 것과 메뉴를 보아 가며 어떻게 질문하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주문을 할 것인지를 결정했다. 제일 먼저 A 누나가 치즈 크림이 든 양파 베이글과 커피를 시켰고, 나와 B는 감자와 햄, 계란, 식빵 두 조각이 있는 그 무엇을 주문했다. 나는 차를, B는 커피를 시켰다. 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서 맛이 좀 이상했다. 내가 주문한 차는, 내가 생각했던, lipton ice tea 맛이 나는 것이 아닌, 내가 아예 안 사먹는, 홍차(?) 맛이 났다. 그러나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헐레벌떡 다 먹어치웠다. 계속 탄산 음료가 먹고 싶었던 나는 food court를 나오면서 sprite를 하나 샀다.

  아침을 다 먹고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C가 전화를 걸어 오페라의 유령을 예약할 것이니까, 우리 셋 중 누가 볼 것인지를 물었다. 마제스틱 극장이 호텔 뒤에 있었기 때문에 나와 B는 오페라를 보기로 했다. 그 후 자리 문제로 C와 몇 번의 통화를 끝낸 후, 남은 사이다를 B의 가방 옆에 끼우고, 두 그룹이 만나기 위해 전철역으로 갔다.

  맨 처음에는 ?? 역으로 들어 갔다가, C와 D가 타고 올 전철 노선도를 본 후, 그 쪽으로 가서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전철역을 나와 그 쪽으로 이동을 하였다. 개찰구에서 만나기로 하였지만, 정확이 어느 쪽에서 만날 것인지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C에게 몇 번 전화를 하였는데, 전철 안이라서 그랬는지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우리는 일단 계속 기다리기로 하고 전철 역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마 후 저 쪽에서 C와 D가 보였다. B와 나는 One Day pass를 7$을 내고 끊은 후 ?? 역으로 출발하였다.

  나는 원래 Central Park쪽을 볼 생각이었는데 오늘 Woodberry outlet으로 간다기에 따라온 것이었는데, 생각과는 달리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간다기에, 나는 전철을 기다리며 과연 내가 사람들과 같이 다닐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는 것보다는 혼자 목적지를 정하고 혼자 찾아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그리고 그것이 더 익숙한 나로서는 굳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닐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날씨도 추워 Central park에 사람이 많을 것 같지도 않았고, 나만 혼자 떨어져 다니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 그냥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니기로 하였다.

  내가 결정을 다 내렸을즈음 전철이 도착하였다. 전철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전철에 몸을 맏기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전철에는 아무도 없었고, 어떤 사람이 들어 와 뭐라고 한다. 나는 잘 못들었는데, C가 알았다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 사람은 전철 안에 있는 우리들을 보며 다시, 어디어디로 갈 것이면 앞 칸으로 옮겨 타라고 한다. 그 때에서야 나는, 일본에서 나라 공원을 갈 때 겪었던 것과 같은 상황, 그러니까 열차 뒤쪽은 운행을 안 하고 앞쪽만 운행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앞 칸으로 옮겨 탄 것임을 알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이미 뛰고 있었다. 우리도 뛰어 열차의 제일 마지막 칸에 탔다. 우리는 또 이것으로 약간의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열차가 서고 모두 내렸다. 이번 역이 마지막 역이라고 누군가가 말을 한다. 우리는 내렸고, C는 원래 여기서 내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여기도 괜찮다고 한다. 사람이 모두 내려 비어 있는 열차는, 오래된 탓인지, 구부러진 철로를 가면서 한 10여초간 매우 큰 소리를 낸다. 앞에 있는 우리 일행은 귀를 막고 열차를 쳐다 본다. D는, 열차가 갈 수 있는 것 같지 않았기에 저런 소리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는듯이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밖으로 나가자 매우 세찬 바람이 분다. 날이 추운 것을, 뉴욕에 와서 알게 된 나는, 나올 때 4개의 옷과, 입으나 마나한 봄잠바지만 그래도 그것 하나를 더 입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추위를 느꼈다. 낮은 온도보다도 세찬 바람 때문에 더 춥게 느껴졌다. 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들도 힘겨워 보였다. 우리 앞에 나온 사람들은 저 앞 어디론가 모두 흩어졌지만, 결국 어느 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고, 우리도 그 쪽으로 가 보았다.



  바닷가가 보였고, 높이 5미터, 폭 3미터 정도 되는 비가 몇 개 있었고, 저 멀리서 유람선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자유의 여신상이 보였다. 우리는 저마다 가져 온 사진기를 꺼내 각자가 찍고 싶은 풍경을 찍고, 자기를 찍고, 서로를 찍어 주었다. 저 멀리 보이는 한 마리의 새 동상을 보고 내가 B에게 너네 학교 상징물이 있다고 하고, 그 쪽으로 갔다. 독수리 앞에서 몇 개의 사진을 찍고 우리는 매우 추운 이 날씨에 과연 유람선을 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잠깐 의논했다. 유람선의 밖에 있는 좌석을 본 후, 혹시 표에 의해 자리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저 밖에 앉아야 할 수 있으므로 안 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다, 그럴 것 같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갔다.

  입구를 찾아 들어가고 있는데, 표를 갖고 있는 사람만 들어 갈 수 있다는 표지가 보였다. 나는 오면서 지나쳐 본, 표를 판다는 표지판이 유람선을 타기 위한 표를 말하는 것임을 그때에서야 알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내가 앞서 그 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원형으로 된, 지붕에 없는 벽돌 모양의 구조물이었는데, 겉에는 Clinton 기념비라고 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름과 모양 말고는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 안으로 들어 가자, 잠깐 해가 비추었고, 바람이 적게 불어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느 표를 끊을까 하여 매표소로 가 안내판을 보니, 우리가 끊을 것은 Passage only 임을 알고, 각자 흩어져 뭔가를 잠깐 보고, 뉴욕 곳곳의 안내 팜플렛을 모아 놓은 곳 앞에서 이것저것 뒤적이다, 우리가 결국 내일 가기로 한 woodberry outlet에 관한 광고를 보고 그것에 대해 잠깐 말을 하고, 11.5$를 내고 유람선 표를 끊었다. 표는 두 장이었는데, 나는 하나는 그냥 기념종이이려니 하고, 보기에도 표같이 보이는 것은 잠바의 겉 주머니에 넣고 `그것은 안 주머니에 넣었다. 밖으로 나오면서 C는 hotdog라고 외치는 아저씨에게로 가서 세 개의 원을 붙여 놓고 그 위에 무엇인가를 발라 놓은 빵을 사 먹는다. 우리 모두 조금씩 떼어 먹고 유람선을 타는 입구로 향하였다.

  우리가 들어 가려 하자, 표를 받는 아저씨는 C에게 먹는 것은 가방 속에 넣고 들어 오라고 한다. C는 저 멀리 가서 그것을 다 먹었고, 그 동안 우리는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B의 가방 옆에 있는, 내가 먹다 남긴 사이다도 다 먹고 들어가기로 하고 한 모금씩 마시고 빈 통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안으로 들어 갔다. 유람선을 타는데도 모든 소지품 검사를 하였다. 검사를 마친 우리는 유람선 안쪽으로 들어 갔다. 그 때 옆에 한국말을 하며 지나가는 몇 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보였다.

  유람선 안으로 들어 가자 군데군데 빈 자리가 보였다. 우리는 계속 층을 올라가 2층으로 자리를 잡았고, 적당히 빈 자리를 찾아 각자 앉았다. 얼마 후 유람선이 출발을 하였고, 나와 D는 자리에서 일어 나 유람선의 창가 쪽으로 갔다. 마침 창가에 있는 온풍기가 켜져 있어서 허벅지를 따뜻하게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소지품 검사를 하였고, 공항에서부터 계속 한, 겉 옷과 허리띠 등을 플라스틱 상자 안에 넣은 후 금속탐지기를 지나가는 일을 하였다. 우리 앞에 약간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검사를 마치고 도착한 곳은 박물관이었다. 실물 크기의 자유의 여신상 얼굴과 횃불, 그 외의 각 부위가 곳곳에 있었다. 또한 그곳에는 자유의 여신상 건축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었다. 초기의 몇 가지 모델 중 지금의 것이 선택된 것과, 60명의 기술자들이 건축에 참여했다는 내용, 동이 공기중의 산소와 화학 결합을 하여 자유의 여신상이 녹색으로 보인다는 내용 등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이곳 저곳에 쓰여 있었다. C와 나는 많은 내용을 읽으며, 이게 아무렇게나 만들어 진 것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하는 대화를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의 많은 개인 기부자들이 돈을 내어 자유의 여신상이 만들어 진 것 등을 보면서, 이거 미국에서 자유의 여신상으로 벌어 들이는 관광 수입 중 일부는 프랑스에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하였다. C와 내가 글을 천천히 읽으면서 나가는 사이 나머지 사람들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다. 박물관이 끝나고 자유의 여신상 안쪽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 앞에서 기다리던 D와 C,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사람은 여기 줄을 서고 계단으로 올라갈 사람은 언제라도 이쪽으로 가라는 직원의 말을 듣고, 125개의 계단밖에 안 되니까 그냥 걸어 올라가기로 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쯤 오르자 계단을 내려 가는 B와 A 누나가 보였다. 서로 인사를 하고 우리는 계속 올라 갔다. 제일 위쪽으로 올라가자, 자유의 여신상 바로 밑에 있는 돌탑(?)으로 나가는 문이 나왔다. 밖으로 나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람이 엄청 불고 있었다. 옆을 돌아 조금 가서 위를 올려다보자 자유의 여신상이 바로 머리 위에 있었다. 폭이 1M 정도 되는 길을 따라 몇 걸음을 가다, 맨하튼이 보이는 곳에서, 거대 빌딩으로 이루어진 도시를 보며 몇 마디를 나누고, 나는 너무 추워 다시 안으로 들어 갔고, C와 D는 몇 장의 사진을 더 찍고 왔다.

  나는 먼저 계단을 따라 내려 왔다. 다 내려왔을 때, 세찬 바람 때문에 문을 열기가 매우 힘들었다. 내 뒤에 있는 외국 어린 아이들을 위해 내가 문을 잡아 주자, 연이어 나오는 3, 4명의 아이들과 그 뒤에 오는, 아이들의 부모로 보이는 듯한 두 명의 어른이 모두 Thank you라 한다. 너무 추웠기에 나는 재빨리 내려가 A 누나와 B를 찾아 둘러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이 추운 날씨에 분명 따뜻한 기념품 판매점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고개를 몇 번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뭔가를 만지작 거리며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나는 그곳으로 가 몇 마디 하고 나대로 기념품들을 둘러 보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돌아 다녔다. 한쪽 끝으로 갔을 때 쯔음 C가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우리는 한 10분 정도 기념품들을 둘러 보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가방을 꺼내고 있을 B와 D를 찾아 사물함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 일행 옆에 직원이 뭔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냐 묻자, D는, 사물함을 관리하는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내가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려 하자 D가, 이곳에서는 형이 안 봐도 된다며 나를 말린다. 나는 오는 비행기에서도 내가 어쩌다 개인 screen을 껐다는 이야기와, 그것에 연결된 컴퓨터는 linux임을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사이 직원이 가방을 꺼내 왔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눈발이 날린다. 눈은 이내 그쳤고, 우리는 다시 유람선을 타러 갔다. 가는 도중, 세찬 바람 때문에 공중의 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는 갈매기를 보았다. 누군가가 저 녀석 개인기를 부린다고 하며 지나쳤고, 앞에서 사람들이,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은 유람선을 타기 위해 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에 우리는 약간 서두르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유람선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유람선을 타기 전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고,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이후에도 뛰어 와 유람선을 타는 몇 명의 사람들을 더 볼 수 있었다. 우리는 Ellis island에 내릴 것인가를 의논했는데, 시간이 이미 오후 3시를 향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기에 Ellis island에는 내리지 않고 곧바로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Ellis island에서 사람이 꽤 내릴 것을 기대했으나, 의외로 많은 사람이 내리지 않아 우리 중 몇 명은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C는 여행 책을 꺼내었는데, 내가 가져간 것과 같은 책이었다. C는,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게 같았내요, 한다. 엘리스 섬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내가 히치라는 영화에서 윌 스미스가 여자 주인공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장면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 영화를 본 사람이 없어 그냥 지나갔다.

  유람선이 출발점으로 돌아 왔고, 우리는 점심을 먹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기 시작했다. 왠지 음식점이 없을 것 같은, 고층 빌딩 숲 속으로 들어 가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 TGI Friday가 보였는데, 한국에서와는 (달리) 안쪽이 좀 허름해 보였다. 한국에서는 간단히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TGI가 이곳에서는 맥도날드보다 조금 나은 것 같았다. 조금 더 걷다 왠지 Triniti 교회 같은 건물을 지나 저 쪽에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 같은 곳이 보여 약간 주저하다 모두 그 곳으로 가길 동의하고 가게 앞으로 갔는데, 앉는 자리가 없어 결국 다른 곳을 알아 보기로 했다. 바로 앞 사거리에 서 있는데 저 쪽에서, 120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는 간판을 보고 그 쪽으로 갔다.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직원으로 보이는듯한 사람이 문을 열고 우리더러 뭐라고 한다. 우리는 그냥 들어 가기로 하고, 뷔페식으로 된 곳에서 한 접시에 3가지씩 고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곳은 양을 많이 주니 5명이 4접시를 시키면 될 것이라 하고, 이름과 맛을 알 수 없는 여러 음식을 3개씩 골라 4접시를 주문하고 마운틴 듀와 코카콜라 light를 사서 자리를 잡고 먹기 시작했다.

  고기는 닭고기에 여러 종류의 소스를 얹은 것이었는데, 메콤한 소스를 올려 놓은 것이 특히 나는 맛이 있었다. 어느 정도 음식이 배에 들어 가자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먹기 시작했다. 특히 B는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어 매우 행복하다 했고, 반면 A 누나는 벌써부터 밥이 그리워진다고 했다. 식신이 그러면 어쩌냐는 둥, 전공종목이 아니어서 B에게 1위 자리를 내어 준 것이라는 둥 얘기를 했다. 김치볶음밥(이것은 어디를 가나 내 기본 메뉴이다, 만약 있다면)같은 것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서양식으로 1주일 이상을 버틸 수 있는 내 식성 또한 희안하다는 얘기도 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이 날 무렵 어디로 갈 것인지를 결정했다. 우선 Triniti 교회를 가본 후, 브룩클린 다리로 가기로 하고 식당을 나왔다.

  Triniti 교회는 4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겉에서만 보고, Wall Street을 지나 브룩클린 다리로 향했다. 도중에 Sophore(?) 가게를 발견한 A 누나는, 이 곳이 싼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한 번 들어갔다 가자고 하여 우리 모두 들어가 보았다. 원채 화장품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나는, 그리고 다른 남자 아이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로 남자 향수 쪽에서 이런 저런 향수의 냄새를 맡으면서 있었고, 그 사이 A 누나는 여기 저기 돌아 다닌다. 우리가 조금 일찍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 조금있다 A 누나가 나온다. 조금 걷자 신발 가게가 길 건너편에 있는 것이 보인다. 저 신발 가게 또한 어딘가에서 보았다며 그곳에 들렀다 갈 것을 말했기에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이런 저런 신발을 보았는데,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내 신발을 내가 사 본 일이 별로 없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신발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이 매장 저 매장을 각자 돌아 본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은 또 어떻게어떻게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되어 가게를 나왔다. 밖은 이미 꽤 어두워진 상태였다. 조금 걸어 브룩클린 다리 앞에 다다랐다. 하루 종일 걸어 피곤하기도 하고 바람도 매우 세차게 불었기 때문에 브룩클린 다리를 다 건너지 말고 중간에 오자는 말을 하고 다리로 올라 섰다.

  다리는 어떤 상징성을 갖고 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다리에서 보는 야경의 아름다움이, 영화로 하여금 이 다리를 자주 등장시키게 하여, 그것이 이 다리가 이처럼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것일까? 다리 곳곳에는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보였다,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 얘기하면서 보조를 마추어 걷다, 나는 조금 속력을 내어 더 빨리 걸어 저 멀리 앞서 나갔다. 다리 중간에서 뒤돌아 간다고 했기에 얼른 앞으로 갔다 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멋진 야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중간 중간 뒤돌아 서서 맨하튼을 보았고, 이미 사라져버린 해를 뒤로 하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 쪽을 보았다. 일본에 가서도, 그리고 서울에서도 한강을 지날 때면 항상, 야경을 보며 감상에 젖곤 하던 버릇이 있을만큼 야경을 좋아했기 때문에, 여러 광경을 보고 사진이나마 찍어야 한다 -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멈추고 바로 그 순간에 계속 존재하고 싶었지마... 기다리고 있을 일행 생각에, 브룩클린 땅이 보일 즈음, 얼른 맨하튼 쪽으로 되돌아 갔다. 우리는 다시 New York City 시청쪽으로 와서, 어디 따뜻한 곳에서 커피나 한 잔 하면서 몸을 좀 녹이자고 했다. 저 앞에 스타벅스가 보였기에 모두 그 곳으로 들어가는 것에 동의했다.

  스타벅스에 들어가자, 노트북을 열고 무엇인가를 하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그냥 얘기하는 사람들 등이 보였다. 매장은 작았고, 한국처럼 시끌벅적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것을 주문한 후, 5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없기에 한 쪽 끝에서 두 개의 테이블을 붙여 자리를 마련하여 앉은 후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카라멜 모카를 시켰는데 5$ 15cent 정도가 나온 것 같았다. 한국에 비해 특별히 싸지는 않았다. 특별한 주제 없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내일 갈 woodberry outlet에 shuttle bus가 있는 것을 상기하고, C가 전화를 걸어 시간과 장소를 물어 본 후, 사람들에게 갈 것인지를 확인한 다음 예약을 하였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9시가 조금 넘어서 밖으로 나왔다. Union square에 있는 서점에 갈까도 했으나, 저녁을 아직 안 먹고 기다리고 있을 C와 D의 친구와, 피곤함 때문에, 우리는 모두 숙소로 들어 가기로 했다. 전철을 탈까 버스를 탈까 하다, 전철역이 바로 옆에 보였기에 전철역으로 들어 갔다.

  들어가서 ABC line인 빨간색 선을 따라 갔다. 그런데, 들어간 곳으로 다시 나오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더니, 그곳(무슨 역?)에서는 ABC line이 주말에는 서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들어가려고 했으나, One day pass나 7-day pass는 들어간 후 15분 동안은 사용할 수 없었기에 Just used라는 말이 나오면서 개찰구가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15분을 보내기로 하고 조금 있는데,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여 전철 노선도를 보고 다른 역을 찾아 가면 15분이 되기 전에도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어떤역(?)으로 가기 위해 밖을 나왔는데, 우리가 있던 역이 바로 그 역이었다. 같은 역을 왜 지도상에서는 다른 곳에 표시해 놓았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대고 있었다. C가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을즈음이 우리가 개찰구 안으로 들어간 시간임을 생각하여,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를 계산한 후, 5분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고 밖에서 조금 서 있다 들어 갔다.

  내가 제일 먼저 카드를 개찰구에 그었는데, 또 Just used란 표시가 나온다. C와 D, A 누나는, 그러나 잘 들어갔다. 내가 15분쯤 전에 정말로 못 들어가는 것인지 해보기 위해 그었기 때문에, 나는 1,2분 늦게 다시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해가 되었으나, B까지 안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약간 고민을 하다, 그냥 역의 직원에게 가서, 우리가 역을 잘못 알아 밖으로 나와서 15분을 더 기다려야 된다고까지만 말을 하자 왼쪽에 열린 문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라고 한다. 우리는 그냥 처음부터 이랬으면 쉬웠을 것이라며 아쉬워 하고, 전철을 탔다.

  한 정거장이 지났을까, 왠 흑인 한 명이 들어 와 오른손으로 허벅지를, 왼손에 든 동전으로는 지하철의 철로 된 손잡이를, 리듬에 맞추어 가며 치며 노래를 한다. 난 혹시나 돈달라는 거지인가 속으로 생각하며 듣고 있었는데, 노래가 끝나자 뉴욕은 좋은 도시라느니 하는, 뉴욕 홍보성 이야기를 하고,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일년이 되라는 말을 하고 인사를 하고 다른 칸으로 이동한다. C는 재주많은 사람이 참 많다 하고, 나와 D는 저렇게 세게 허벅지를 치면 아플 것이라는 둥, 허벅지를 쳐서 저렇게 큰 소리가 나는줄은 몰랐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였다. 42번가에 도착하였고, C와 D는 전철을 갈아 타고, 우리 셋은 숙소인 45번가로 오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뒤를 돌자 바로 숙소가 있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 가면 배가 고플 것임을 감안하여 매운 치킨 샌드위치를 시켰고, B는 시원한 음료수가 먹고 싶어 과일 주스와 폴란드 온천수라고 되어 있는 물을 샀다. 숙소에 들어 와, A 누나는 어제 못 먹은 라면을 어떻게든 먹어야 겠다며, 어제 직원이 알려준대로 뜨거운 물을 3층에서 얻어 올 수 있는지 알아 보겠다며 나간다. 얼마 후 뜨거운 물 2컵을 갖고 온다. 그냥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나와 왜 그러냐고 하기에 먹을 수 있는 뜨거운 물이 필요하다고 하니 2컵을 갖다 주었다고 한다. A 누나는 라면을 먹고, B는 피곤하다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무선 인터넷 연결을 또 몇 번 시도해 보다 안 되어, 그냥 오늘 있었던 일을 쓰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여기 시간으로 일요일 오후 11시 40분이다. 한국 시간으로는 월요일 오후 1시 40분이다. 사람들은 모두 시차 적응에 성공하였다. 물론 나도. 그러나 나는 아직 안 졸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라도 잠들 수 있다. 오늘 낮에도, 일상적인 나른함에 의한 졸음 이외에는 졸음을 못 느꼈다. 아니, 오히려 시차 적응이 잘 되었다는 생각조차 못 하였다. 한국에서 평상시에 잠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24시간 중 아무 시간이나 가능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이다. 나는 그래서 농담삼아 포항갈 때는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고 말을 하곤 한다. 학회를 들으면서 잠을 안 자기 위해 그 전날 많이 자고 학회를 가도 꼭 도중에 비틀어지는 바람에 학회를 듣는 상당 시간을 잠을 잔 적이 두 번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주위가 어떻든 잠들 수 있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