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후원하기

by adnoctum 2013. 1. 14.




   유니세프의 후원을 장려하기 위한 링크를 달아 놓는다. 이로 인해 단 한 명이라도 후원을 하게 된다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단 한 명이라도 후원에 대해 고려를 하게 되어 언젠가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도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이 블로그의 글로 인해 도움을 받았다면, 나의 그 작은 도움이 후원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조금이나마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후원은 정기후원이 중요하다고 한다. 후원금이 매달 바뀌면 그것을 기반으로 한 일을 계획하기 어려운 반면 정기후원은 매달 들어 오는 후원금의 액수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게 해주어 그것을 기반으로 한 정책을 세우기 더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고려하여 만약 하고자 한다면 비록 적더라도 정기후원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국내만 하더라도 많은 단체가 있지만 세계적 단위에서 움직이는 단체를 일단 이 곳에 둔다. 기본적으로는 국내의 작은 후원단체의 관리감독에 대한 의문이 있기도 하려니와, 난 어딘가로 집중되어 진행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유니세프 이외의 후원할 곳을 알려 주면 계속 추가할 것이다.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큰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런저런 예를 들어 지지되곤 한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은 그냥 작은 행동으로 남아도 되고, 그것이 무슨 거대한 결과의 시발점이 되지 않아도 된다. 단지, 그 작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조금 더 세상이 나아지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완벽함, 완전함을 단박에 이끌어 낼 수 없다 하더라도 없는 것보다, 안 하는 것보다 나으면 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작은 일들이 모이고 모여 궁극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로 세상은 그만큼 좋아진 것이니까. 현명한 농부는 어제 심은 씨앗이 잘 자라고 있는지 보기 위해 오늘 땅을 파 그 씨앗을 살펴 보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오늘 한 이 작은 행동이 세상을 더 좋아지게 했는지 내일 확인할 필요는 없다. 단지, 그렇게 세상은 조금 더 좋아졌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난 그러한 확신이 있다. 




음... 아래의 개인적인 생각이 너무나도 암울(?)하여 혹여나 부작용이 나지 않을까 하여 이 단락을 추가한다. 



   자, 이제, 후원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을 말해 본다. 난 후원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장려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부정적 시각 때문에 후원을 하지 않는 것이 나름대로의 부정적 시각 그 자체보다 더 모순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일단, 


국내에도 배곯는 아이들이 많은데 왜 외국까지 신경쓰느냐?


하는 말. 그것은, 내가 만약 영어 이외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고 할 때, 영어를 완벽히 익힌 다음에 독일어든 프랑스어를 공부하겠다고 마음 먹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한 곳, 한 분야의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후에 다른 곳, 다른 분야를 하겠다는 생각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느 곳이든 어느 문제가 완벽히 해결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고려해 본다면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수학을 완벽히 공부한 다음 영어를 하지 않듯이, 국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국제 문제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치관의 차이이겠지만, 따라서, 외국을 후원하거나 국내를 후원하거나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정이 나아지면 후원해야지,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하루에 쓰는 돈이 상당한데, 후원이라고 해 봤자 하루에 천원씩만 해도 되는 것이다. 커피 한 잔 덜 마시기만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커다란 공명심이나 희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 후원이라는 것이다. 



이제... 후원에 대한 지극히 부정적인 입장. 난 후원에 대해 그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자립심을 키워 주는 것이 보다 지속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후원은 다소 일시적인 속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후원보다는 제도의 마련/정비 등에 더 관심이 많다. 


그리고, 후원이 갖는 두 가지 속성, 희생과 공명심에 대해서도 지극히 부정적인 시각이다. 자신의 배가 고프면 옆을 돌 볼 여유가 없다. 괜히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희생'이라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그래서, 자신의 없는 삶의 일부를 쪼개서 남을 돕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삶이 어려운 사람은 굳이 후원을 할 필요가 없고, 그것이 결코 비난받을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남을 돕는다는 마음이 1ng 이라도 든다면 그것 자체도 별로 좋게 생각지 않는다. 도움 받는 입장에서는 큰 것일지 몰라도 도움 주는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행위에 대해 굳이 공치사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알게 모르게 자신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감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면서 매달 통장에서 저절로 빠져 나가는 하루 몇 천원밖에 안되는 그 돈을 빌미로 그렇게 큰 공명심을 갖는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설령 좋은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생각조차 없어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선한 행위가 아닐까?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행위는 심지어 후원받는 사람들이 그 후원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까지 미치는 경우도 있다. 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봉사를 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봉사를, 그 봉사를 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는 암묵적 가정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이며, 때때로는 자신들의 편의를 그들에게 주는 도움보다 더 우선시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봉사를 할 때의 편리함을 좀 더 우선시 하는 것 같은 느낌. 



그렇다면, 왜 저렇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후원을 장려할까? 그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만약 내가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조그만 후원조차 하지 않는다면 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조그만 후원조차 하지 않는다면 현실에 대해 그렇게도 불만을 이야기하고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내가 위에서 언급했던 것들보다 이 사실이 더 모순으로 다가 왔다. 이래저래 이유를 갖다 대지만 어쨌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래서 위와 같은 생각을 견지하면서도 실제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으로 후원을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