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과학적 방법론의 가치 - 직관으로 불가능할 때
원본 작성일: 2007-09-08 23:37
이 논문에 의하면, 비상구 앞에 기둥을 세워 두면 시간 당 빠져 나갈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증가한다고 한다. 이 글에서도 밝혔듯이, 누가 비상구 앞에 기둥을 세워 두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기둥이 있으면 기둥 앞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두 갈래로 나뉘어지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1
사람이 10~20 명 정도 된다면 다음과 같은 놀이를 한번 해볼 수 있다. 각자가 속으로 한 명을 찍고, 그를 자신의 '자식'으로 생각을 한다. 속으로 또 다른 한 명을 찍고, 이번에는 그를 자신의 자식을 공격하는 '공격자'로 간주한다. '자식'을 공격자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그 둘 사이에 내가 위치해야 한다. 시작을 하면, 각자가 자식을 공격자로부터 지키기 위해 그 둘 사이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 이제 무작위로 서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갑자기 사람들이 한곳으로 몰려들게 된다.
하늘을 나는 철새 무리는 V자 형태로 난다. 이유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각자 시야를 가리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새들이 똑똑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참고: swarm behavior)
어떤 새는 절벽에 둥지를 튼다. 알을 몰래 먹는 포식자들로부터 안전하게 새끼를 기르기 위해서이다. 어미새는 특정한 나무를 뜯어 새끼들이 있는 둥지로 가져 오곤 하는데, 먹지도 않고, 둥지의 구조에도 도움이 안되는 나뭇가지를 물어다 놓는 이유는, 그 나무에서 나오는 특정한 화학 물질이 특정한 병균에 대한 항생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읽었던 것인지, 동물의 왕국에서 본 것인지 기억이...)
모든 유리수에서는 불연속이고, 모든 무리수에서는 연속인 함수를 직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함수는 정의 가능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서로 다른 그 어느 두 실수가 주어져도 그 두 수 사이에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유리수가 존재하게 된다(Archimedean property)
간단히 말해 미분 가능하면 연속이다. 물론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간단히 y = |x| 같은 함수. 그런데, 모든 점에서 연속인데, 모든 점에서 미분 불가능한 함수도 가능하다.
과학 이론은, 철저한 검증을 거친 것만이 살아 남게 된다. 철저한 검증. 오직 그것만이 과학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 이론이 얼마든지 있다. 결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러나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은 언제나 문제가 될 수 있다. 그것들은 언제나 이미 얻어진 결론과 그에 대한 해석을 바꿀 수 있다. 갖고 있는 데이터에 대한 해석이 옳다는 것은, 같은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 다른 모든 가능성을 검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 후에나 가능하다(물론, 현실에선 그럴 수 없지만, 최대한 다른 가능성들을 고려하려 한다). 쉬운 예로, 18C 들어 유럽의 평균 수명이 급격히 증가했고, 같은 시기에 담배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담배가 평균 수명 연장에 기여했을까? 평균 수명 연장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가능성을 검사해보지 않는다면 결론을 내기 힘들 것이다. (단순한 시간 선후 관계를 인과 관계로 착각하는 것: 오비이락같은 것. 영어 단어가 있는데, 갑자기 기억이...) 단순히 직관적으로, 겉에서 보기에 그럴듯 해 보인다고 성급히 결론을 내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행위이다. TV에서 자주 이런 것이 보인다. 당장 생각나는 몇 가지만 나열해 보면,
1. 아이들도 미인을 좋아한다면서, 두 명의 여자를 어린이방에 보내, 누구에게 더 많은 아이들이 가는지 보는 실험.
문제점: 우선 "미인"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또한 아이들의 수 역시 너무 적었다. 또한, 단순히 외양만 본 것인지, 목소리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아이들이 움직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최소한 다음과 같이 했어야 한다. 미인의 정도를, 성인 남녀가 예쁘다고 투표한 정도로 정의를 한 후, 각각의 여자들에게 가는 아이들의 수가 그 수와 상관도가 있다는 정도로 실험을 한다. 만약 아이들이 미인에게 더 많이 간다면, 아이들이 비슷하게 간 두 명의 여자는 비슷한 '미인의 정도'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2. 칡을 많이 넣은 면이 더 쫄깃하다면서 기자가 면발을 손으로 당기는 실험.
문제점: 우선, 기자가 하는 말을 어떻게 시청자가 무조건 믿을 수 있나? 그리고, 기자는 '칡을 넣은 것이 더 쫄깃하겠지.'라는 생각을 이미 갖고 있고, 어느 것이 칡을 더 많이 넣은 것인지 알기 때문에, 기자의 심리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쫄깃한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계로 측정을 해야 했다(인장강도라고 하나...) 이와 비슷한 경우이나,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개발되지 않은 경우는 다음과 같이 한다. 인장강도를 측정하는 기계가 없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어느 것이 칡을 더 많이 넣은 것인지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더 쫄깃한 것을 고르라고 한 후, 결과가 칡이 들어간 정도와 상관도가 있는지 보면 된다. 이것이 blind-test 이다.
3. 차가 막힐 때 차라리 걷는 것이 더 빠르다는 실험.
이건 너무나 말도 안되는 것이라 더이상 할 말이 없다. 당연히 때에 따라 걷는 것이 더 빠를 수도/느릴 수도 있는 것이지... '약간 위험한 방송'이 프로그램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 나오는 대다수 것들이 말도 안되더군. 정말 '위험한' 방송이다.
또한,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직관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때에도, 철저한 수학적 단계 혹은 과학적 방법론은 가치를 발휘한다. 단순히 머릿 속으로 생각했을 때 그럴듯 한 것들이 과연 얼마나 맞는 것일까? 위의 첫 번째 예제에서 약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누가 생각해도, 비상구 앞에 기둥을 세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바로 직관의 한계이다. 2
참고
* 토마스 쿤 - 과학 혁명의 구조
* 칼 포퍼 - 추측과 논박
* 스티브 존슨 - 이머전스(미래와 진화의 열쇠)
* 1000개의 논문이 틀릴 수 있을까? Can 1000 reviews be wrong? Actin, alpha-Catenin, and adherens junctions (링크) ==> 2005년도 Cell 논문이다. 그간 사실이라 믿어왔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문이 Cell에 발표되었다. Cell에 나온 논문들은 정말 예술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 이 논문에서 온 것이었구나, 를 느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정말, Cell에 나온 논문들은, 논문 검사하는 사람들이 편집증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저하다(Nature나 Science도 비슷하긴 하나, Cell이 한 수 위다). 뭐, 그렇긴 해도, 오늘 1996년 Cell 논문을 읽었는데, 지난 10년간의 연구에 의하면 그 논문의 결론이 조금 미흡했고, 논의 부분은 완전히 잘못 집고 있긴 했다. 그것이 과학이다. 그 철저한 Cell에서조차도 나중에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는 것이.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부연을 하자면.
간단한 규칙에 의해 시스템의 특징이 결정이 되는데, 겉에서 보기엔 그것을 알기 어려운 것들이 자연계에는 많이 존재한다. 그럴 때 주로 사람들은 누군가가 전체 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최근 몇 년 전부터 연구되고 있다. (이머전스)
컴퓨터가 많이 쓰이기 이전에는 직접적으로 연구하기 힘들었으나, 요즘은 각각의 개체(사람이든 분자든)를 모델링하여 전체 시스템을 구현하곤 한다. 이에 적합한 방법론이 전산학에 있지 않은가? 바로 객체지향 프로그래밍!(Object-oriented) 참고로 OOP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분자생물학과 전산학을 동시에 전공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OOP는 ABM(Agent-based modeling)이라고도 한다. 이 방법은 꽤나 유용한데, 유체흐름을 모델링할 때, 편미분 대신 이것을 이용하기도 했었고, 효소-기질 반응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이것을 사용해도 결과가 꽤나 잘 나왔다. Michalis-Menten과 잘 맞더군.
- Agent-based modeling: Methods and techniques for simulating human systems [본문으로]
- 나는 여기서 '직관'을, 철저한 과학적/논리적 단계를 거치지 않은 성급한 판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수학이든 과학이든, 최종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직관'이다. 그 직관이 시작점이 되고, 그 후 철저한 논리적/과학적 단계를 거쳐야 한다. 수학자를 그만 두고 시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수학자 왈: 잘됐군. 그 친구는 수학을 하기엔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 (사라 플레너리, 사라와 함께하면 수학이 즐겁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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