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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_비분류/과학_잡다

진화에 대한 오해2

by adnoctum 2010. 6. 10.

   지난 글 진화에 대한 오해에서는 진화의 비선형성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이번에는 목적론적으로 진화론을 이해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목적론이란, 현상의 진행이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인간이 성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개체를 잘 남기기 위해서이다", 와 같은 것. 이와 같은 생각은 보다 일반화되어, "자연선택에 보다 적합한 형태를 갖는 방향으로 진화된다", 라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허영에 대해 생각해 보자. 허영을 이해하는 시각 중에 하나는, 군집생활과 관련한 것이 있다. 즉, 인간은 혼자 살 때보다 여럿이 같이 살 때 생존가능성이 높아 진다. 따라서 군집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남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즉, 자신에 대한 타인의 판단을 고려해야 군집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아 진다. 이와 같은 속성이 오랜 세월이 지나, 매우 높아진 생존가능성을 갖고 있는 시기에는 허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시각. 그런데 이것은, 개체가 '허영'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된 것이 아니라, 허영이라는 것의 초기 형태, 즉, 자신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는 능력, 이 부족했던 이들은 생존가능성이 낮아서 서서히 사라졌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개체들이 어느 정도 허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성에 대한 관심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개체는 재생산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재생산을 할 수 있는 개체만이 살아 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현재 존재하는 개체는 재생산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즉, 이성에 별로 관심이 없는 개체들은 진화 과정 중에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성에 관심이 적은 개체의 유전자는 gene pool에서 점점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시점의 개체군은 대부분이 이성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고 진화가 '이성에 관심이 많은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진화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은 '목적'을 갖고 있지 않는다.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진화'라는 것은 여러 크기 단위(scale)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위처럼 인간을 하나의 단위로 하는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고, 동시에 화학물질(chemical)을 하나의 단위로 하는 것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한 예가 TCA cycle 이다. TCA cycle을 보면 각 단계단계가, 유기화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다소 일어날듯한 방향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아무리 효소라는 것이 activation energy를 낮추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유기화학적으로 매우 일어나기 어려운 반응에 대한 activation energy를 낮추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즉, A->B로의 활성화 에너지가 50KJ/mol 이었고, A->C 로의 반응의 활성화 에너지가 1000KJ/mol 이었다고 하면, 유한시간 내에 반응이 진행하고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가정 하에는, A->B의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는 효소의 출현이 더 있음직하고, 따라서 반응은 A->C보다는 A->B가 진화에서 살아 남을 가능성이 높다. 즉, 진화는 B를 만들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확률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에 단지 그런 단계가 결과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예로는 면역세포의 selection 과정을 들 수 있겠다. self-MHC에 loading 된 self-antigen을 인식하지 못하는 면역세포는, 어차피 nonself-antigen이 loading 되도 제대로 인지할 수 없을테니 죽어 나가고(by anergy)(positive selection), 그 후, self-MHC에 loading 된 self-antigen을 너무 강하게 인지하는 면역세포가 죽어 나간다(by PCD)(negative selection). 결국 살아 남은 면역세포는 MHC.peptide 복합체는 적당히 인지하면서도 MHC.self-antigen 복합체는 잘 인지하지 않는 놈들이다. 이 과정에서, 이와 같은 기작이 잘 발달되었을 때 개체가 살아 남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작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지, 애초부터 면역시스템이 이와 같은 목적을 갖고 진화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즉, postive selection 이 잘 안 된 개체는 면역시스템이 약해서 생존가능성이 낮았을테고, negative selection 이 잘 안 된 개체는 autoimmune-disease 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서, 역시나 생존가능성이 낮았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따라서 진화과정에서 그런 개체들은 점점 줄어들고, 살아 남은 개체들은 위 두 과정이 적절히 일어나는 개체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개체들에는 저 두 과정이 적당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진화가 저 두 과정을 잘 일어나게 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진화의 방향에 대하여 어떠한 목적이 있음을 가정하는 것은 인과율과 관련이 있다. '원인'과 '이유'는 다르다는 것을 아는가?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아니라 '원인'이다. 철수가 종이 치자마자 매점으로 달려간 '원인'이 아니라 '이유'는 OOO 이다. 즉, 인간은 '변화'를 인식할 때마다, 그 변화를 일으킨 '힘'을 간주하게 되며, 만약 그 힘의 주체가 '목적을 갖고 있는 개체'라 판단하고, 변화가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루어졌다고 판단을 하면 '이유'라 지칭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원인'이라 지칭한다. 목적론적 사고관(teleology)는, 자연의 모든 현상조차 '의지'를 가진 누군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사고관을 지칭한다. 이럴 경우, 마치 진화조차도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진행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과학적' 생각은 아닌듯 싶다. 이러한 오류는 종종 세포신호전달 수준에서까지 보이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목적론적으로 말을 할 때도 많기는 하나, 그것은 단순히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TNFalpha에 의한 신호전달은 NF-kappaB를 통하는 것까지 전달되는 경로와, JNK를 activation 시키는 경로를 동시에 동작시킨다. 이런 경우 보통 JNK는 빠른 시간의 활성화와 늦은 시간에서의 활성화, 두 번의 활성화를 보이게 되는데, 두 번째 활성화가 실제의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각주:1]. 만약 survival 할 정도의 환경이라면 NF-kappaB가 Gadd45beta를 expression 시키게 되고, 이것이 translation 되어 MKK7을 비활성화시키는데, MKK7은 JNK의 upstream 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포사멸이 막히는 것이다. 즉, TNFalpha에 의해 세포사멸/생존 신호 둘이 켜져서 진행이 되는데, 생존신호가 충분하면 세포사멸신호가 막혀서 결국 생존하게 되고, 아니면 죽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하여, "생존신호가 세포 사멸 신호를 억제하기 위하여 Gadd45beta의 발현을 유발시켰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그렇게 될 때에만 cell의 상태가 decisive해지기 때문에, 그런 특성을 갖고 있는 세포를 많이 갖고 있는 개체가 진화에서 좀 더 잘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이고, 결과적으로 지금 남아 있는 개체들이 갖고 있는, 그에 관련된 세포 대부분이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 뿐이다.

   즉, 결정을 잘 해서, 죽을 놈은 후딱 잘 죽고, 살 놈은 비실거리지 않고 잘 사는 세포들로 이루어진 개체만이 진화의 과정에서 살아 남았고, 그렇지 않은 개체는 점점 사라졌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시스템이 그것을 지지하는 것들인 것이다. 진화 자체가 신호전달경로의 decisiveness를 목적하고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세포가 뭔 생각이 있어서 noise에 robust 하기 위해 hysteresis나 positive feed-forward[각주:2] 같은 신호전달시스템을 만들었겠어, 그런 게 있을 때 보다 생존에 유리했고, 그래서 그런 것을 가진 것들이 잘 살아 남았기에,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이 그런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겠지.


   조금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전체 개체군의 표현형(phenotype) 중 1%에 속하면 '돌연변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돌연변이는 '진화'의 원동력이 된다. 만약 전혀 변화가 없이 부모와 자식이 완전히 똑같다면 진화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진화란 결국 개체가 주위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며, 따라서 진화는 특정한 방향성이 없이 주위 환경과 조응하는 방법일 뿐이다.


참고 논문: Linking JNK signaling to NF-kappaB: a key to survival  JCS, 2004, 117, 5197-5208. 좀 오래되었지만, 좋은 내용. ㅋ

  1. JNK가 BID를 truncation 시켜서 만들어진 tBID가 mitodhondria의 outer membrane 에 박혀서 MOMP가 유발되고, 결과적으로 cytochrome c 가 cytosol로 빠져 나와 apaf-9 와 apoptosome 을 형성, caspase-9이 activation 되어 apoptosis가 일어나게 된다. [본문으로]
  2. positive feed-forward가 왜 noise에 robust할 수 있는가는 이렇다. A->... -> B, C이고, B+C -> D라고 하자. 이 때 A -> ... ->B 는 매우 빠르고, A-> ... -> C는 좀 느리다고 해보자. 이럴 때는 A-> ...-> D가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A가 오랜시간 켜져 있어야 한다. 만약 A->...->B의 feedforward가 없다면 A가 fluctuation 하는 정도와 비슷하게 D도 요동을 칠 것이다. hysteresis 에 의해 fluctuation에 영향이 적도록 되는 것은 잘 알려진 것이니 넘어 간다. [본문으로]